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서 성인되는 중요한 과도기
잠깐 흔들리면 끝없이 추락할 수도
당시 섬기던 교회의 집사님의 부탁으로 “사고”를 친 학생 집에 상담을 하러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몇 년 전에도 사고를 쳐서 어머니가 백방으로 손을 써서야 겨우 풀려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본인은 이미 성년이고 상대는 미성년이라 아주 심각하다고 했다. 이번에도 무슨 수를 쓰셨는지 아들을 보석으로 풀려나오게 하였지만 아들은 무료하고 초조한 상태에서 막연히 재판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리빙룸에 사진이 많이 있었으나 아빠의 사진이 없었고, 대부분 교회의 행사에서 찍은 사진과 감사패가 이 청년의 가정환경에 대해서 벌써 많은 것을 얘기해 주고 있었다. 이것저것 얘기를 들어 알게 되었는데, 이민 온 후 부부가 열심히 살던 과정에서 많은 무리를 하게 됐고, 그래서 가정이 깨어졌다고 한다. 아이 딸린 싱글 맘으로 혼자 살아가가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래도 다행히 교회로 인도를 받고 교회도 열심히, 사업도 열심히 하면서 살려고 하고 있었으나, 아들은 한참 민감한 나이에 당한 충격과 상처로 그만 샛길로 빠지고 말았고 급기야는 이런 엄청난 사건까지 일으키고 말게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열심히 교회를 다니시는데 청년도 엄마처럼 열심히 살아야지 않겠는가”라고 말을 띄워보니, 전혀 예상치 못할 정도로까지 흥분해서 하는 말이, “하나님이 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요! 미국이 기독교 위에 세워진 나라라고요? 말도 안 되는 말은 하지도 마세요. 제가 보여드릴 터이니 잠깐만 기다리세요”라고 하며 아파트 문을 차고 나가는데 그 옆 아파트에 가서 한 뭉치 즉석에서 뽑아온 자료를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아들에게 불편하지 않도록 바로 옆에 따로 아파트를 얻어준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 언제 주문을 했었는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피자가 배달되었고 금방 배달된 피자를 맛있게 먹어가며 온갖 원망과 부정적인 얘기들을 쏟아놓는 것이었다.
위에 말한 청년의 이야기는 너무 극단적인 예였는지도 모르지만 이 예를 통해서 지적하고 싶었던 한 가지 포인트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 자녀들을 키울 때 유의해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르쳐 주는 것이냐가 아니고, 더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이 우리 자녀들이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게 해 주었느냐는 것이다.
알고자 하면 이 세상에는 도저히 다 알 수 없을 만치 광대한 세계이며 그 오묘함으로 말하자면 쪼개고 또 쪼개도 끝이 없을 정도로 새롭고 새로운 세상이 전개되는 세상인 것이다. 한 유명한 물리학-수학학자가 연구하는 도중 심한 정신착란으로 고생하는 내용의 영화가 있었다. 최첨단의 증명을 할 수 있는 머리와 정신병자의 머리가 상존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과 백년 전만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와 같이 한 사람이 과학자요 미술가요 시인이며 발명가일 수 있도록 우리의 지식의 세계가 그리 넓고 크지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내시경하나만 볼 때도 네다섯 명의 의사가 달라붙어서 봐야 할 정도로 전문화 되었다 그만큼 우리 지식의 세계가 확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많이 알면 알수록 얼마나 우리가 모르는 영역이 큰가를 알게 될 뿐이다.
이런 속에서 평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긍정적적인 자세를 가지게 하는 것인데, 그러면 이런 긍정적인 자세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성경에 대해서 성경이 말해주는 것 중에 여기에 대한 대답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발등의 비추어지는 등”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시편 119:105). 이것이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세상에 써져 단지 ‘등’에다가 비교한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이 우리가 알 수 있기에는 너무나 광대하고 큰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아주 친절하게도 바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도록 발등 앞을 비추어 길을 가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물론 한 걸음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길을 밝혀주시겠다는 약속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사춘기는 아이에서 성인으로 가는 과도기인데 육체적인 변화와 성인으로 독립해야 하는 위치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로, 만일 이 때 잠깐 흔들리면 자칫 밑도 끝도 없는 의혹과 고민의 늪에 빠질 수가 있고, 일단 부정적인 자세를 가지게 되면 앞에 얘기한 그 청년처럼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그런 엉뚱한 결론으로 자신을 몰고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은 어떻게 우리 자녀들에게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게 해 줄 수 있다고 말해주는가? 그것은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라고 말해주고 있다(고린도전서 13:3). 그것도 당시의 헬라문화가 알고 있던 정도로 낮은 사랑이 아니고, 한없는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 특별히 도입된 ‘아가페’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사랑인데, 이것은 원수를 위해서 오히려 죽어줄 수 있는 정도의 고귀한 사랑인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아무도 할 수 없는 깊은 사랑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것 비슷한 사랑을 우리 부모들에게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새가 알을 품듯이 우리 자녀들을 품어줄 수 있는 것이고, 이런 사랑이 있을 때 자녀들의 마음 한구석에 ‘믿음’이 심어지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자리 잡으면 어둠의 세계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이고, 이런 사랑과 믿음과 소망 안에서의 삶은 규례와 율법을 속박이라고 느끼지 않고 오히려 나의 보호자 같이 느껴서 이것을 쉽게 지키고 사는 것이다. 마치 문이 열린 틈에 살짝 나갔다가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에 금방 다시 집으로 뛰어 돌아온 우리 고양이 ‘싸샤’와도 같이 말이다. 마치 코페르니쿠스가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수많은 별들이 깔려 있는 우주의 한 먼지와도 같은 존재라는 것을 발표하고 나서 보다 풍요한 세계를 알게 되었다.
우리 자녀들도 이런 부모의 사랑이 결실을 해서 결국 부모 보호의 ‘껍질’을 깨게 성장을 하게 되어 한 늠름한 성인으로 광활한 우주의 여정의 선한 순례자로서 더욱 더 풍요로운 살아가게 하는 것이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큰 축복의 하나인 것이다.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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