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의 와인 섹션에 가보면 어깨에 금박 띠를 두른 와인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와인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고 자랑하는 와인들이다. 와인을 잘 모르던 시절엔 이런 경력이 대단한 줄 알고 얼른 사다 마셨는데 지금은 그런 와인일수록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와인 대회가 수없이 많고 상도 엄청 많다는 것은 업계에서 다 아는 이야기다. 미국에서 매년 실시되는 주요 와인 컴피티션이 40여개, 각 대회마다 메달을 타는 와인이 분야별로 수십종이다. 싸구려 와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2달러짜리 찰스 쇼(Charles Shaw) 샤도네가 ‘2007 캘리포니아 스테이트 페어 와인대회’에서 더블골드 메달을 수상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 사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와이너리들은 와인대회에 나가지 조차 않고, 신생 와이너리나 이름없는 와인업체들이 어떻게든 이름을 내보려고 출전한다. 그리고 여러 와인대회에 부지런히 출품하다보면 어디선가는 반드시 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TV방송국들은 매년 연말 인기대상 시상식을 갖는다. 전체 TV방송을 망라하는 시상이 아니라 자기네 방송사 드라마와 배우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가족잔치이므로 별 의미도 없지만, 거기에 더하여 참으로 보기 딱한 일이 매년 벌어지곤 한다.
후보는 서너명 밖에 안 되는데 공동수상이 너무나 잦은 것이다. 잦은 정도가 아니라 한사람이 수상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두명도 모자라 심지어 세명이 공동수상하는 일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상을 탄 사람이 멋있어 보이기는커녕 상을 타지 못한 사람이 무안하고 불쌍해진다. 뿐만 아니라 시상 분야가 어찌나 많은지 결국은 한 해동안 수고한 모든 배우와 제작진이 골고루 상을 타곤 한다. 상이 아니라 위문공연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달 한국에서 나온 토막뉴스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늘그막에 붓을 잡은 73세의 문인화가가 작품공모전에서 한 해에 무려 112회나 수상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화가 김진홍씨는 2004년 1월10일 ‘명필 한석봉 전국서예대전’에 3개의 문인화를 출품, 특선과 입선의 영예를 안은 뒤 그해 국제 미술대전, 대한민국 열린 서예대전 등 57개의 공모전에 출품한 112개 작품이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노익장에 놀라기보다 미술공모전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되는 뉴스다. 이런 수상에 과연 ‘영예’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
미술상 못지 않게 많은 것이 문학상이다. 한국에는 수백 개의 문학상이 있다고 한다. 한 조사에 의하면 문예지에서 운영하는 문학상만 무려 41개다.‘동인문학상’이나 ‘이상문학상’‘황순원 문학상’처럼 권위 있는 문학상도 있지만 동호인들끼리 상을 주고 받는 군소 문학상도 많고, 문예지들이 계속해서 상을 제정하기 때문에 문인들조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문학상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이런 문학상들은 작품성을 기준으로 수상자를 선정하기보다 연장자 순으로 선정하거나 협회에 돈을 기부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일이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미주 한인문단에도 적지 않은 문학상이 있다. 그 중에는 권위를 인정받는 문학상도 있지만 가까운 문인들끼리 ‘나눠먹기’ 식이라고 비웃음을 사는 문학상도 있다. 많은 경우 문단 연배에 따라 돌아가면서 받고 있으니, 그런 상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문인들마저 의구심을 보인다.
최근 이곳 문단에서 2개 문학상의 수상자 선정이 있었다. 선정 과정에서 관계자들 사이에 알력과 다툼이 매우 심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심사하는 사람들이 서로 자기 편을 미느라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이는 일, 또 후보에 오른 문인들이 상을 타기 위해 치열하게 로비하는 일은 올해뿐 아니라 문학상 발표 때마다 있는 일이다. 시심을 벼러 글을 써야할 문인들이 원로들을 찾아다니며 아부하고 로비하면서까지 받을 가치가 있는 상인지 정말 궁금하다.
인정에 약하고 혈연지연학연에 지배받는 한국인들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상을 수여하는 일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매우 어려워 보인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꾸 상을 만들고, 연중 도처에서 각종 시상식이 열리는 것이다.
상을 주고 격려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너무 많아서 그 가치가 떨어진다면 상을 주는 의미가 대체 어디 있는가.
정숙희 부국장·특집 1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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