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나 수준이 밑바닥임을 지칭할 때 우리는 ‘삼류’라는 말을 쓴다. 삼류 극장, 삼류 소설, 삼류 배우, 삼류 인생 등등. ‘경제는 일류, 정치는 삼류’라는 말도 회자됐다. 잘 나가는 경제에 뒤쳐지는 정치를 두고 일본에서 유행하던 것이란다. 90년대였던가, 한국의 유명 재벌 회장께서 이를 빌려 ‘한국 정치 삼류’ 운운하는 언급을 했다가 구설수에 오른 일도 있었던 것 같다.
느닷없이 삼류라는 말을 들고 나온 것은 사회적 시스템 하나는 정말 합리적이고 수준이 높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에서 ‘삼류’라는 말을 딱 떠올리게 만드는 일들이 최근 잇달아 벌어졌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이민 당국의 행정이 그렇다는 말이다.
지난 6월과 7월 두 달 사이 수많은 미국내 취업이민 대기자들은 이민 당국의 오락가락 행정에 말 그대로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경험을 해야 했다. 상당 기간 적체돼 있던 영주권 신청 문호가 어느 순간 전면 오픈된다고 발표됐다. 그 동안 서류 접수 기회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던 많은 신청 대기자들이 한껏 기대에 부풀어 신체검사다 뭐다 해서 접수 준비를 서두른 건 당연지사. 그런데 막상 문호 오픈날이 되니 느닷없이 기존의 발표를 번복해 이민 쿼타 소진으로 문호가 전면 동결됐다며 접수의 문을 아예 닫아버렸다. 그런데 이같은 막무가내 조치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높아지고 연방의원까지 문제를 삼고 나서자 이 전격적인 문호 동결 발표 자체 보름만에 다시 ‘없었던 일’이 됐다.
이민 당국의 갈지(之)자 행보가 너무나 어처구니없어서였을까. 주류 이민 변호사들 사이에선 이번 사태에 대한 음모론까지 제기되기도 했다. 옮겨보면 이렇다. “이민 당국이 문호 오픈 발표를 전격 뒤집은 것은 대폭적인 이민 수수료 인상 시행일을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지금까지 미국내 영주권 서류 접수시 이민 당국에 내는 수수료는 4인 가족 기준 1,600달러 정도였다. 그런데 이것이 인상 뒤에는 4,100달러 정도가 된다. 한 가족에 2,500달러를 더 징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동안 접수가 밀려 있던 신청 대기자들이 수천, 수만 명이 될 테니 한 달만 기다리면 줄잡아 몇 천만달러를 더 거둬들일 수 있을 것 아닌가” 이렇게 퉁긴 주판알이 사상 초유의 영주권 문호 번복 사태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음모론은 말 그대로 음모론에 불과할 뿐 사실 여부를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가 돈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이민 당국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민 변호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사안이 미미해서 그렇지 최근 들어 이민 당국이 오락가락 한 게 이 뿐이 아니다. 온라인 접수 시스템 정비 스케줄, 서류 우편 접수 방식, 새로운 양식 사용 시기 등 최근 이민 당국이 발표했다 번복한 것들만도 한두 가지가 아니란다. 영주권 문호의 급작스런 번복으로 모두가 황당해하던 그 날, 한 이민 변호사는 “대상자들이 백인들이었다면 이처럼 했겠는가. 이민자들이니까 함부로 여긴 게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연방 이민국은 9·11 이후 국토안보부가 생기면서 그 산하에 세 개의 기능으로 갈라졌다. 여기서 우리가 지칭하는 이민 당국의 정식 명칭은 ‘시민권 이민 서비스국’이다. 단속으로 군림하는 기관이 아니라 혜택으로 서비스하는 기관이다. 이민 당국자들은 수수료를 엄청 올려 받는 이유가 보다 효율적 서비스를 위한 시스템 개선에 많은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시스템 개선도 중요하지만 더 시급한 것은 높은 수수료에 걸맞은 ‘서비스 마인드’가 아니겠는가.
느려터지고 갈팡질팡하는 이민 행정에 좌절할 대로 좌절해 있는 합법 이민 대기자들은 외친다. 이민 당국으로부터 이름에 있는 그대로 ‘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삼류가 아닌 ‘일류’로 말이다.
김종하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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