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배우며
얼마 전에 또 배심원으로 나오라는 연락이 왔다. 배심원을 해 본 사람도 기꺼이 “가서 해 보라”고 하기 보다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고 하는 피치 못할 의무여서 영어를 잘 구사하지 못한다고 연락을 했지만 그래도 호출이 왔다.
이런 식으로 아무 전문 지식이 없는 시민들을 마구 동원하여 배심원을 시키는 제도에 대해서 평소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전문 판사들이 판결을 더 잘 내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여전히 들었다.
일요일부터 매일 저녁 전화를 걸어 알아보니 수요일에 오라는 녹음 메시지가 나왔다. 그날 아침 9시에 재판소에 가니 모두 40여명이 왔다고 했다. 간단한 서류 작성을 해서 내고 보여 주는 비디오를 보고 또 기다리니 점심을 먹고 1시 반에 다시 오라고 했다. 어차피 사흘 정도는 희생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온 사람들이지만 모두 생업을 내버려 두고 왔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안 하고 기다리면서 낭비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식사 후 다시 1시 반부터 3시 반까지 또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그때에야 겨우 몇 번 법정으로 가라고 했다. 거기에서 우선 판사와 검사, 변호사와 직원들이 배심원 후보들을 먼저 18명을 뽑아 그들 오른편의 배심원석에 차례대로 앉히고 일종의 심문을 시작했다. 먼저 문제되는 사건의 개요를 얘기했다. 나는 법률 용어도 잘 모르고 하여 정확히 파악을 못했지만 마약과 관련된 사건이었다.
우선 그들은 먼저 뽑힌 배심원 후보들에게 일가친척 중에 재판을 받고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놀랍게도 여러 명이 친구들 일까지 모두 자세히 앞 다투어 보고를 했다. 그들은 후보들을 부를 때 “배심원 몇 번”이라고 호명을 했다. 그리고 친척 중에 법조인이 있는 사람들도 모두 얘기하라고 했다. 경찰관으로 일하는 가족이 있는 사람들까지 어디 어느 부서에서 일한다고 보고를 했다.
그리고 모두에게 거주지와 직업, 가족관계와 배우자, 자녀들의 직업까지 대라고 하여 모두 받아 적었다. 또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묻고 경찰에 대해 부정적인 경험 혹은 긍정적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모두 얘기하라고 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부지런히 솔직한 발언들을 했다.
또 검사와 변호사도 “마약을 합법화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발언하라”는 등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그리고 나서 법정 뒤로 나가서 의논들을 하고 배심원 후보 몇 명을 뒤로 불러내더니 돌아와서 배심원 후보들을 탈락 시키기 시작했다. 우선 말을 잘 못해 언어 장애가 있는 사람과 발언을 많이 했던 사람, 말을 전혀 안 했던 사람, 그 외에도 무슨 이유인지 판사와 검사, 변호사가 번갈아 가며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은 내보냈다. 그리고 나니 저녁 다섯 시가 다 되었다.
그 다음 날은 10시까지 오라고 했다. 나는 배심원으로 뽑히지 않아서 다음 날 오지 않아도 되나 했으나 방청석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오라는 내용이었다. 이 날도 대기실에서 기다린 후 같은 법정으로 갔다. 그 전날 뽑혔던 배심원 중에서 또 여러 명이 탈락되었고 안 뽑힌 사람들이 차례로 불려 나가 그들의 자리를 메꾸었다.
그들도 전날과 같은 질문에 모두 대답을 했고 판사와 서기가 받아 적었다. 이 날은 더 빨리 진행되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차례로 탈락되었다. 나는 마지막 몇 명이 남을 때까지 호명을 안 받았다가 11시 반이 다 되어서야 불려 나갔다. 나는 발언을 하지 않고 “영어로 얘기해서 이해를 못했다”고 솔직히 대답했다. 그랬더니 곧 배심원 직에서 면제 시켜주었다. 면제를 받은 사람은 다시 재판소에 오지 않아도 되었다.
한 재판에 필요한 배심원은 7명에서 9명인 모양이었다. 나는 이틀간의 경험에서 불려온 바쁜 시민들이 사생활의 세부를 다 심문 당하고 그나마 솔직히 얘기한 것 때문에 탈락까지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얼마 후 법원에서 16달러짜리 수표가 왔다. 이틀간에 빼앗긴 시간과 수모에 대한 보답이었다.
이연행 불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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