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대선을 코앞에 앞둔 요즘 야당인 한나라당의 예선전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반해 여권이 지리멸렬한 상태에 빠지자 DJ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여권의 대선주자로 나서겠다는 사람들이 DJ를 찾을 때마다 그는 “사생결단을 하고 여권이 뭉쳐야 한다”고 훈수를 하더니 대통합 민주신당이라는 여권 신당이 나오자 이 정당을 대변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여권의 선봉장이 되겠다고 작심한 듯하다.
DJ의 이같은 정치 개입은 한편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야당 정치인으로서 정치적 투쟁의 선봉에서 싸우기도 했고 정치에 직접 관계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배후에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평생 정치를 떠나지 못하고 권력을 추구해 온 그에게 정계를 외면하고 권력욕을 초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기에 이러한 정치 개입은 좀 문제가 있다. 마치 어느 회사의 사장이 현직을 떠난 후 다른 사람이 사장 노릇을 하고 있는데 직원들을 만나서 회사 일을 이러쿵저러쿵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이나 한국의 다른 전직 대통령들도 DJ처럼 직접 정치에 간여한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국가 원로로서 국가적 위기나 중대 사안에 대해 의견을 피력할 수는 있겠지만 정치세력을 규합하거나 조종한다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인 것 같다.
DJ가 현실정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그는 친북좌익정책으로 한국정치의 기조를 바꾸어 놓았고 노무현을 후계자로 당선시켜 이 기조를 계승시켰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보수 세력의 결집으로 정권교체의 실현이 눈앞에 다가왔다. 만약 오는 12월 대선에서 야당이 정권을 장악한다면 그가 이루어놓은 국정의 구도가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DJ가 여권의 재집권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서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러나 DJ의 정치 개입을 의혹의 눈으로 보는 사람들은 그의 저의에 대해 더 큰 의심을 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이 있고 과오가 있으므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DJ 만큼 의혹의 베일에 싸여있는 사람도 흔치 않다. 그가 무명의 정치인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이용하여 원성을 샀던 일, 많은 재산을 끌어 모은 일 등이 권력의 그늘에 가려져 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반대로 권력의 난도질을 받는다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기에 권력에 집착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더욱이 대통령을 하는 동안 남북정상회담을 하면서 북한과 어떤 밀약이 한 것이 아닌가, 그런 대북 자세는 북한에 어떤 약점을 잡힌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대북송금 등 남북관계를 이용하여 막대한 축재를 하여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 뉴욕 비자금설이 떠돌게 되지 않았는가, 노벨상을 타기 위해 돈을 얼마나 퍼다 주었을까 하는 등 의혹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DJ가 정권교체를 두려워하는 진정한 이유는 이런 개인적 비리가 까발려져 그의 허상이 무너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DJ가 여당의 정권 재창출을 위해 정치 개입을 강화하면 강화할수록 그의 저의에 대한 의심은 더 커지게 되고 DJ의 노력으로 정권을 재창출한다면 그에 대한 의혹은 사라지지 않게 될 것이다. 반대로 야당이 집권하게 되어 DJ에 대한 많은 의혹들이 검증을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면 DJ는 한 시대를 이끌었던 정치 지도자로서 역사적 위상이 확고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DJ의 정치 개입은 본인을 위해서나 정치 발전을 위해서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대통령까지 한 사람으로서 이제는 마음을 비우고 정권이 어디로 가든 지켜보면서 좋은 충고나 해 주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난번 보선에서 아들을 국회의원으로 만들기 위해 부모로서 발 벗고 나선 것도 좋은 일이 아니었다. DJ 부부의 영향력으로 아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면 실은 그 아들이 국회의원이 아니라 부모가 국회의원인 셈이다. DJ에게 위대한 인품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 헛된 것인가 두고 볼 일이다.
이기영 /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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