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다. 회담의 마지막날인 10월 4일엔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모 방송사 스튜디오에서 정상회담 해설을 하고 있었다. 정오가 조금 못되었을 때부터 1시에 합의문 서명식이 있을 것이라는 소식과 함께 합의문의 내용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둘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맨 처음에 들려온 소식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의 건이었다. 이후 문산-봉동 간 화물 철도 개통, 종전선언 위한 관련국 회의 등등 굵직굵직한 건들이 줄줄이 사탕 격으로 이어졌다. 귀를 의심치 않을 수 없었다.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합의였다. 시쳇말로 대박이었다.
사실 이번 정상회담은 2000년 정상회담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합의의 내용이 포괄적이면서 동시에 매우 구체적, 실질적이다. 그래서 합의의 실행력, 구속력에 대한 기대감을 낳기에 충분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남북경협의 양적 확대, 질적 심화의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경협의 대상, 범위가 확대되고 경협의 수준이 향상될 것이다. 경협의 업그레이드뿐 아니라 한 차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이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 구조의 창출이다. 경제협력을 통해 평화를 가져오고, 평화가 다시 경제협력을 촉진하는 구조이다. 이는 경협의 입장에서 보면 평화와 경제의 결합에 의한, 경협의 업그레이드 내지는 평화 진전에 의해 뒷받침되는, 경협의 도약을 의미한다.
사실 이번 선언에서 핵심적인 것은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의 창설이다. 이러한 협력의 필요성은 평화와 경제 양 측면에서 제기된다. 즉 평화는 서해안 지역의 평화라는, 평화 자체의 필요성이고, 경협은 경협의 정체성을 탈피하기 위한 군사적 보장조치의 필요성이다. 돌이켜보면 한강하구 골재 채취, 임진강 수해방지, 남북수산업 협력, 경의선 철도 연결 등의 사업이 그동안 당국간 회담에서 여러 차례 합의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진전이 없었던 것은 바로 군사적 보장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 걸림돌을 이번에 제거한 것이다.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 구조와 관련,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남북한 철도 도로 연결 및 공동이용이다. 개성공단용 문산-봉동간 철도 화물수송, 개성-신의주 철도 및 개성-평양 고속도로 공동 이용 문제인데 이는 군부의 동의가 없으면 실현 불가능한 문제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실 남한에서 철도=경제라면 북한에서는 철도=군사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공간적으로 보면 남북 경제협력의 거점 확대도 눈에 띈다. 한편으로는 점의 확대이다. 기존의 개성에 이제는 서해안의 해주, 남포, 동해안의 안변, 그리고 백두산이 추가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점이 선, 면으로 확대되었다. 서해와 개성, 해주, 인천의 연계를 상정할 수 있게 되었고, 여기에다 남포까지 고려하면 이른바 서해안 벨트가 형성되게 되었다. 이제는 남북경협을 이야기할 때 북한지도가 없으면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
경협의 성격 변화도 예고되고 있다.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상생적(win-win) 경협이 대폭 확대된 것이다. 해주공단, 서해 공동어로, 한강골재채취, 조선업협력, 개성공단 2단계, 경의선 철도 및 평양-개성 고속도로 공동이용의 소식에, 많은 한국의 기업들은 가뭄의 단비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정부 차원 내지 관민협력의 공적협력뿐 아니라 순수 민간 차원의 협력도 다수 포함된 것이 이번 선언의 특징이고, 이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의 뚜렷하게 구별되는 포인트이다.
이러한 옥동자를 낳기까지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다. 특히 회담 준비를 위해 많은 고생을 하신 통일부, 외통부, 국방부, 청와대 안보실, 국정원 등 외교안보 부서 여러분들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를 드리고 싶다.
물론 이번 합의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아쉬운 대목도 분명 존재한다. 우리 앞에 놓인 과제도 적지 않다. 또한 합의는 합의일 따름이다. 이행의 문제는 또 다른 세계이다. 더욱이 내년 초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있다. 이번 회담의 합의가 다음 정부에서도 이어질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지지가 긴요하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 계신 동포들의 적극적 지지와 성원을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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