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짙어만 간다. 벌써 추수를 끝낸 일본의 어느 외진 산간 지방에서는 높이 솟은 가을 달을 향해 갓 찧어낸 햅쌀을 대나무통에 넣어 흔들며, 풍작을 노래하며 무병장수를 빌 것이다. 갓 지어낸 윤기 나는 쌀밥을 부처의 사리에 비유했다면, 이제 막 찐 햅쌀이, 속살이 내비치듯 투명한 만월 며칠 전 이른 저녁 서산에 떠오른 달과 흡사해 이렇듯 달에다 대고 소원을 비는 것이다. 그 옛날 집 앞 감나무 새 둥지에 쌀을 넣어 두었더니 새가 물어온 물고기가 아직도 싱싱함에 퍼뜩 지혜를 얻어 생선을 쌀에 보관하면서부터 시작된 ‘스시 문화’는 짙어만 가는 이 가을을 정점으로 점점 더 박차를 가할 것이다.
한국의 3면 바다는 지금쯤 새우, 게, 오징어잡이로 온 항(港)이 밤새 불을 밝히며 북새통을 이룰 것이다. 미국의 수산물 소비 1위는 새우인데, 우리 스시바도 요즈음 저 메인 주에서 많이 잡히는 단새우(Ama Ebi)를 빼놓고는 다 수입 양식 새우이다. 중국, 태국,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 냉동 포장 박스에 표기된 산지 표시도 구분해 보기 바쁘다. 한국도 서해안을 중심으로 새우 양식을 한다. 아주 오래된 굴지의 D산업이 태안반도 안흥에 양식장을 만들고, 일본에서 치어(稚魚)를 들여다 야심차게 새우 양식을 시작했으나 불행히도 거듭 실패를 하곤 할 때, 태안반도 북단 ‘상구미’란 작은 어촌의 한 청년이 이 양식장에서 버려지는 치어를 얻어다가 대 성공을 거두었다. 덕분에 D산업 양식장의 위상은 통째로 깍아 내려졌고, ‘長’ 몇은 목이 달아났었다. 이 청년은 동네 어귀에 오래전부터 버려져 방치해 둔 ‘염전터’에 이 치어를 풀어 넣고는 온 정성과 인내를 다 했다. 이 친구가 온종일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잡어’를 마차에 싣고 염전의 둑길을 오르면, 이미 ‘밥 때’와 ‘마차 소리’에 익숙해진 새우들은 수면 위로 가까이 떠올라 ‘먹어’를 향해 소리 없이 요동을 치며 작은 파도를 일으킨다. 급기야 먹이가 던져지는 순간, 수면위로 박차고 뛰어오르면서 일으키는 물보라가 온 수면을 가득 채우는데, 이를 토대로 새우 양(量)을 측정할 수 있었다. 이듬 해 치어 공급 때문에 ‘대박’은 못 했지만, 이 박 씨가 어쩌면 한국 새우 양식의 효시였을 것이다.
일본 유명 스시집이라면 단연 산(活) 새우가 취급되어야 하는데, 일찍이 여수 앞바다에서 잡는 ‘보리새우’가 단연 최고 상품이었다. 여수항 턱밑에 있는 ‘돌섬’ 집하장에 수족관을 만들어 놓고, 새우가 잡히는 대로 모아 일본에 수출을 했었다. 새우 수족관에 커다란 얼음덩이를 넣으면 수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새우는 마취 상태가 되어 온몸이 꼿꼿해지면서 마치 동면 상태에 든 듯한데, 이를 톱밥을 채운 상자에 포장해 이른 새벽길을 달려 김해 공항을 통해 도쿄로 공수했다. 이날 오후 도쿄 스시바의 수족관에 풀어진 새우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마취에서 깨어나 물속에서 유유히 노는데, 이날 밤 손님의 식탁에 오른 이 새우가 바로 ‘스시바의 꽃’인 ‘오도리’인 것이다. 일본명 구루마(車) 새우인데, 산 새우가 펄떡이는 모습이 춤(踊-오도리)을 연상시켜 불리어지는 스시바의 애칭이다.
게 잡이 또한 한창일 것이다. 이곳에서 Blue Crab이 유명하다면, 서산에는 된장에 풀어 쪄내는 꽃게의 그 담백하고 감칠맛 나는 맛이 가히 일품이다. 이 또한 보리새우처럼 일본으로 수출되어 스시바의 횟감용으로 최상품이었다. 바다에서 잡힌 것이면 일단 날것부터 먹고 보는 일본인에게 ‘게’라고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또 지금쯤 속초항을 떠난 오징어잡이 배가 울릉도를 거쳐 북상을 거듭, 세계 제4대 어장 중의 하나인 대화퇴(大和堆)에서 바쁘게 조업 중일 것이다. 악명 높은 이곳 파도 때문에 옛날 속초에 한꺼번에 많은 과부를 낳은 슬픈 사연의 ‘오징어잡이’지만, 짚어만 가는 이 가을은 또 다른 만선의 기쁨을 줄 것이다. 이제 오징어도 우리 스시바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어종이다. 뜻밖의 많은 미국인들이 날 오징어를 좋아하며, 그 인구는 점점 늘 것이다.
장수와 건강의 음식으로 미국의 온 구석을 파고드는 ‘스시 문화’가 과연 얼마만큼까지 ‘생식’을 유도할는지, 우리 스시맨도 이에 뒤지지 말고 폭넓은 지식을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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