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상대를 모른다. 언제까지일까?
칼럼니스트 김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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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펼쳐지고 있는 정말 큰 싸움, ‘대선 판국’은 참으로 별나다. 싸울 상대를 기다리다 지쳐 쓰러지는 진풍경을 본다. 2002년 한나라당 선수를 보자. 투표 20여일 남겨둘 때까지 승부를 나눌 ‘맞수’를 몰랐다. 기다리다 기진맥진, 날개마저 꺾인다. 그렇다면 승자 쪽은 어떠했던가. 노, 정(몽준) 단일화를 이룬다. 노무현 후보의 기세는 욱일승천. 싸움 막판에 핵폭발을 일으킨다.
단 한순간을 틈타 승부를 가른다. 누구들 말대로 한나라당이 대세론에 취해졌을까. 그것 뿐일까. 혼자 기다리다 지쳐 ‘절대승기’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바로 ‘2002년 대선 판국의 흐름과 결과’이다.
역사도 승패도 반복 순환되는 것인가? “12. 19. 2007 대선택”을 90여 일 앞두고 있는 오늘의 처지도 어쩌면 그토록 똑같게 펼쳐지는지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다. 오늘의 한나라당이 그렇고, 이명박 후보가 그렇다는 말이다. 8월 20일 이후 지금까지 이명박 후보는 혼자 어성거린다. 10월 15, 16일까지다. 큰소리, 주먹질 한번 못 해 보고 온 몸의 진기만 쇠잔시킬 것이다. 그렇다고 한 순간인들 주저앉을 수도 없다. 천하의 눈이 쪼고 있는 싸움판 위에 올라선 ‘우승 후보’다. 지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뜀박질도 하고 손발짓으로 굳어지려는 몸을 추스려 본다. 그렇지만 그 얼마나 무료, 심심, 답답할 것인가. 알게 모르게 사지(四肢)는 늘어진다. 타오르던 전의(戰意)가 식고, 눈꺼풀은 무거워진다. 그러노라면 부지불식간에 망쪼가 들, 헛된 ‘대세론’이 눈 앞마저 흐리게 한다. 싸울 적장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자기들끼리 싸움을 끝낸다. 입으로 싸우니, “백전백승”. 벌써 이겼다. 위아래 누구 할 것 없이 편을 가르고 무리를 이루며 전리품 챙길 궁리 뿐이다. 오늘의 한나라당 사태가 정말로 그렇다면 10월 15, 16일까지는 25,6일이나 남았다. 참으로 두려운 긴 시간이다.
그 사이에 범여권의 주류인 대통합 민주신당의 기세는 어떠한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누구는 ‘투표율 20%가 무슨 국민 경선인가?’ 묻고 몰아부친다. 그러나 볼품은 별로이지만 첫발을 내딛고 경선후보들의 우열이 드러나기 시작함은 결코 예사로이 볼 일이 아니다. 정동영 후보가 고개를 들어 앞으로 내민다. ”꽃가루 효과”를 등에 업었단다. 1차 지역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승자후보에게 꽃가루 세례가 쏟아지듯 여론 지지율이 치솟는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실시한 <한겨레> 여론조사에 나타난 정동영 후보의 약진은 눈부시다. 전체 대선주자 선호도, 신당 내 3인 후보 간 선호도, 범여권 후보 적임도,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와의 가상 대결 등 모든 항목에서 손학규, 이해찬 후보를 눌렀다. 29, 30일에 있을 지역 경선 2차전. 전남 광주와 경남, 부산 싸움도 정 후보의 우세가 점쳐진다. 지역별 선호도를 보면 전라에서 정동영 54.5% 대 손학규 17.9%, 경상에서는 정동영 28.5%, 손학규 26.5%다. 큰 탈, 이변이 돌출하지 않는 한 정동영 후보가 이기리라는 것이다.
몇몇 모임에서 필자는 가시돋친 질문을 받았다. “왜 손학규 후보를 싫어하고 반대하느냐?”는 것이다. 관심 있어 살펴 왔던 서울의 대선판국이기에 “판 밖에서 보는 재외국민의 시각”을 느끼는 그대로 밝혔을 뿐이다. 사실 손학규 후보를 싫어할 이유도, 반대할 이유도 없다. 몇가지 나름의 의견을 말하기 전에 필자는 그 이웃에게 물어 보았다. ”손 후보가 대선후보가 되지 못해도 끝까지 대통합 민주신당의 당원으로서 책무를 다하며, 당을 지켜가리라 생각하는가?” 대답은 간단했다. “알 수 없지만, 10에 8, 9는 떠날 것’이란다. 욕심 때문에 등 돌린 기억이 마음에 걸린다면서….
19일 밤, 서울 소식은 “손학규 후보 19일 모든 일정 취소, 서울 마포 자택 칩거”로 뒤덥는다. 계속해 손 후보가 당의 후보 경선이 “이런 식으로 가면 (경선을) 더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까지 했다며, “후보 사퇴설”이 당 안팎에 무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손 후보가 경선을 포기하게 되면 경선 판 자체가 깨지는 최악의 사태가 올 수도 있어 손 후보가 지지세를 만회하기 위하여 ‘벼랑 끝 전술’을 택했고, 이는 “꽤 괜찮은 극약처방”이라는 해설도 곁들인다. 그러나 욕심을 내세우고 신의를 저버리는 ‘극약처방’ 만으로 당심과 민심을 얻을 수 있을까. 드러난 흉심이 감춰질 수 있을지….
여기쯤 올라서 살펴볼 수 있는 눈이라면 이제 미우나 고우나, 알던 모르던 새 얼굴 ‘문국현’을 챙겨야 할 것 같다. 이명박 후보와 맞짱 뜰 범여권 선수가 ‘둘’일 수는 없기에 말이다. 또 그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이명박 후보는 어찌 처신해야 할 것인가. 싸워 이길 수 있는 용기가 아니다. 적을 막는 지혜만도 아니다. 스스로 무너지는 자기를 지킬 수 있는 무한한 인내와 겸허가 아닐까. 참으로 어려운 시간들이다. 모두 지켜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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