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 톰슨이 ‘마침내’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했다. 6개월 넘게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어? 이미 후보 아니었어? 라고 묻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공화당 예선전에서 선두인 루돌프 줄리아니에 이어 계속 지지도 2위를 지켜왔으니(6월엔 1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그럴 만도 하다. 톰슨이 누구야? 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2선 연방상원의원이라는 정치경력보다는 NBC-TV의 인기 드라마 ‘법과 질서’에 나오는 거칠지만 정의로운 뉴욕시 검사 아서 브랜치 역을 담당한 배우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테네시주 작은 마을 로렌스버그 출신인 톰슨의 정치스승은 누가 뭐래도 하워드 베이커 전 연방상원의원이다. 그가 시골의 변호사였을 때 연방검사로 발탁한 것도, 30세 풋내기 검사였던 그를 워터게이트 조사위 공화당측 특별검사로 추천한 것도, 내키지 않아 하는 그를 연방상원에 출마토록 강권한 것도 베이커였다.
지난 연말 베이커가 대선 공화당 예비후보군에 ‘당신 이름도 띄워보자’고 했을 때 톰슨은 거절하지 않았다. 지난 3월 전국의 미디어들이 그의 출마설을 집중보도했을 때도 부인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스피치도 다니고, 사무실도 마련하고, 기금모금까지 해가며 한편으로 준비를 하면서도 결단은 내리지 않은 채 할까말까 저울질 하는 동안 훌쩍 여름을 넘겨버린 것이다.
그의 공식발표에 대한 정가의 첫 반응은 ‘너무 늦었다’이다. 그가 미적대는 동안 존 매케인을 제치고 줄리아니의 적수로 부상한 미트 롬니만 해도 저만큼 앞서 달리는 중이다. 톰슨은 오늘 닷새 일정으로 첫 예선지역인 아이오와, 뉴햄프셔등 4개주 순회유세를 시작한다. 이미 롬니가 각각 20여 차례나 다녀온 곳 들이다.
톰슨은 별로 신경쓰는 눈치가 아니다. ‘난 언제나 그랬듯이, 내 방식대로, 내 페이스대로 나갈 뿐이다’라며 자신감을 보인다. 하긴 그는 좀 색다른 후보이긴 하다. 좋게 말해 느긋하게 여유있고, 침착하고 신중하다. 나쁘게 말하면 무관심하고 게을러 보인다. 백악관을 향한 열정과 에너지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번주 그를 커버스토리로 다룬 뉴스위크도 ‘여우처럼 게으른’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그는 정말 대통령이 되고 싶기는 한가를 묻고 있다.
그러나 금년 내내 공화당 보수진영은 톰슨이 ‘21세기의 로널드 레이건’이 되어주기를 꿈꾸며 그를 기다려 왔다. 지금 뛰고있는 후보들로는 메워지지 않는 공백이 있다는 뜻이다. 공화당 후보다운 후보, 강경한 보수정강을 100% 대변할 수 있는 ‘우리들의 후보’에 대한 갈증이다. 낙태나 이민 이슈에서 온건한 중도성향인 줄리아니나 몰몬교도인 롬니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여성과 흑인이 대선의 선두주자로 각광받는 세태의 변화를 불편해 하는 기성 유권자층이 아쉬워하는 ‘지나간 좋은 시절(Good old days)’에 대한 향수도 한 몫 한다.
65세의 톰슨은 이같은 공백과 갈증, 향수를 동시에 채워줄 수 있을 듯한 후보다. 정책은 좀 더 시간이 지나야 채점되겠지만 우선 스타일은 그렇다. 6피트6인치 거구, 세월의 다사다난한 흔적이 지나간 얼굴에 새겨진 관록과 위엄, 매케인이 부러워했다는 풍부한 성량의 중후한 목소리 등 풍모가 우선 ‘대통령다운’데다 복잡한 이슈를 쉽게 풀어 편안하게 전해주는 스타의 대중적 친화력이 레이건을 연상케하는 일면도 없지 않다. 다른 후보들에 비해 허술한 조직의 약점 정도는 보통사람들과 직접 대화하는 민중의 대변자로 커버할 수 있다고 그는 자신한다.
그의 인기가 거품인가, 아닌가는 한달안에 판가름날 것으로 예상된다. 톰슨 깎아내리기 시도는 다각도로 펼쳐질 것이다. 오랫동안 계속해온 로비스트 경력을 둘러싼 언론의 검증도 날카로워 질 것이고 뛰어난 업적 없는 의정생활을 지적하며 능력에 대한 평가도 엄격해 질 것이다. 이런 공격에 대응하며 9월말까지 그가 ‘보수진영의 기수’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으면 공화예선의 선두그룹에 안착할 것이고 ‘무늬만 보수’라는 라이벌들의 비판이 먹혀들면 이리저리 채이다가 중도하차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정가의 진단이다.
아직 고교도 졸업하기 전인 17세때 아빠와 남편이 되었던 ‘말썽꾼’에서 법조인으로, 백만장자로, 배우로, 그리고 이제 백악관을 바라보는 정치가로 정상에 오른 그의 라이프 스토리는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싶어한다. 또 그의 등장으로 밋밋했던 공화당 예선전은 흑백사진에 컬러가 입혀진듯 조금은 흥미로워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보수를 표방하는 그의 정책을 일견하면 그리 편한 느낌은 아니다. 한가지를 제외하곤 세금에서 헬스케어까지 부시와 거의 비슷하다. 그 한가지가 이민이다. 극우보수답지 않게 이민을 향해 마음을 열었던 부시와는 달리 ‘불체자는 초강경 단속, 완벽한 국경경비 실현전에는 포괄적 이민개혁 절대반대’라는 그의 이민 정책엔 마음까지 얼어붙는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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