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공한백 객원기자의 여름방학 캠프 참가기
<월넛크릭 노스게이트하이/hanbaek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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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떠나고픈 집이 그토록 좋은 줄
집 떠난 뒤에야 비로소 나는 알았어요
공부도 운동도 다 이기려는 나를
하나둘 피하기 시작했던 녀석들이
내가 다시 하나둘 양보하자
녀석들도 다시 하나둘 돌아온 것도…
올해 여름은 Vallejo시에 있는 Cal Maritime이라는 대학교에 가서 6주 동안 공부하는 캠프에 참가했다. 16년을 살면서 집을 1주 이상 집을 떠나보지 못한 나는 전부터 집을 나가고 싶었다. 사춘기가 되어서 그런지 내 마음대로 살고 싶었고, 공부를 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안 듣고 공부하고 싶을 때 할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또 이번 기회에 내가 집에 나간다는 것이 어떤지 경험해볼 겸 기대가 컸다.
첫날 갔을 때는 대부분 흑인들과 멕시칸밖에 안보였다. 원래 사람에게 처음 다가가지 못하는 나는 아시안이라는 중압감 때문에 더 다가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그래도 이제 자유라는 느낌이 행복하고 기뻤다. 캠프 기숙사 방에서 룸메이트 한명과 같이 지내야 하는데 매니져가 다음날 온다고 해서 첫날은 혼자 보냈다.
다음 날 내 기숙사 층에 사는 얘들과 아침을 같이 먹고 수업도 같이 들으러 갔다. 별로 말도 없고 잘 친하지도 않았지만 다들 처음엔 쑥쓰러워 하는 걸로 보였다. 수업이 끝나고 바로 기숙사방에 와서 숙제를 하였다. 아침반엔 수학과 physics를 들었는데 수학을 잘 해서 쉽게 끝냈다. 침대에서 누워서 쉬는 동안 동료들이 와서 숙제를 다했냐고 물었다. 다했다고 말했더니 도와달라고 청했다. 그렇게 해서 친해졌고 중간에 룸메이트도 와서 더 편안해졌다.
이제 친구도 생겼고 캠프에 적응한 나는 집에서 나와서 사는 게 점점 더 익숙해지고 나아질거라고 생각했다. 부모님께 매일 전화가 와도 별로 말을 하지 않는 등 귀찮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몇일이 더 지나자 전화 받기가 싫어졌고 부모님께 전화를 하시지 말라고 하였다. 그때는 정말 부모님 없이 혼자 잘 살 수 있겠다고 믿었다.
허나, 시간이 흐르자 난 점점 homesick(향수)이 깊어졌다. 처음 집에 가고 싶다는 걸 느낀 것은 캠프에서 주는 음식 때문이였다. 매일 고기와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아침, 점심, 저녁 먹어야 했고, 야채까지 기름으로 볶아서 주었다. 원래 야채를 싫어하는 나는 김치가 그렇게 먹고 싶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또 다른 점은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졌다. 침대를 정리해야 쓰레기통을 비워야 하고, 청소해야 되고, 빨래까지 매일 해야 됐다. 시간도 딱딱 맞춰서 수업을 받든지 아니면 먹으러가야 해서 time management(시간관리)가 너무 중요했다.
환경도 적응되나 싶더니 점점 더 불편해졌다. 일요일날은 쉬는 날이라 다른 얘들도 집이 그리웠던지 토요일 밤에 집에 가서 일요일 밤에 돌아왔다. 결국 캠프 2주째의 토요일날 밤, 나는 집이 너무 그리워서 부모님께 전화하지 말라는 말을 뒤에 하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아버지께 전화해서 데리러 와주시라고 부탁했다. 아버지는 기꺼이 가겠다고 하시고 금방 오셨다. 곧 집에 도착했고, 집의 garage(거라지)에 들어가자 마자 마음이 편해졌다. Garage 문을 열고 들어가 어머니께 인사하려고 식탁에 갔는데, 내 앞에 어머니가 해주신 한식이 있었다. 음식을 보곤 내 마음은 폴짝 뛰었고, 인사 뒤 내방에 짐을 놓을려고 뛰어 올라갔다. 2 주만에 보는 내 방이 이렇게 소중하고 편안하게 느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금방 옷을 갈아 입고 밑으로 내려와 자리에 앉았다. 내 앞에 있는 음식을 보면서 배부를 정도로 맛있게 보였다. 하지만 그걸로 만족하지 못했던 나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정말 제일 맛있는 저녁이었다. 밥을 먹으면서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었고, 난 이 세상에서 집보다 편안한 곳이 없고 또 이 세상에서 어머니의 음식보다 맛있는 건 없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저녁을 다 먹은 뒤 캠프에 대해서 더 말씀드린 다음 내 방으로 올라갔다. 내 방이 너무 그리웠는지 난 그냥 내 의자에 앉아서 10분동안 내 방을 둘러보았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있을 곳이 아니면 불편한가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내 방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잠이 들었다. 결국 그 뒤론 내 고집으로 남은 4주동안 토요일밤은 집에 와서 잤다.
캠프 도중 친구들과 같이 농구도 하고 공부도 같이 했다. 자존심이 강한 나는 농구에서 지지 않았고 공부도 탑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허나 이런 나를 동료들이 점점 피해갔다. 농구 할 때는 부르지 않고 공부할 때는 나를 괴롭히는 듯 시끄럽게 떠들었다. 억울한 나는 같은 층에 있는 얘들과 다툼이 이루어졌고 룸메이트도 바꾸어야 했다. 나는 자신에게 이게 과연 내 잘못인가 하고 물었다. 내가 만약 내 동료들이었다면, 분명 나보다 더 잘난 얘와 같이 노는 게 상식이었다. 그 뒤론 나는 농구게임에서 일부러 져주고 공부는 얘들이 안볼 때 했다. 그제서야 얘들과 다시 친해지면서 생활이 편해졌다. 내 자존심을 일으켜 세우는 거보단 남들과 어울리고 내 자신을 낮추는 게 남들에게 더 호응을 받았다.
이 캠프를 가면서 난 너무 많은 것을 배웠다. 물론 과목에서 많이 배웠지만 난 그것보단 더 중요한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미국 얘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 배웠다. 이제는 처음 본 얘들한테도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말도 편안히 할 수 있다. 두번째는 내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을 배웟다. 매일 컴퓨터 앞에서 게임이나 한국프로를 보다가 숙제나 공부를 밤늦게 공부하다가 피곤해졌을 때가 많았었는데, 제일 중요한 것을 미루지 않고 먼저 하니 내가 더 편해지고 솔직히 시간이 더 여유있어졌다. 마지막은 우리 집이 최고라는 것을 느꼈다. 집은 이 세상에서 제일 편한 곳이고,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어머니의 음식이 있다. 이 두가지도 모자라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내 가족이 있는데 집보다 나은 대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 캠프는 나에게 인생의 처음 터닝 포인트를 주어서 너무 소중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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