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대학 보낸 후 텅 빈 부모의 가슴
성인돼 가정 꾸리는 앞날 기대로 달래
몇 주 전 어느 학부모가 막내딸을 드디어 학교 기숙사로 보냈다고 한다. 아침부터 서둘러서 기숙사에 데려다 주고 왔는데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 날은 모두가 같은 날 입주하는 것이라 주차장은 장터같이 붐볐고, 그것을 젊지도 않은 몸으로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짐을 날라주었다고 한다. 그 작업이 다 끝나고 났는데 곱게 키운 딸을 낯선 방에 짐들을 잔뜩 쌓아 놓은 채로 놓고 오기가 좀 안쓰러워서, 다시 한 번 기운을 내서 짐들을 일일이 풀어서 서랍에 넣어주었고, 옷장의 옷도 단정하게 정리를 해주었다고 한다. 이제 남은 것은 침대인데, 대학 기숙사들은 침대 크기가 보통 집에서 쓰는 것보다 한 피트가 커서 모두 새로 장만을 해 주었고, 혹 제대로 안 맞을까 염려가 돼서 다시 한 번 힘을 내서 다 씌워 주고야 안심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름 내내 짐을 이것저것 장만해 온 것을, 입주하던 당일은 아침 일찍부터 온종일 짐을 차에 싣느라, 운전하느라, 나르느라, 또 나중에는 그 짐들을 다 꺼내서 정리까지 다 해주느라 땀을 흘렸는데, 또 그때부터 차를 운전을 하고 집으로 올 생각을 하니 그 길이 너무나도 막막하게만 느껴졌다고 한다. 그래서 방도 정리되었겠다, 침대도 새로 깔아주었겠다, “돌아가기 전에 잠깐만 눈을 붙이고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딸 침대에 누어서 잠깐 눈을 붙였다고 한다. 그랬더니 막 단잠에 빠지려고 하는데, 딸이 엄마를 흔들면서 아주 난처하다는 듯, “엄마, 이젠 그만 가봐!”라고 했다고 한다. 그나마 자식을 내보내며 안쓰럽고 허전한 판에 그 말이 얼마나 섭섭하게 들렸는지, “이럴 것을 내가 무엇 때문에 자식을 키웠나”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그래서 대신 변명을 해주기를 애들이 처음 기숙사에 입주할 때는 서로 “기싸움”을 벌이는데, 행여나 다른 애들한테 어린애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 싫었을 것이고, 그래서 엄마가 오래 있다 못해 잠까지 자고 가면, 그것이 오해를 살까 염려가 되었을 것이라고 하며 겨우 안정을 시켜주었지만, 우리는 형편이 조금은 달랐다. 얼음 한번 안 어는 남가주에서 태어나서 겨울을 모르고 자란 아이들을, 하나같이 춥기로 유명한 시카고나 보스턴 같은 데로만 보냈었는데, 요번만은 아주 가깝고 따뜻한 곳으로 보내는 것이라 너무나 기쁘기만 했다. “다른 애들도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겠다”라고 농담까지 해가며 너무나도 가뿐한 마음으로 데려다 줄 수 있었다.
학비도 자기가 알아서 모두 해결을 했고, 또 용돈도 여름 내내 일을 해서 벌써 언제부터인지 무엇을 살 때마다, “아빠 이건 내가 낼께”하고 세상에서 제일 부자인 것처럼 기세를 부렸던 아이인지라 더욱 그랬다. 조금 힘들기는 하겠지만 공부하기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마련한 것 같고, 만일 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고 저녁에 잠깐 가서 갖다 주면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랬더니 뒷자리에서 언니랑 오빠들하고 전화로 무슨 말인지 소곤소곤 하면서 얘기를 하는데, 이건 언니 오빠들 때하고는 너무나 다른 것을 눈치 챘나보다. 그래서 갑자기 한다는 말이, “이 차에는 왜 이렇게 기분 좋은 사람들만 타고 있어요?”라고 항의하듯이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그 말이 또 얼마나 우스웠던지 우리 부부는 한참을 서로 눈물까지 닦아가면서 웃어 제치고 말았던 것이다.
사실, 막내딸을 대학 기숙사로 보낸 것은 몇 주 전이었지만 우리 아이들의 “집에서 내보내기” 작업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누누이 “미국이라는 나라는 고등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지만, 대학은 그렇지가 않은데, 대학도 너희가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하면, 어느 대학이라도 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그러니까 대학에 가려면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또 그것이 싫으면 얼마든지 다른 길이 있으니까 너희들이 잘 생각해서 결정을 하라”고 말을 해주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엄마아빠를 떠나서 활짝 날개를 펴고 너희 마음껏 잘 살라고, 단지 그것은 너희들이 하기 나름이라고 누누이 말을 해 왔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다소 틀린 말을 하거나 유치한 말을 해도, “말도 안 되는 말 하지도 마!”라거나 “글쎄, 아빠, 엄마 말만 잘 들으라고!” 하는 식의 말은 삼가도록 노력했고 대신, “그래?”라던가, 정 황당한 말이면, “만일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로 반문하는 정도로 자제를 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분이 홀가분했던 것은 몇 주 전까지의 일이었고 지금에서야 느끼는 것은 애들을 집에서 내보내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요 며칠 전에는 집이 너무나 어두운 것을 보고 섬뜩했었다. 가난할 때 자랐던 필자는 항상 불관리가 습관이 되어 있었는데. 한번은 애들끼리 낄낄거리며 얘기하는 말을 문뜩 듣게 되었는데 “너희들, 아빠 정말 웃긴다. 아빠는 이 방에서 저 방에 갈 때마다 이 방 불은 끄고 저 방 불을 켜잖아! 그런데 아까 보니까 침실에서 화장실 왔다 갔다 하는데 그 때마다 계속 이 방 불 끄고 저 방 불 켜고, 저 방불 켜고 이 방 불 끄고(낄낄낄,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자제하며) 아빠는 어떤 때 너무나 웃기는 거야!”라고. 그것이 이제 이런 미국산 애들이 하나도 없으니까 내가 있는 방 빼놓고는 너무나 어두운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때 “아 이제 애들이 없구나!” 하고 순간 느꼈고, 가슴한 구석이 ‘뻥-’ 하고 뚫린 것을 느꼈다. 또 아침마다 새벽기도 갔다 오면서 빵집 앞을 지나면 새로 막 구워낸 빵을 사서 그날 샌드위치를 해주던 생각이 나서 뭉클하고, 또 ‘Barnes and Noble’ 앞을 지나면 “아, 애들이 이젠 저기엔 없구나” 하며 ‘찡’한 것을 느끼곤 하는 것이다.
분명 자식 내보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귀엽기만 하다는 손자손녀들을 언제나 팔에 안겨 줄까 생각으로나마 뻥 뚫린 마음을 위로해 본다.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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