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노래 묘기… 늦여름밤이 뒤집어진다
온갖 공연형식 망라한
종합 엔터테인먼트 쇼
채플린·버스터 키튼 등
무수한 연기자들 배출
TV탓에 1930년대 사라져
1880년대부터 시작되어 20세기 초,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성황을 누린 버라이어티 엔터테인먼트 형식을 말한다. 유랑극단 및 서커스단 출신 엔터테이너들이 모여 노래, 춤, 마술, 곡예 등 다양한 예능 스케치를 하나씩 보여주면서 차츰 코미디와 연기를 섞어 완전 버라이어티 공연 무대로 키워낸, 다분히 미국적인 문화장르이다.
유럽인들이 19세기 이전부터 여러 형태의 공연 예술을 누리면서 런던과 파리에서 ‘뮤직 홀’ 문화가 피어난 것에 비해 특이할 만한 콘서트 엔터테인먼트가 존재하지 않던 북미에서 보드빌의 출발은 문화적, 사회적으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유랑극단 형식으로 유럽의 뮤직홀을 재연한 쇼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는데, 기존의 무질서한 살롱 쇼와 달리 알콜음료가 금지되고, 질서 있는 극장 문화를 추구하며, 산업화와 더불어 구매력이 늘어난 엄청난 인구의 안정된 중산층 관객을 동원한 쇼 형태가 바로 보드빌이었다. 따라서 수년간 여러 도시에서 산발적으로 보드빌 엔터테인먼트 쇼의 기본 스타일이 확립되었고, 무수한 인물들이 거쳐 가면서 차츰 뚜렷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보드빌의 원조, 혹은 시조를 따지자면, 이전 공연 예술과 확연히 차별화되었던 뉴올리언스의 ‘메디슨 쇼’(Medicine Shows)가 최초의 보드빌 공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보드빌 문화를 결정적으로 크게 만든 계기는 1883년, 쇼 프로듀서 벤자민 프랭클린 키이스(B. F. Keith)가 보스턴에 보드빌 전용극장을 설립한 일. 또 다른 프로듀서 에드워드 알비가 합류하여 극장을 대성공으로 이끈 뒤, 키이스 극단은 전국을 순회하면서 각지에 극장을 세우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대도시들마다 웅장한 외향과 화려한 인테리어를 갖춘 보드빌 극장이 들어섰다.
전형적인 보드빌 무대에는 클래시컬 뮤직 연주자, 대중 음악가 및 가수, 무용수, 코미디언, 묘기를 보여주는 서커스 동물, 마술사, 후디니 스타일 묘기 공연가, 독심술사, 성대모사 배우, 분장술사, 곡예사, 시인 등이 주로 등장하여 서로 연관성이 없는 짧은 무대를 각각 보여주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또한, 당대 뉴스거리를 만들어낸 유명인, 학자, 천재 어린이, 스포츠맨 등이 간단한 연설이나 강연을 펼치기도 하고, 자신이 가진 특징, 또는 재주를 보여주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인기 있는 연극에서 인상적인 신을 발췌하거나 각색하여 간단히 공연하기도 하고, 공연 전후로 단편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도 있었다.
보드빌 극단들은 연 40주 이상 순회공연을 가졌고, 출연진들은 하루 1~2회부터 많게는 4~5회 공연 스케줄을 소화하는 수준이었다. 1919년 기준으로, 일반 공장 노동자의 연봉이 1,300달러 선이었던데 비해 유명 키이스 극단원들은 주 75달러 보수로 평균 42주 공연하여 연봉 3,150달러를 벌었다고 한다.
1930년대 대공황과 시네마 산업의 발달은 보드빌 극장들로 하여금 규모를 줄이거나 아예 폐쇄할 수밖에 없는 여건을 조성하지만, 극단들이 어려움을 겪는 동안에도 보드빌 자체는 영화, 그리고 라디오와 TV에서 음악이 있는 코미디, 또는 코미디 뮤지컬 형태로 꾸준히 지속됐다고 할 수 있다.
보드빌이란 단어는 프랑스 말 ‘Voix de Ville’에서 비롯되어 ‘마을의 노래’, 혹은 ‘타운의 소리’라는 뜻이 있다는 주장과 프랑스 놀만디 근처 한 마을 출신 작가가 15세기에 만든 풍자시 겸 노래 ‘Vaux de Vire’이 변형되었다는 등의 가설이 있지만, 정확한 어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보드빌’ ‘보드빌 디어터’ ‘보드빌 엔터테이너’ 등의 단어가 중산층을 겨냥한 버라이어티 쇼 무대를 알리기 위해 18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됐고, 1932년 뉴욕 팰리스 디어터에서 마지막 공연이 막을 내리기 직전까지 쇼 문화의 대명사로 통용되었다.
보드빌을 대표하는 배우로는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 애봇 앤드 코스텔로(Abbot & Costello),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 로렐 앤드 하디(Stan Laurel & Oliver Hardy), 윌 로저스(Will Rogers), 막스 브라더스(Marx Brothers: Chico, Harpo, Groucho, Gummo, Zeppo Marx), 스리 스투지스(Three Stooges: Moe, Larry, Curly), 잭 베니(Jack Benny) 등 전형적인 스케치 코미디와 슬랩스틱 코미디언들이 있다.
그러나 의외로 유명한 배우, 가수, 음악인 등의 엔터테이너들 또한 보드빌 극단에서 무명시절 공연한 적이 있거나, 아예 전문적으로 소속되어 활동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주요 인물로는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 제임스 캐그니(James Cagney), 헨리 폰다(Henry Fonda), 주디 갈란드(Judy Garland), 밥 호프(Bob Hope), 밀튼 벌(Milton Berle), 진 켈리(Gene Kelly), 진저 로저스(Ginger Rogers), 버트 랭캐스터(Burt Lancaster),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Sammy Davis, Jr.), 미키 루니(Mickey Rooney), 조지 번스(George Burns) 등이 있다.
<고은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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