“모두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내 것이 아니더군요”
몇 년 전 사업이 실패해 재산을 많이 날린 한 친지가 한 말이었다. 한창 사업이 번창할 때는 자고새면 재산이 늘고, 그 재산은 한 치의 의심 없이 든든한 ‘내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 한 귀퉁이가 삐끗하더니 모래성 무너지듯 사라져버리더라고 했다.
“그것은 신기루였나?” 싶은 혼란을 이번 주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다. 하늘 혹은 땅처럼, 더 이상 확실할 수 없는 굳건함으로 언제나 거기 있던 ‘우리 집’이 잿더미, 자갈더미로 바뀌어 버린 상황을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사고로 다리를 절단 당한 사람들이 있지도 않은 그 다리가 아프거나 가려워서 섬뜩해지듯이, 돌아서면 거기 있어야 할 현관, 눈을 감고도 찾을 수 있던 가재도구들, 가족사진들이 진열돼 아이들 커가는 모습이 한눈에 보이던 벽면, 주말이면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즐기던 패티오 … 그 모두가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린 현실 앞에서 이재민들은 한동안 혼란을 겪을 것이다.
지난 한주 계속된 화마와의 싸움이 마침내 끝을 맞고 있다. 시속 80여마일의 무서운 속도로 불길에 광기를 휘몰아 넣던 샌타애나 바람이 기세를 다하고, 해안선 따라 습기가 솟아오르면서 소방관들은 오랜만에 숨을 돌리고 있다. 남가주 7개 카운티에서 동시에 일어나 개인주택 등 2,000여 채의 건물과 7명의 인명을 삼킨 이번 산불은 그 속도와 예측 불가능한 방향전환으로 소방관들의 진을 뺀 잔인한 불이었다고 한다.
많은 지역에서 진화작업이 성공해 수십만의 대피자들은 안전하게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정든 집이 돌무지로 바뀌어 버린 피해자들도 수천명에 달한다. 부서지고 타버리고 녹아내린 잔해 더미 위로 온전한 것은 기괴하게 삐죽 서있는 벽난로, 현관이었던 곳의 디딤돌, 나뒹굴어져 있는 철제의자 정도.
수십 년 땀 흘린 수고의 결실이자 사랑하고 미워하고 웃고 다투던 가족들의 아기자기한 삶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용케도 멀쩡한 찻잔 하나, 타다 남은 사진 한 장을 찾아든 피해자들은 그 작은 ‘수확’에 감사하기도 하고 비통하기도 한 복잡한 표정이다.
‘내가 가졌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한평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대개 한 두 번은 땀 흘려 일군 것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리는 경험을 한다. 화재, 지진, 홍수 등 재난이 원인일 때도 있고, 사업 실패 혹은 믿었던 사람의 배신이 원인일수도 있다.
산불로 가슴을 졸인 이번 주 남가주 한인사회에서는 한인은행 주가폭락으로 많은 사람들이 속을 끓였다. 올 상반기부터 뚜렷해진 한인은행 주가하락이 갑자기 심각한 지경에 이르면서 큰 투자가들 중에는 집 한 채 값을 족히 날린 경우도 적지 않다.
소유의 허망함, 소유의 덧없음이다. 그렇게 사라져 버릴 소유를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는 것이 현대인들의 문제이다.
지금보다 피해가 더 컸던 지난 2003년 화재 때 시미 밸리에 살면서 대피소동을 겪었던 한 주부의 말이 생각난다. 소방관과 경찰관들이 다급하게 대피하라고 소리치는 데 막상 짐을 꾸리려고 보니 집안의 그 많은 물건들 중 꼭 챙겨야 할 것은 별로 없더라는 것이었다.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너무 많이 사들이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을 줄여가며 일하고 돈 번 것이 결국은 그것들을 사들이기 위한 것이었어요”
괴테가 쓴 ‘재산’이라는 짧은 시가 있다. 우리가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준다.
<내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영혼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막힘없는 생각과/ 인자한 운명이/ 저 깊은 곳으로부터 나로 하여금 누리게 해주는/ 모든 호의적인 순간들만이 나의 차지이다>
순간, 즉 경험만이 ‘내 것’이라는 말이다.
소유를 한순간에 앗아간 산불을 계기로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사라질 것들에 너무 집착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땀 흘려 번 돈을 어디에 쓰고 있는가. 불타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 것들에 더 많은 비중이 갔으면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