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 환경보다 낙담이 더 큰 불행
자녀에게 ‘올바른 선택’ 가르쳐야
몇 주 전 대학시절의 룸메이트한테서 전화가 왔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뜬금없이 서로 잊지는 못하게 가끔 점심이나 저녁을 사주는 그런 친구다. 그렇게 많은 얘기를 하는 폭도 아니고, 그냥 서로 식사를 하며 만날 때마다 변해 있는 모습을 보며 세월의 흐름을 확인하는 듯, 아니면 서로의 가는 여정을 비춰보면서 각좌의 좌표를 확인해 보는 그런 시간이랄까. 하여튼 필자로서는 웬만큼 급한 일이 있지 않고는 한 번도 거절해 본 적이 없는 그런 만남이다.
그런데 요번에는 전과 다르게 식사가 아니라 골프를 치자고 했다. 그것이 요 전 주, 점수야 일년에 몇번 치는 골프니까 전혀 언급을 피한다고 해도, 이렇게 가까운 곳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호젓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오래간만에 마음껏 교제를 즐길 수가 있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골프를 치면서 35년 전과는 입장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는 것이다.
대학시절 필자는 여유가 있는 집의 아들이라 부족함이 없었고 지금 나를 이렇게 멋있는 곳에서 그 비싼 회비도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으며 대접을 해주고 있는 이 친구는 홀어머니 슬하의 빈곤한 청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친구는 오직 한 목적과 마음으로 공부만 했다.
매일같이 아침 6시에 기상을 해서 간단히 수업갈 준비를 하고는 기숙사 식당이 열리자마자 내려가서 아침은 5분 이내에 해결했다. 그리고 점심은 항상 샌드위치 싸주는 것을 받아가지고 가서 해결했다. 식사하러 기숙사에 다시 오는 시간이 아까워서였다. 저녁식사도 15분 이상 앉아있는 모습은 본 기억이 없고 저녁을 먹자마자 곧바로 다시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밤늦게 11시반이나 기숙사로 돌아오곤 했다.
돌아오면 잡담도 없이 간단히 세면을 하면서 매일 똑같은 ‘슈프림’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곧바로 “굿나잇!” 한마디를 남기고 이불을 뒤집어 쓰는 나날의 반복이였다. 주말도 물론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해가면서.
그랬던 그 친구가 이제는 큰 변호사 사무실의 파트너로서 변호사만 20여명을 거느리고 있는 타운내 중견 유지가 되어 있는 것이다. 사교클럽, 오페라 후원회에도 가입해 있고 수백만달러, 수천만달러가 왔다 갔다 하는 굵직 굵직한 사건들을 의뢰받아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부친은 과로로 벌써 그 친구가 대학 일학년 때에 타계를 하셨지만 슬퍼할 새도 없이 어린 동생들에게 아버지 역할까지 해가면서 일구어낸 아메리칸 드림인 것이다.
흔히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똑같은 가정에서 하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일생을 마감했나 하면 똑같은 가정에서 또 다른 한 명은 오히려 더 힘차게 역경을 딛고 일어난 것은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며칠 전에는 채플린 사무실에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을 상담하고 있는 중인데도 불구하고 고개를 들이 밀고 들어와 “기도 좀 해달라”고 조르는 수감자가 있었다. 좀 더 마음에 와 닿는 기도를 해주기 위해서 무슨 사정인지 얘기를 하게 하고 기도를 해주는데 사정을 들어본 즉 너무나도 딱하기 그지 없었다.
우선 부모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기억에 없고 할머니와 이모 곁에서 자랐었기 때문에 한 번도 남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모르고 컸다고 변명 아닌 변명으로 입을 열었다. 얼굴과 둔부는 비록 오래 전에 한 성전환 수술의 부작용인지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머리와 가슴은 여자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는데, 남자 감옥에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남들은 ‘엄마’가 함께 해주었지만 ‘이모’ 아니면 ‘할머니’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도 쉽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자기의 삶을 돌아갈 수 없는 추락선으로 이끌어간 사건은 그래도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할머니가 어느 하루 식도를 들고 위협을 해가며 자기를 ‘성적으로 학대’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 일 이후에 그 집을 나와서 이리저리로 방황을 했고, 그 때마다 자기가 가장 신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결국은 꼭 ‘성(性)적으로 학대’를 받는 생활의 반복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극히 ‘외로움’을 느꼈고, 그 외로움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댔다고 하고, 또 그러다가 보니까 매춘도 하고 마약을 팔기도 했다는 것이다. 언제인가부터 이미 AIDS 환자가 되어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청년인지 숙녀인지 말하기도 애매한 수감자가 어쩔 수 없는 비운의 희생자라고만 할 수 있을까? 필자기 늘 가지고 상담에 응하는 성경은 하나님은 전능하시나 우리의 선택을 100% 들어주시는 하나님으로 말씀해 주고 있다. 전능하시기 때문에 어떤 지경에서도 구해 주실 수 있지만,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에 미쳐 버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이사야 7:15)라고 기록되었듯이, 우리가 그를 원하지 않으면 강제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축복을 주시는 기준이 무슨 출신이거나 환경에 준한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의 선택을 보시고 주신다는 것이다.
그 예로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를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내가 내 집에서, 내 성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이지 않게 할 것이며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리라”(이사야 56:4-6a)라고 말씀하셨듯이. 올바른 선택-이것이 우리자녀들에게 꼭 이수해 주어야 할 과제가 아닐까?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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