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라스카를 가다
탓셴쉬니-알섹 강을 따라
자다가 열린 커턴 틈새로 밝은 빛이 들어오길래 눈을 떴다. 시계를 봤더니 새벽 네시였다. 이런 생활을 앞으로 두주간 해야된다 생각하니 몸이 말을 들을까 싶었다. 다시 눈을 붙이려니, 가지고 온 디카의 배터리는 충분한지, 또한 메모리는? 하는 잡념이 들어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강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에는 전기, 수도 등이 전혀 없으니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의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가족들에 대한 생각으로 옮겨갔다.
헤인즈로 가는 페리 부두까지는 45분 걸린다고 한다. 다행히 모텔에서 그곳까지도 셔틀을 운행한다고 하니, 아침 몇 시간동안 다시 시내를 돌아다녔다. 정박해있는 쿠르즈 배로 부터는 나이든 사람들이 오르내렸다. 아! 그래서 우리 아들과 딸이 앨라스카 쿠르즈를 싫어하는구나!
바로 부두 옆에는 곤돌라가 있어서, 산정까지 올라 시가지와 멀리로는 만년설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까지 있지만 맑은 날도 운수소관이다. 다운타운에 써붙인 아파트 광고를 봤더니, 스튜디오의 월세는 700불, 원 베드룸은 800불이었다.
셔틀을 타고 부두까지 가는데 어느 일 가족이 동승했다. 그 중의 한 여성의 액센트가 달라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독일 출생인데 미국인 남편과 오클라호마에 산다고 했다. 옛날 학창 시절 때 배웠던 독일어로 더듬거리며 얘기했더니 좋아하며 웃는다. 그들은 헤인즈에 사는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부두에서 신분증을 보이고 승선표를 받았다. 선착장까지 짐을 손으로 들고 가야했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 주겠다고 나섰다. 린 운하 (Lynn Canal)를 통해 이 두 도시를 연결하는 페리는 빠른 페리 (Fast Ferry; 2시간 15분)와 늦은 페리(Slow Ferry: 4시간 15분)가 있다. 빠른 페리를 타는데 요금은 37불로 인터넷으로 선불했었다. 배가 들어오기까지는 한시간 넘게 남았다. 그동안 이사람 저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가 쉽게 대화문을 여니 개방적인 것 같았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동양인이라고는 혼자였다.
승선해서는 뒷쪽 갑판으로 갔다. 맞바람을 피할 수 있는데다 왼쪽 오른쪽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배가 출발하면서 양 쪽으로 만년설들이 보였다. 한 사람이 옆에 와서 고래가 있다며 손으로 가리켰다. 고래가 숨쉬며 내뿜는 물줄기가 수면 위로 보였다. 고래 자체를 볼 수는 없었다. 이 항로 구간에서도 셀폰의 신호가 떨어져 열심히 통화하는 사람도 보였다. 내일 아침부터는 가족들과의 통화도 못하게 된다. 출발 전 송고한 기사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일보사로 전화를 했다.
갑판에서 사진 찍다가 안으로 들어 가니 미니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다. 헤인즈에서 열리는 앨라스카 스테이트 페어 (Alaska State Fair)에서 공연할 사람들이었다. 그 중 한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방금 찍은 사진을 한국일보에 실어도 되겠느냐고 했더니 좋다며 브루키 먼로 (Brooke Munro)라고 했다. 브루키는 일본에서 이년간 영어를 가르쳤고 그곳에서 부산으로 페리를 타고 가서 서울까지 삼주간 돌아봤었다고 했다.
헤인즈의 부두에 도달하니 호텔 셔틀이 나와있었는데, 그날 숙박객들이 만원이라 기다리겠노라며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혼자 기다리기로 했다. 이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은 틀링기트 (Tlingit) 인디언들이라 부른다. 앨라스카에는 200 여 인디안 부족들이 있었으며 주 언어는 12개 정도이다. 틀링기트 족들이 가장 강력한 인디언들이었다. 1879년 자연주의자 잔 뮤어 (John Muir)와 함께 홀 영 (S. Hall Young) 이 이곳에 선교 본부와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선교사로서 첫발을 디뎠다. 장로교 선교회의 프랜시나 헤인즈(Francina Haines)를 기념하기 위해 이 지역을 헤인즈라 부르게 되었다.
인디언으로 말하자면, 대륙의 인디언들 중 아팟치족은 다른 부족을 약탈하며 일하기를 싫어하는 부족이었다. 나바호 인디언들은 온순하고 농사에 열심이었다. 이차 세계 대전 중, 미군은 이 나바호 인디언들의 언어를 암호로 써서 일본군들이 미군의 암호를 전혀 해독할 수가 없었다.
40분 정도 혼자 부두에 앉아 있으려니 다시 셔틀이 왔다. 운전수와 이야기를 나눠 보니 11월 부터 2월까지는 문을 닫고 유타주로 가서 겨울을 난다고 했다. 2400명 인구의 이 헤인즈는 이 지역에서 캐나다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한 때는 탓셴쉬니강 래프팅 족으로 붐볐으나, 자연을 기피하는 신 컴퓨터 세대의 젊은이들로 인해 조용한 타운이었다. 호텔은 옛날 캐나다와 국경 분쟁 시 미군 기지(Presidio)로 사용했던 건물들을 개조한 곳이었다. 로비에 갔더니 오리엔테이션이 다섯시 반에 있다는 메모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 중, 제일 늦게 도착한 것이다.
참가자들을 만났었는데 뉴질랜드에서 온 부부를 포함해서 모두 여덟명이었다. 즉 여자 한명에 남자 일곱명이었다. 제일 나이 어린 사람이 44세였다. 모두 악수를 하며 통성명을 했는데, 경험으로는 미국 생활에서의 성공 비결은 남의 이름을 빨리 외우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세탁소를 운영하며 손님 한사람 한사람의 first name을 불러주면 손님이 는다. 동양에서는 ‘우리’를 중시해서 성씨를 부른다. 서양에서는 ‘나’를 중시하기 때문에 이름을 (first name)부른다.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주의 사항과 아울러, 방수 가방을 두개씩 내주며 짐싸는 법을 가르쳐준다. 저녁 식사 후 (맛있는 스테이크가 40불), 밖을 내다보니 산봉우리가 석양에 물들어 있었고, 쿠르즈 배가 헤인즈를 떠나고 있었다. 급히 나가 사진을 찍었다. 방으로 돌아와 다시 짐싸는 일에 골머리를 썩혔다. (계속)
<폴 손, ktsf@paulsohn.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