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한국에 사는 동안 미국 친구들에게 산, 강, 절, 고궁 등을 담은 사진들을 보냈었다. 그 중 가장 인기 있었던 사진은 유치하게 장식된 러브모텔 사진이었다. 러브 모텔은 아시아에만 생기는 현상이 아닌데(알젠티나 외 많은 나라에도 있다), 한국 러브 모텔은 유독 야하게 장식되어 있다. 어떤 건물은 마치 라인강변의 성, 타지마할, 혹은 1960년대의 라스베가스 카지노처럼 생겼던 것이 기억난다. 물론 아주 유치하고 허름한 건물들이었다. 서울에서 근교로 나가는 고속도로 변을 어지럽혔다. 내가 그랬듯, 한국 사람 어느 누구도 그 건물들을 좋아한 사람이 없었다. 말이 나온 김에 나도 러브모텔에 한 번 갔던일을 고백하겠다.
내 경험은 야한 재미는커녕 싱겁기조차 하다. 대전에 사는 아내의 사촌이 새로 지은 절의 축하예배에 우리 가족을 초대했었다. 하룻밤을 자야 했는데, 좁은 하숙방에서 우리 식구와 같이 지낼 수가 없어 사촌이 우리를 위해 ‘비너스’ 러브모텔을 예약했던 것이다. 모텔 이름의 ‘비’를 ‘P’와 비슷하게 발음들을 해서 내겐 아주 우스운 이름이었다. 내 얘기를 듣던 미국 친구들도 배꼽을 잡고 웃으며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아내와 열한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도착한 곳은 아주 말끔하고 깨끗한 호텔이었다. 오렌지 색으로 페인트 칠한 건물엔 러브모텔이 흔히 그렇듯 반쯤 커튼이 드리워진 주차장이 있었다. 건물에 들어서면서 연인들과 그들에게 은밀하게 방을 안내하는 칙칙하게 생긴 주인을 기대했었는데, 그런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우리와 비슷한 한 가족이 앞서 도착해서 첵크인을 하고 있었다. 방도 별스럽지 않고 깨끗했다. 구태여 러브모텔의 흔적을 찾는다면 TV위에 놓인 성인 비데오 테이프 몇 개뿐이었다.
우리가 그 비디오 테이프를 보았을까? 물론이었다. 아이가 잠이 들자마자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화는 돈 들이지 않고 만든 역사 드라마였다. 이조시대에 양반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만족을 얻지 못해 바람을 피운다는 얘기였다. 얘기거리를 많이 끌어 낼 쟝르 같았다. 재미없는 액션들이 베일에 가려진 채 되풀이 되었다. 15분쯤 보던 우리는 KBS 뉴스로 채널을 돌려 버렸다. 그렇게, 비너스 러브모텔은 그런 이름의 미국 모텔들처럼 더럽고 위험한 곳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6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모텔을 기억하는 것은 그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때문이다. 우리는 오렌지 빌딩을 나와 버스를 타고 절로 향했다. 절은 전통식이 아닌 신식으로 지은 고급 건물이었다. 마루에 앉은 교인들은 거의 기독교식으로 일요예배를 보았다. 한국의 선불교에대해 깊은 경외심을 갖고 있는 나로선 그 장면에 거부감조차 느꼈다. ‘성가대’는 불경소리가 아닌 노래를 했다. 물론 관음보살을 강조했다. 스님은 ‘법문’을 강의하셨지만 기독교의 ‘설교’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스님이 ‘부처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 계십니다.’ 했으니 ‘예수는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계십니다’와 같다고 할 수는 없었다. Coke와 Pepsi를 같다고 할 수 없음과 다를 바 없었다.
예배가 끝난 후, 스님은 영어 반, 한국어 반으로 말씀하며 나를 특히 반겼다(나는 어디를 가던,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 곳에서까지 나를 특별하게 환영해주는 한국인들에게 깜짝깜짝 놀라는 적이 많다). 스님은 우리는 부처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우리가 이미 부처이기 때문이라 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어찌 지붕의 기와가 거울이 될 수 있겠느냐?”
나는 “거울은 거울이기 이전에는 무엇이었습니까?”고 물었다. 반짝거리고 윤나는 거울도 한 때는 분명히 갈아지지 않고 더러운 쇠가 아니었겠는가? 문득 비너스 러브호텔의 외로운 방문객이 상상되었다. 슬픈 사람들, 마음을 나쁘게 쓰는 사람들, 방황하는 사람들, 젊은 사람들, 늙은 사람들. 아름다운 한국 근교의 정경을 더럽히면서 오직 한 가지 목적으로 세워진 지저분하고 허름한 그 건물들에겐 연민이 가는, 오히려 사랑스럽기조차한 면이 있었다. 그것들도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성전인 것이다. 인간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전이라고 할까? 우리의 삶은 그 일요일 아침에 본 두 종류의 성전 사이를 오가는 것 같아 보인다. 더러운 지붕 기와와 반짝거리는 거울 사이처럼.
<케빈 커비 /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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