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이 인과 의를 덕목으로 친다면 미국사람들의 최고 덕목은 정직이다. 미국 사람들은 어떤 잘못이 있을 때 잘못 보다도 그 잘못을 숨긴 행위를 더 나쁘게 생각한다. 그래서 기자들이 정치인이나 공직자에게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을 했을 때 한국의 경우라면 그럴듯한 거짓말로 둘러대지만 미국에서는 답변을 거부한다는 뜻으로 ‘노코멘트’라고 답변한다. 최소한 거짓 대답은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링컨 대통령이 어린 시절에 상점의 점원 노릇을 할 때 거스름돈을 잘못 준 손님을 찾아 몇 마일을 걸어서 가서 그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돌려주었다는 일화도 정직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강조하는 이야기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을 물러난 닉슨대통령의 사임을 직접 몰고 온 계기도 워터게이트 도청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던 사건이다. 그러므로 클린턴 전 대통령도 참으로 털어놓기가 부끄러웠던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교묘한 방법으로나마 시인했기에 위기를 모면할 수가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사람을 사귈 때 착한 사람인가, 의리가 있는 사람인가를 중요시 하지만 미국사람들은 정직한 사람인가를 중요시 한다.
이런 정직성을 바탕으로 한 미국사회는 신용사회이다. 신용카드라는 플래스틱 카드가 생긴 것도 이런 신용사회의 정직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이 정직성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30~40년 전만 해도 뉴욕에서 1시간만 차를 타고 나가면 길가에 물건을 진열해 놓고 지키는 사람 없이 빈 깡통만 놓여 있었다. 차를 타고 가던 사람들이 물건을 집고 가격대로 돈을 깡통에 집어넣고 갔다. 지금 그렇게 했다가는 물건과 깡통이 통째로 없어지고 말 것이다.
신용사회의 산물인 신용카드 때문에 신분도용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고객이 업소에서 자기의 신용카드를 멀쩡히 쓰고도 쓴 적이 없다고 우기는 경우도 있다. 신용의 상징인 은행거래에서도 현금을 도둑맞는 경우가 있다. 많은 현금을 한꺼번에 입금하다가 질 나쁜 은행원에 걸리는 날에는 돈을 들고 왔다 갔다 하고 기계에 넣었다 뺐다 하다가 돈이 모자란다고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좋은 투자라고 속이는 사람에게 홀딱 넘어갔다가는 목돈을 사기당할 수도 있다.
요즘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골치 아픈 절도가 종업원 절도이다. 맨해튼 핍스 애비뉴 인근의 한 의류업소가 최근에 문을 닫았다. 외국인이 경영한 이 가게는 한 벌에 몇 천 달러씩 하는 고급 여성의류점이었는데 종업원들이 돈을 훔쳐서 결국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종업원들은 돈만 아니라 물건도 훔친다. 그래서 큰 백화점에서는 종업원들의 소지품을 볼 수 있도록 투명한 플래스틱 가방이나 그물망 백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종업원을 쓰고 있는 한인 비즈니스에서도 이같은 골치 거리는 마찬가지이다. 특히 종업원이 현금을 만지는 업종이나 24시간 영업을 하는 업종이 심각하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델리의 경우 밤에는 주인이 가게를 비울 수밖에 없는데 이 때 돈이 비는 일이 많다고 한다. 어느 델리의 경우 매니저가 딜리버리 맨에게 고기 덩어리를 자기의 차 트렁크에 넣게 하고 대금은 가게의 청구서에 올린 경우도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지키라고 맡긴 격이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종업원을 안 쓰는 비즈니스가 가장 좋은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비즈니스가 종업원을 안 쓸 수도 없으니 조심을 하는 수밖에 없다. 도벽이 심한 그룹의 사람들에 대한 고용을 피한다거나 감시를 철저히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근절될 수 없다면 종업원 절도에 대한 포상신고제라도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리하여 신용사회 미국이란 말은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사회가 이처럼 망가져 가고 있는 것이 무차별적인 이민의 유입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이민자들의 주장은 물론 미국인의 3분의 2 이상이 불체자의 사면을 반대하는데 이같은 정서가 깔려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어찌 이민 때문 만일까. 정치란 이름으로 도둑질을 하고 종교를 빙자하여 사기를 치고 있는 세상이다. 바야흐로 정직의 시대는 가고 불신이 판을 치는 시대이다. 비둘기같이 순결하더라도 뱀같이 지혜롭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하는 세상인 것이다.
이기영 / 뉴욕 지사 주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