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상조의 감이 없지 않다. 연말까지 아직 두 달 이상 남았으니. 어쨌거나 2007년을 대표하는 말(word)을 선정한다면 어떤 단어가 있을까. ‘놈현스럽다’가 아닐까 싶다.
한국의 국립국어원이 한글날을 맞아 새로 나온 말 3,500여개를 추려 발표했다. 그 신조어에는 ‘놈현스럽다’는 단어가 들어있고 그 말이 새삼 유행을 타고 있어서다. 국어원에 따르면 ‘놈현스럽다’는 형용사로, ‘기대를 버리고 실망을 주는 데가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다변은 노무현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다. 게다가 같은 말이라도 듣는 사람을 언짢게 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있다. 반대 편 진영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같은 진영의, 말하자면 같은 코드의 사람들도 적으로 돌아서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정도다. 그러니 이런 신조어가 나오게 된 데에는 본인의 책임이 크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또 ‘놈현스러운’ 발언을 했다. 서해북방한계선(NLL)은 영토선이 아니고 남북간에 합의된 분계선도 아니라고 했다. 그뿐이 아니다. 김정일을 잔뜩 치켜세웠다. 소신과 확고한 자신감을 지니고 있는 진짜 권력자라는 등.
본색의 발로인가. 아니면 모종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대못박기’식 발언인가. 논란이 분분하다. 도대체 무엇을 겨냥한 발언인가. 남남(南南)갈등을 극대화시켜 대통령 선거를 평화 세력 대 반(反)평화 세력의 이념 대결로 몰고 가겠다는 노림이 숨어 있다. 국내에서 나오고 있는 분석인 모양이다.
딴은 유력한 해석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세론으로 굳어지고 있는 선거판을 그냥 방치할 수는 없다. 판을 흔들어 대기 위해 그래서 던진 나름의 ‘북풍카드’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여기서 떠오르는 말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란 법률용어다. 본래 의도했던 안 했던 그 ‘놈현스러운’ 발언이 가져올 파장이 여간 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그러면서도 숨겨진 아젠다는 한미군사동맹의 장래다. 워싱턴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지적이다. 얘기의 진의는 이렇다. 그렇지 않아도 파경을 맞은 한미동맹관계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정식이혼단계에 들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많은 관측통들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일본식으로 표현해 ‘무데뽀 베팅’으로 보고 있다. 내내 강조된 게 평화체제 구축이다. 그리고 ‘우리민족끼리’다. 노무현과 김정일, 남북지도자가 평양에서 만나 대내외적으로 던진 메시지다.
아주 감동적으로 들릴 수 있다. 적어도 한국인들에게는. ‘외세간섭을 배제하고 우리민족끼리’ 남북 평화체제를 구축한다니. 그 구호가 그런데 그렇다. 한반도 주변의 열강의 입장에서는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그래서 벌써부터 제기되는 게 한미동맹관계 종식 이후의 한반도 기상도다.
우리민족끼리만 열창한다. 그 와중에 한국 안보의 근간을 이루어 온 한미동맹이 와해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막무가내다. 오직 북풍변수를 노리고 베팅을 한 것이다. ‘무데뽀 베팅’이라는 평가가 나온 배경이다.
한미동맹관계가 종식된 후 한국은 그러면 어떤 모습일까. 엄청난 군비를 각오해야 한다. 전시작전권 단독 행사 결정만으로도 수천억원의 부담이 가중된다. 거기다가 모든 무기체계에서, 전시 정보통신체계구비에 드는 경비는 말 그대로 천문학적 액수다.
한미 간의 FTA(자유무역협정)도 없던 얘기가 될 수 있다. 동맹이 아닌 한국과 그런 협정을 맺을 필요를 미국은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경우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말할 것도 없다.
이로 끝나는 게 아니다. 안보에는 외교적 노력도 필요하다. 북한뿐이 아니다. 중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적이 될 수 있다. 그런 안보지형에서 미국이 아닌 어느 세력과 손을 잡을 것인가. 해서 나오는 일부의 비관적 전망은 한국은 ‘고래에 둘러싸인 새우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합병된 것이나,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은 모두 한국이 동맹전략에 실패한 탓으로 볼 수도 있다.” 한국과 미국이 동맹으로서 의사소통 자체가 어렵게 된 상황에서 한 지한파 미 관측통이 한 말이다.
발언은 계속 이어진다. 대한민국의 군 통수권자다. 그런 그가 북한대변인 같은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선의로 해석해 ‘전략적 발언’이라고 해도 위험수위를 넘어선 것 같다.
한미동맹관계는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인가. 계속될 ‘놈현스러운’ 발언을 주시해 보아야겠다.
옥 세 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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