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을 제외하곤 최근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만큼 탄탄한 선두주자의 자리를 계속 지켜온 후보도 드물었다. 10일 공개된 USA투데이-갤럽여론조사에 나타난 지지율은 45%다. 한동안 심상치 않았던 오바마 돌풍도 거뜬히 잠재운 듯 보인다.
2008년 대선 캠페인의 로드맵은 예년과는 좀 다르다. 각 주마다 예선 일정을 앞당겨 양당 경선의 사실상 판세는 초기에 결정될 전망이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아이오와, 뉴햄프셔, 사우스 캐롤라이나 등 1월 첫 3개주 경선이 힐러리 대세론을 결정할 요인으로 꼽힌다. 이런 분석이다 : 여기서 힐러리가 저조하면 경쟁자들에게 2월5일 대규모 예선일까지 전열을 가다듬어 총공격에 나설 기회를 허용하게 된다, 그러나 힐러리가 이 3개주를 석권한다면 민주당 경선은 거기서 사실상 끝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힐러리에게 경선은 불과 4개월만 남았을 뿐이다…
이 분석이 맞는다면 힐러리의 경선 승리는 거의 확실해졌다. 몇달전만 해도 존 에드워즈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아이오와를 포함, 이 3개주에서의 힐러리 지지도는 9월초 현재 단연 1위로 드러났다. 어제 발표된 LA타임스-블룸버그통신의 여론조사 결과다. 정치분석가들이 제시하는 힐러리의 민주후보 당선확률 역시 낮게 잡아도 80%를 넘는다.
그런데.
민주당내의 날씨는 산뜻한 쾌청이 아니다. 아직도 지지자들이 외쳐대는 “힐러리!” 환호가 반대자들이 제기하는 “힐러리?” 의구심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몇달전에 비해 이념이 달라서, 성격이 싫어서, ‘클린턴’은 지겨워서 등의 이유는 줄어든 반면 뚜렷하게 감지되는 것은 ‘본선에서 패배할까봐’라는 우려다.
힐러리는 민주당 뿐 아니라 공화당 어떤 후보에 비해도 강점이 많은 후보다. 선거의 3대요소라는 지명도, 자금, 조직을 가장 잘 갖추고 있다. 명석한 두뇌와 15년 워싱턴 정가에서 쌓은 경험과 관록이 주는 안정감이, 신선하지만 미숙하기도 한 버럭 오바마와 비교해 플러스로 작용할 때가 많다. 오바마가 주창하는 변화도 인기있지만 그 변화를 실현시킬 수 있는 경험을 강조하는 힐러리가 더 신뢰를 얻고있는 것이다.
물론 취약점 또한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다. 극단적인 이념주의자의 이미지, 갤럽여론조사에서 계속 50% 가까이로 나타나는 안티 힐러리들의 반감, 부시-클린턴 양가의 세습제냐고 되묻는 거부감, 원죄처럼 지고 가야할 클린턴 스캔들… 지난 10여년간 계속되어온 ‘힐러리 죽이기’의 여파이랄까, 힐러리에 관한 책만도 수십권에 이른다.
바꾸어 말하면 이젠 검증 당할 만큼 당했다고도 할 수 있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헬스케어 개혁의 참패, 화이트워터 스캔들 등 이유있는 비판공격에서부터 레스비언이다, 빈스 포스터와 내연의 관계다, 포스터의 암살과 자살위장을 명령했다 등의 근거없는 저질의 험담까지 나올 수 있는 것은 이미 다 나왔다.
쏟아지는 비판과 험담을 딛고 살아남으면서 힐러리는 변했다. 남편의 백악관 입성 1주만에 각료들을 모아놓고 ‘공화당과 미디어는 쳐부셔야 할 적’이라며 일장 훈시를 강행했던 야심만만한 퍼스트레이디의 독선은 사라졌다. ‘정치란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한계를 인정하고 가능한 최선을 실현시키는 것이다’라며 대치하는 양진영의 화합을 끌어내려는 실용적 상원의원으로 재탄생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심사숙고하지만 ‘결정은 내가 내리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내가 진다’라며 성숙하면서도 터프한 리더십을 강조한다.
이만하면 힐러리의 캠페인은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불안하다. 이라크전과 부시의 실정과 공화당의 각종 스캔들로 마련된 민주당 대권탈환의 호기를 놓칠까 두려운 것이다.
불안의 정체는 무엇일까. 뉴스위크 최근호가 그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은 아직도 많은 미국인들이 소리내어 말하기를 불편해 하는 어구다. 여성 통수권자에 대한 선입견이 여론조사 결과(여성도 괜찮다가 90%)보다 훨씬 강하다는 의미다.
본인이 덮고 싶은 부분까지 샅샅이 파헤친 힐러리 일대기를 출판한 칼 번스타인은 이런 불안을 일축한다. “만약 당선된다면 힐러리는 역대 어느 미국대통령보다 백악관과 대통령직에 대해 경험과 이해가 풍부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8년동안 국정에 대해 부통령보다 깊이 들여다 본 경험을 갖고 있으니까. 다행인 것은 힐러리가 정의와 선의에 대한 신념이 강하다는 사실이다” 힐러리에 대해 별로 호의적이 아닌 번스타인의 말이니 객관적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오늘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한인타운을 방문한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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