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진(변호사)
10월 6일 맨하탄에서 성대하게 치러진 코리안 퍼레이드가 금년으로 27번째라고 한다. 이것을 처음 시도한 사람들은 참으로 한국 이민사의 선각자들이다. 나는 뉴욕에 20여년간 살면서 뒷짐만 지고 멀리서 보고만 있었으며 이 때가 되면 항상 초기 이민온 자의 도리를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작년부터 시위에 참여한 대학총연의 한 회원으로 브로드웨이 41가에서 23가까지 도보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누구의 권유도 아닌 자
진해서 참여했기 때문에 더 기쁘게 생각되었다.
우선 브로드웨이를 활보하는 기분이 좋았다. 모든 교통이 차단되고 그것도 경찰들이 우리들을 보호해 주며 도로변에 도열한 인파가 우리를 환영해 주니 개선장군 같은 기분이라고 과대망상을 해 보았다. 이 번잡한 맨하탄 차선을 제지받지 않고 활보할 수 있었던 것은 코리안 퍼레이드에 참석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뉴욕 맨하탄은 퍼레이드의 광장이다. 평화적인 집회 자유는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 중의 하나이다. 매년 1월 1일에 열리는 메이시 퍼레이드는 세계가 보는 퍼레이드다.
맨하탄의 종족간의 퍼레이드는 세인트 패트릭 데이에 5애비뉴와 44가에서 북쪽으로 86가 까지를 행진하는 아이리시인들의 퍼레이드가 효시일지 모른다. 첫 행사가 1772년 3월 17일이었다고 하니 미국독립이 선언되기 16년 전이다.한국전쟁이 끝나고 1954년 7월 다운타운 브로드웨이에서 이승만대통령 환영행사 시위에는 수십만명이 브로드웨이에 나와 환영했다.
이번 코리안 퍼레이드는 120여개의 각 단체가 참여한 현재까지 최대 규모라 한다. 세종대왕 어가 행렬과 육군 취타대 행진은 퍼레이드의 위상을 크게 높였으며 지금까지 소극적이었던 기독교 교계의 두 대형 교회가 대규모로 참여한 것도 앞으로 퍼레이드의 밝은 전망을 예측할 수 있다.순복음교회의 농악대는 규모도 만만치 않았지만 나이 든 분들이 땀 흘리며 정성을 다하는 것을 보니 정말 고개가 숙여진다. 입양아 가족들과 함께 나란히 행진한 대학교수 김진흥 목사의 참여도 나의 눈길을 끌었다. 나는 선두그룹이어서 행진이 끝나고 따라오는 시위대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코리안 퍼레이드는 우리의 ‘민권 시위’라고 나는 규정하고 싶다. 이는 뉴욕과 뉴저지의 교민 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 있는 우리 교민들에게 중요한 행사다. 이것은 하루의 흥행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미국사회에 건재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중요한 민권시위일 수 있다.우리들은 소수민족으로 여러가지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것은 오직 우리 뿐만 아니라 백인이 아닌 많은 소수민족들이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권은 그냥 얻는 것이 아니다. 투쟁으로서 쟁취된 것이 이 나라의 민권역사다. 양보하고 뒤로 물러서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주장을 분명히, 그리고 때때로 소리 높여야 주장이 관철될 수 있다. 침묵이 항상 금인 것은 아니다. 침묵하는 것은 때때로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며 비굴하게 비춰질 수도 있다. 소위 지성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침묵하고 소극적이며 사회 참여가 결여되고 있다고 개탄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행동 없이 침묵하는 지성은 지성이 아니다”고 어느 한국 정치인이 개탄한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코리안 퍼레이드는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미국에 있는 타민족에게 알리는 기회이다. 모든 사람은 개인의 특유한 인격과 개성을 갖고 있다. 민족도 마찬가지로 특유한 문화와 전통을 보유하고 있다. 모든 문화와 전통은 무조건 보존하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 개인의 경우도 특유한 개성과 인격이 있으나 그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본인에게 이롭지 못할 경우 반드시 고쳐야 하는 것처럼 문화와 전통도 필요에 따라 갈고 닦아야 하며 좋지 못한 전통은 버려야 한다. 우리가 외국인에게 보이는 것은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전통과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다.코리안 퍼레이드는 우리 후손들에게 주는 하나의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 2세들에게 ‘코리안 아메리칸’이란 것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전통을 심어주는 것은 우리 1세들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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