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쾌한 언변‘평화대통령’꿈꾼다
MBC 메인 앵커등 방송사서 17년 생활
DJ권유 정계입문…전국 최다득표 당선
깔끔 용모와 달리 “권노갑 퇴진”직언도
한국선거 사상 최초의 2연속 전국 최다득표 국회의원. 40개월간 대변인직 3번 연임, 여당 사상 최연소 최고의원…. 그동안 언론에 비친 정 후보의 모습은 깔끔하고 단정한 용모, 포효하듯 외치다가 감성적인 목소리로 대중을 쥐락펴락 하는 특유의 ‘언변’으로 상징돼 왔다. 곱상한 인상과 달리 유세장에서 체중을 다 실어 목소리를 낼 때 보면 펄펄 뛰는 야생마 같다. 역동성과 추진력으로 상징되는 몽골기병식 리더십은 정 후보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정동영 후보가 당 경선 유세 때 연설하는 모습.>
그는 확실히 텁텁한 ‘막걸리 스타일’은 아니다. 거나하게 술잔을 걸치며 “우리는 하나”라고 외치는 쪽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낯가림을 한다는 건 정치인의 덕목으론 감점 요소다. 그래서 주변에선 “너스레도 좀 떨고 헝클어진 모습도 보여주라”는 조언도 듣는다.
정 후보는 어려서부터 잘 나서는 편이 아니었다. 친구들은 “장난기는 은근히 많은데 말수는 적은 편”이라고 한다. 중·고등학교 동창들은 그를 “키도 작고 잘 드러나질 않았는데 운동장에서 누가 물불을 안가리고 축구공을 차고 있어서 가보면 정동영이었다”고 기억한다.
서울대 국사학과를 다닐 때 정치학과 강의를 수강한 그를 가르쳤다는 고려대학교 정외과 최상용 교수는 “4·19 혁명을 영국 명예혁명에 비유한 정동영의 ‘한국의 정치문화’란 리포트를 지금도 갖고 있다”며 “문제의식이 투철하고 말과 글의 논리가 정연해 좋은 학자가 될 줄 알았다”고 한다.
<정 후보(왼쪽)가 군복무 시절 동료들과 함께 찍은 모습.>
1987년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된 뒤 서울 모래내의 한 술집에서 전주고 동창회가 열렸을 때다. 한 동창생은 “한 사람이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오늘을 잊으면 안된다’고 의분을 터뜨리기에 보니까 MBC 기자 정동영이었다”고 했다.
정 후보는 2001년 12월 인사개입과 비리의 핵심으로 지목된 여권의 실세인 권노갑 고문을 향해 김대중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물러가라”고 했다. 의원직을 내걸고 한 일이었다. 민주당 최고위원직을 던질 때도 그랬고, 노인 폄훼 발언 사건 이후 비례대표 후보직과 선거대책본부장 자리를 내던질 때도 그랬다.
정 후보는 결혼도 ‘끝장을 보는 스타일’로 했다. 부인 민혜경씨의 부모님이 그를 사윗감으로 탐탁지 않아하자 방송국에 사정을 설명하고 사표를 썼다. 설악산으로 납치(?)한 끝에 결혼할 수 있었다. 부인 민씨는 “숨막힐 정도로 집요했었다”고 당시를 기억한다.
<정동영 후보의 가족들. 정 후보(왼쪽부터), 장남 욱진(25), 차남 현중(22)군, 부인 민혜경(52)씨.>
1996년 정 후보가 정계입문할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그를 기자실로 데려가 “당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크게 기여할 인물”이라고 소개했었다. 당시 언론은 호소력있고 참신한 이미지라고 했었다.
정 후보는 조리있으면서 핵심을 찔러 말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장기인 말 때문에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지난해 총선 때의 노인폄훼 발언은 두고두고 그를 따라 다닐 것 같다. 최근 북핵 6자회담 타결 소식을 통일부에서 접하면서 주요 방송국 카메라가 없어서 다시 연출했다는 걸 놓고도 말이 많다. 방송기자 출신으로 이제는 집권여당의 대선후보로 우뚝 선 정 후보는 12월 대선을 바라보며 ‘평화대통령’을 꿈꾸고 있다.
<정동영 프로필>
▲생년월일: 1953년 7월27일(양력)
▲출생지: 전라북도 순창
▲학력: 전주고, 서울대 국사학과, 영국 웨일즈 대학원 석사
▲가족관계: 부인 민혜경씨와 2남
▲병역: 육군 병장 제대
▲종교: 가톨릭
▲좌우명: 구동존이(求同存異) “다른 점이 있더라도 같은 점을 취하면서 이견을 좁혀 나간다”
▲선호음식: 김치찌개와 햄버거
▲애창곡: 양희은의 아침이슬
▲존경하는 인물: 백범 김구, 존 F. 케네디, 다산 정약용
▲감명깊게 읽은 책: ‘산에는 꽃이 피네’ 리콴유 자서전
▲저서: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 개나리 아저씨
▲취미: 영화감상, 축구, 등산
▲가장 슬펐던 일: 아버님,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청년시절의 실연
▲가장 기뻤던 일: 실연했던 여인과 다시 결혼한 일
<주요 경력>
▲1972년: 서울대 국사학과 입학
▲1974년: 유신반대 민주화투쟁 구속, 민청학련 연루 강제징집
▲1977년: 육군 병장 제대
▲1978년 ~ 1995년: MBC-TV 기자, 주미특파원, 외무부, 통일원, 국회 출입기자, MBC-TV 앵커(0시 뉴스, 주말 뉴스데스크)
▲1996년: 15대 총선 전국최다득표 당선,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 당무위원
▲1998년: 6.4 지방선거 서울시장 선대본부 기획단장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특보, 새천년민주당 창준위 청년위원장
▲2000년: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16대 국회의원 2연속 최다득표 당선
▲2002년: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 한국인터넷정보학회 회장, 새천년민주당 제16대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국민참여 운동본부 본부장
▲2004년: 열린우리당 당의장,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 통일부 장관(2004년 7월~2005년 12월)
▲2006년 2월: 열린우리당 당의장 선출
▲2006년 6월: 열린우리당 당의장 사퇴
▲2007년 7월: 제17대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
▲2007년 10월: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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