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피와 버려진 샌들만 나뒹굴고 있다. 보안군의 총기 발사로 몇 명이 사망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시위대와 진압병력이 휩쓸고 지나간 양곤 시내는 혼란 그 자체였다.”
19년만인가. ‘피플 파워’(people power)가 마침내 분출된 게. 그 미얀마에서 전해지는 소식이다. 20여년 전 서울이 떠올려진다. 동시에 평양의 거리가 어른거린다.
사람마다 피곤한 표정에, 굴종의 미소가 배어 있다. 정적만이 감돈다. 마치 무덤의 평화처럼. 블랙홀 같다고 할까. 빛도 굴절되는. 그 체제 하에서 ‘피플 파워’가 분출되는 날이 있을까. 미얀마 사태 뉴스를 접하면서 생각은 다른 곳으로 달린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안 온다는 보장도 없다. 6자회담 재개, 2차 남북정상회담 등 한반도를 둘러싼 잇단 이벤트와 관련된 관측들을 종합할 때 내려지는 전망이다. 우선 주목되는 게 북한 전문가 고든 장의 진단이다.
북한은 생각보다 내부적으로 훨씬 취약한 상태다. 최근의 핵 협상에서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양보들은 북한의 내부 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북한 핵 불능화 팀이 평양을 방문한 시점에 그가 월스트릿 저널에 기고한 내용이다.
핵 불능화에 북한은 전례 없이 협조적이다. 선군정치는 핵무기 개발이 그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핵 프로그램을 왜 갑자기 포기하기로 한 것일까. 북한이 현재 맞이한 내부 위기를 그 원인으로 본 것이다.
엄청난 경제난에 봉착했다. 또 한 차례 대기근이 올지 모를 정도다. 김정일의 건강이 상당히 안 좋다. 지난 5월 심장수술을 받았다. 그 회복이 상당히 더디다. 게다가 ‘왕자의 난’이 발생할 수도 있다.
김정일의 장남, 정남은 한때 권력승계 서열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복귀해 배다른 동생들과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 와중에 북한은 심각한 내부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때 아닌 ‘북한-시리아 커넥션’ 돌출 역시 이상 징후로 받아들여진다. 6자 회담이 진척되고 있고, 2차 남북정상회담을 바로 앞두었다.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문제가 터졌나.
김정일이 모르는 사이에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로버트 갈루치 등 적지 않은 관측통들의 진단이다. 김정일의 절대권위가 제대로 영이 안 서는 상황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은 김정일에게 오히려 정치적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내부 위기설과 관련해 나오고 있는 또 다른 전망이다. 북한은 정상회담에서 크게 3가지 전략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 하나가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둔 북풍변수다. 경선 때부터 노골적 간섭을 해왔다. 역시 전례 없는 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승리의 가능성이 크다. 그 경우 김정일이 입을 정치적 대미지는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의 초점을 흐린다는 게 또 다른 주요 전략목표다. 평화체제 구축 선언이 그것이다. 핵 폐기 없는 평화체제는 그러나 허구다. 더구나 미국, 일본, 중국 등이 특히 예의주시하고 있는 게 이 바로 부문이다. 때문에 목표달성이 쉽지 않다,
세 번째 전략목표는 가능한 많은 경제 원조를 얻어낸다는 것이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퍼주기에 신물이 났다. 그러므로 역시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체제 유지에 목적이 있다’-. 러시아의 북한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의 단언이다. 체제 유지를 위해 돈이 필요한데 아무 조건 없이 지원받을 곳은 한국 정부밖에 없다.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해 마련된 게 정상회담이라는 것.
“희대의 갬블러와 노련한 포커페이스의 대좌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승자가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한 관측통의 총체적인 평이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김정일 모두에게 리스크가 큰 회담이란 말이다. 왜. 키를 쥐고 있는 한국의 유권자들에게 정상회담은 전혀 어필이 안 되고 있어서다.
“5,000만 버마인들의 운명은 몇 시간 안에, 혹은 며칠 안에 결정될 수 있다. 오늘의 위기는 그러나 오래 전부터 조성되어 온 것으로 언제 폭발할지를 아무도 몰랐을 뿐이다.” 미얀마 사태와 관련해 바츨라프 하벨이 한 말이다.
그 말은 북한에도 적용되는 게 아닐까. 이런 식으로 말이다. “김정일 체제가 피로현상을 보인지는 오래다. 어떤 상황에서 그 피로현상이 한계점에 이르러 체제 붕괴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정상회담 후의 북한체제를 오히려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본다.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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