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키울 때 가장 큰 영향력 행사
과거 잊고 새로운 앞날만 바라봐야
한동안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으로 북한의 모습이 TV 화면을 가득 채웠었다. 개성이 출생지인 필자는 며칠을 숨소리까지 죽여 가며 열심히 보았었다. 많은 행사가 있었고 해석들도 분분했지만, 가장 강하게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노란 줄로 쳐진 경계선을 지나가기 전에 갑자기 돌아서서 한 말이었다. 자세한 어구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이제 과거의 있었던 일은 모두 잊어버리고… 앞날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건너갔으면 한다”는 내용의 말이었다.
그런데 요즘 보면 공교롭게도, 방영되고 있는 연속극 중에서 이와 비슷한 메시지가 많이 들리고 있는 것을 본다. 어쩌다 보기 시작했지만, KBS에서 하는 연속극 둘이 있는데, 그것은 ‘하늘만큼 땅만큼’과 ‘행복한 여자’이다. 전자에서는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가 할머니가 되어서나 돌아온 어머니와, 아주 젊었을 때 남편을 잃고 홀어머니로 아들을 키우다가 그것이 너무 어려워서 아기는 셋방집 주인에게 맡기고 다시 시집 가버린 비정의 엄마의 얘기인데, 엄마에게 버린 받은 아들이 청년이 되어 그 엄마를 결국 찾게 되는데, 그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얘기라고는 “미안하다”도 아니고 반가운 인사도 아니고, 단지 새로 시집 가서 나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동생이지만, “제발 골수 좀 이식해 줄 수 있겠냐”라는 비정한 절규뿐이었다. 소위 말해서 아주 못된 여자인데 얘기의 결론은 뭐니 뭐니 해도, “과거를 묻어 버리고, 그 엄마들을 용서해 줄 수밖에 없지 않느냐”라 하는 것이고 또 그렇게 했을 때 모든 일들이 잘 해결되고 큰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가 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후자 즉 “행복한 여자”도 결국은 비슷한 얘기인데, 그 얘기인즉, 가정형편이 다른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열렬한 사랑 끝에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게 되는데, 남편이 어느 못된 여자의 유혹으로 한눈을 팔게 되었고, 이것을 용서 못하는 부인은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아이를 데리고 홀로 사는 동네에서 아들 아닌 아들을 아들처럼 데리고 사는 마음씨 착한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결국은 그 남자와 결혼까지 생각하게 된다. 바람피운 남편을 용서하지 못하고 집을 차고 나간 여자가 바랄 수 있는 귀결 중에 그래도 가장 좋게 풀린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기쁨은 잠깐, 결혼 허락을 받고자 양가 부모를 찾아가다가 알게 된 냉혹한 사실은, 그 여자의 엄마를 버리고 멀리 나가서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던 아빠가 재혼한 여자가, 같이 결혼하고자 한 그 남자의 엄마 아닌 엄마였던 것이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따라서 당사자들이 살을 에는 듯한 아픔을 겪게 되는데, 옛날의 원한으로 자식들의 결혼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미운 엄마들이나, 한번 잘못한 것을 용서하지 못하고 이혼을 해버린 여자나, “과거는 다 잊어버리고 서로 용서하고 사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게 만드는 얘기인 것이다.
영화는 이미 대중을 울리고 웃길 뿐만이 아니라, 대중의 의견을 조성하는 강력한 도구이다. 이것은 단지 요즘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고전 중의 고전 삼국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 나라의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통해서 그 나라의 여론을 조성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영화기술이 발달한 지금은 동요보다 연속극이나 영화로 그런 역할을 대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힘이 얼마나 중요하냐 하는 것은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가지고 간 몇 가지의 정성어린 선물 중에 버젓이 한국의 영화를 담은 DVD가 있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얘기가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말았는데, 자녀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무슨 영화를 보고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는가가 그 아이의 생각과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읽은 한 권의 책이나 어렸을 때 본 한 편의 영화가 그 아이의 장래를 크게 좌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책이나 영화가 특히 감명적인 내용을 가졌을 때에는 더구나 더 강력한 힘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하늘만큼 땅만큼”의 정무영이라는 청년이 한 말이 있는데, 자기를 버리고 나갔던 엄마를 용서해 주고 그 동생에게 골수를 나누어 주고 나서 그 엄마에게 청첩장을 주었을 때 엄마가 물었다. “무영아, 어떤 때가 제일 괴로웠니?”라고. 잠깐 고개를 갸우뚱하고 나서 무영은 웃으며 대답한다. “엄마, 신기하게도 다 잊어버렸어요!” 이것은 웬만한 웅변보다도 강력한 메시지인 것이다. 이 연속극을 열심히 보아왔던 순박한 민중들은 마음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감격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우리 집사람도 그 순간 눈물을 딱지 않을 수 없었을 정도이니까. 또 이 메시지를 들은 사람에게는 노 대통령이 그 경계선을 건너면서, “과거는 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날들을 위해…”라는 말을 한 순간 아마도 남다른 감흥을 느꼈을 것이다.
분명히 용서는 강력한 것이다. 더구나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병정들을 위해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주로 믿는 크리스천들에게는 더 더군다나 강력한 메시지였을 것이다. 만일 노대통령을 지지하는 후보자가 이번 대통령 선거를 이긴다면, 이 날의 용서의 메시지가 그 원동력 이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 고쳐 말해서, 목사로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번 선거에 이길 사람은 우리 민족이 겪은 많은 아픔의 대상자들에 대한 융화와 용서의 메시지를 가진 후보였으면 좋겠다. 물론 노 대통령이 잊어버리자고 한 조국 분단에 대한 아픔뿐만이 아니라 과거의 독재자들과 침략자들에 대한 융화와 용서도 포함했으면 더욱 더 좋겠지만 말이다.
자녀를 키우는데 이 용서가 가진 힘은 크다. 특히 감옥에서 사역하면서 수없이 보는 것은 한 죄인이 변화를 받아서 새 사람이 되는 전환점에는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통렬한 용서의 기쁨이 수반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내주에는 용서의 대상과 방법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기 생각해 보고자 한다.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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