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볼 것 없지만 큰 이득도 없다
요즘 학부모들은 “우리 어릴 때는 방과 후 TV 보고, 공차고, 자전거 타고 온 동네를 누비며 놀았는데…” 또는 “여름방학 때는 시골 할머니 집에 내려가 과수원과 개울가에서 정신없이 놀다가 개학을 맞아 학교에 가면 연필 잡는 법을 잊어버려 글씨가 삐뚤빼뚤 서툴게 써지곤 했었는데…”라며 이와 판이하게 다른 요즘 아이들의 생활을 걱정하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아이들의 삶은 미래를 향한 준비로만 꽉 차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것도 조기교육 열풍으로 3~4세 때부터. 일찍부터 서둘러야 두뇌가 개발된다고 알려져 있는 조기교육, 그래서 프리스쿨 때부터 러닝센터에 보내서 글자와 숫자를 익히는 그런 교육풍토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그리고 도대체 효과는 있는 것인가? 페어런팅 10월호가 이 문제를 다뤘다.
튜터링 업체들 “빠를수록 좋다”
4~6세 대상 읽기·숫자 가르쳐
전문가들 “장기적 효과 증명안돼”
너무 공부만 강요하면 부작용도
■새로운 현실
‘빠를수록 좋다’(The earlier is the better)는 접근방식에 불을 붙인 것은 튜터링 업계이다. 뒤떨어진 공부를 따라잡기 위해서 또 학교 공부를 충실히 잘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차원에서 시작됐던 실반 러닝 센터는 요즘은 프리-K 비즈니스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미 전국에 1,200개의 러닝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이 프랜차이즈는 킨더가튼에 입학할 프리스쿨러들을 대상으로 읽기와 숫자를 가르치고 있는데 이런 프로그램은 뉴욕 맨해턴 같은 도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골, 벽촌에까지 들어서고 있다.
이 업체의 막강한 경쟁업체인 스코어와 쿠몬 노스 아메리카도 마찬가지이다. 카플란사가 소유하고 있는 스코어는 현재 7만5,000여명의 어린이가 등록하고 있는데 이중 20%가량이 4~6세 연령의 학령기 전 유아들이다. 바쁜 번화가나 혹은 샤핑몰에 입점해 있는 스코어에 부모들은 1주일에 두 번씩 자녀들을 떨어뜨려 놓으면 프리스쿨이나 킨더가튼에 다니는 아이들은 컴퓨터를 통해 읽기와 숫자개념을 익히게 된다.
쿠몬 노스 아메리카도 주니어 쿠몬 프로그램이 있다. 이는 프리스쿨러와 킨더가트너를 위해 고안된 프로그램으로 조기 읽기와 산수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은 단지 대형 튜터링 업체일 뿐이다. 한국에서 건너온 눈높이와 재능교육 또 프리스쿨조차도 찰흙과 블록 대신 A B C와 1, 2, 3, 4를 강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대가 변하고 있다
‘낙오자 없는 교육’(No Child Left Behind)정책으로 인해 초등학생들도 표준시험 성적으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미 전국 공립초등학교들은 표준시험 점수를 높이고자 전에 초등학교 1학년에서 가르치던 것을 킨더가튼에서 가르치고 킨더가튼에서 가르치던 것을 프리스쿨에서 가르치도록 밑으로 떠밀기 식 교육을 하고 있다.
예전 킨더가튼 교육과정은 글자를 알고 이름을 쓸 줄 알며 20까지 셀 줄 알면 됐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과정이 프리스쿨에서 다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템플대학의 심리학교수이며 ‘아인슈타인은 플래시 카드를 사용한 적이 없다’(Einstein Never Used Flash Cards)의 저자 캐시 허시-파세크는 “교육의 질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 더 어린 나이에 시작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고 꼬집고 있다.
또 미국학생들이 타 경쟁국 학생들에 비해 성적이 떨어지고 있다는 두려움도 조기교육 과열에 한몫을 하고 있다. 테크놀러지가 주도하는 미래에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살아남으려면 일찍부터 서둘러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조급함이 배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확실한 증거도 없이 두뇌개발에 도움이 된다면 장난감, CD, 비디오를 막론하고 불티나게 팔리고 있으며 이를 너서리 룸이나 플레이 룸에 깔아놓고 있는 실정이다.
■조기교육, 손해될 것도 없지만 이득될 것도 없다
쿠몬 노스 아메리카의 부사장이자 공동창업자인 딘 브래들리는 말한다. 유아들에게 일찍부터 배움의 즐거움을 선사해서 학령기에 이르러서도 프로그램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이에 대해 일부 교육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이런 조기교육 프로그램은 유아들이 효과적으로 배우는 방식을 간과했으며 너무 일찍 밀어붙이는 것의 부작용을 무시하고 있다고 대응하고 있다. 이들은 3~5세의 프리스쿨러들에게 글자를 외우게 하고 은율의 규칙을 인지시키는 것은 가장 나쁜 교육방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일찍 배운 만큼 킨더가튼에 들어가서는 다른 급우보다 읽기와 숫자에 앞서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앞섬이 4학년까지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고 더구나 평생 이어진다는 확증도 아직 없다.
■아이들은 어디서나 배운다
유아들은 쿠몬과 스코어에서도 배우겠지만 그 시간에 뛰고 놀면서도 배운다. 러닝센터에서 1 더하기 1은 2라고 외우겠지만 놀면서는 “엄마, 언니는 아이스크림을 두 숟가락이나 주면서 나는 왜 한 숟가락밖에 안줘요?”라고 항의하면서 배운다. 다른 아이는 러닝센터에서 웍북대로 진행하면서 배우겠지만 노는 아이는 노래와 싸우면서 오가는 말과, 엄마의 야단침에서 언어를 ‘낚시질’한다.
■조기교육, 밀어붙이기 전에 부모 스스로가 질문해 봐야 할 것들
◆아이답게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유아시절은 짧고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삶의 중요한 한 과정이다.
◆포닉스가 레고놀이나 소꿉놀이보다 더 중요한가?
◆배우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알게 해주려면 어떤 방법이 최선인가?
◆아이는 지금도 행복하지만 미래에도 행복할 것인가?
◆웍북대로 하면 훈련은 되겠지만 창의성도 함께 개발되는가?
숫자 10까지 세고 자기 이름 쓸줄 알면 OK
■3~4세 유아들, 킨더가튼에 가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사항은?
1. 사교성과 감정처리: 교실에서 물건을 나눠 쓸 줄 알고, 차례를 기다릴 줄 알고, 그룹으로 같이 일할 줄 알고, 남이 말할 때 잠깐 참을 줄 알면 된다.
2. 한 가지 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한다: 한국어, 영어, 스패니시, 베트남어 등에 상관없이 가족이 사용하는 언어를 완전히 알아들고 응답하고 질문할 수 있으면 된다.
3. 적어도 알파벳 10가지는 알면 좋다: 영어 알파벳 전부를 알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반만 알아도 ‘좋은 출발’이다. 그리고 프린트된 인쇄물에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개념 정도는 인식하고 있어야 하고 책을 열고 닫는 법, 글씨는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읽어 내려간다는 정도까지 꿰뚫고 있으면 ‘박학다식’한 것으로 간주된다.
4. 숫자는 적어도 10까지, 그리고 숫자를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5. 이름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꼬불꼬불 삐뚤빼뚤은 상관없다. 소문자 대문자도 상관없다.
6. 소리와 은율을 어설프게라도 알고 있어야 한다: CAT와 MAT는 둘 다 T소리로 끝난다는 정도.
<정석창 객원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