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역사분쟁 사안에 대한 본보의 입장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아트 뮤지엄(AAM)에서 ‘설화전’의 일환으로 전시중인 ‘신공황후의 전설’ 족자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본보는 이를 계속적으로 쟁점화하는 일부 언론과 달리 ‘상대적으로 조용하게’ 처리했다. 이를 두고 혹자는 지난해 봄 독도영유권 분쟁당시에도 “너무나 조용하게 넘어갔다”며 친일파냐는 등 일부 모욕적 언사까지 들먹이며 본보의 역사쟁점 보도원칙을 문제삼기도 했다. 차제에 그동안의 쟁점사안을 사례로 본보의 처리원칙을 밝힌다.
#1) 독도영유권 분쟁 : 혹자의 지적대로 본보는 지난해 봄 이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을 때 비교적(또는 너무나) 조용하게 넘어갔다. LA 등 미국 내 타지역 한인커뮤니티에서의 일본규탄 시위나 서명운동에 대해 전달은 했으나, 북가주 한인사회에서의 캠페인을 주도하지 않았고, 몇몇 인사들의 일본총영사관 앞 시위움직임에 대해서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당시 본보와 유사한 입장을 취했다고 판단되는 정상기 전 SF총영사의 사석발언으로 대신한다.
“(일본 총영사관 앞에서) 그런 시위를 하려면 당사자보다는 구경하는 제3자들, 일반 미국사람들 입장을 잘 살펴야 돼요. (시위를) 하기는 거기서 하지만 실지로 들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이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데 독도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자꾸 ‘독도는 우리땅, 독도는 우리땅’ 이러면 ‘아 그게 무슨 문제가 있나보다, 분쟁지라는 인식만 심어주게 돼요. 일본이 뭐라고 하든 실지로 우리가 지배(실효적 지배)하고 있는데, 우리가 나서서 우리땅이다 우리땅이다 이러면 득될 것이 별로 없어요. 이렇게 비유합시다. 자기 손에 뭘 쥐고 있는 있는 사람이 돌아다니면서 이거 내꺼다 이거 내꺼다 그러면 듣는 사람들은 어 그래 그거 당신것 맞다 이러겠어요? …”
실제로 국제적 관례도 그렇다. 일본이 좋은 예다. 독도에 대해서는 그토록 영유권을 주장하지만 중국이 중국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령 댜오위다오(釣魚島)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한다. 영국이 아르헨티나의 줄기찬 반환요구에도 불구하고 아르헨 인근 작은 섬 포클랜드(아르헨티나는 말비다스라고 부른다)에 대해 지레 우리땅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같은 관점에서 본보는 지난해 여름 독도지킴이 대학생들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미 전국을 일주하며 독도는 우리땅 홍보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북가주에 왔을 때도 ‘상대적으로 조용하게’ 처리했다. 애국적 민족적 열정을 잠시 식히고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독도는커녕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도 가물가물한 미국인들 눈에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주장하며 모터사이클을 타고 미 전역을 누비는 일단의 한국대학생 행렬이 어떻게 비쳐졌을 것인가를,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실제로 얻을 이익이 무엇인가를.
#2) 요코 이야기 파동 - 올해 봄 시작된 요코 이야기 파문과 관련해서도 본보는 대략 다음과 같이 보도원칙을 정리했다.
작가가 아무리 자전적 소설이다, 실제 경험에 바탕해 썼다고 주장한다 해도 소설은 소설이다. 소설 내용이 역사적 사실에 맞다 틀리다 시비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그런 관점이라면 한국 작가들이 쓴 소설이나 만화 등 갖가지 창작물에도 일본인들이 역사적 근거를 무기로 반론을 제기할 것들이 적지 않다. 따라서 이번 사태의 초점은 소설의 역사성(?)이 아니라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소설이 공공교육기관에 의해 권장도서로 지정됐다는 점이고, 따라서 우리의 운동역량은 이를 시정하는 데 모아져야 한다(오해의 소지를 방지하기 위해 분명히 밝혀두지만, 본보는 그 소설의 문제점을 가볍게 여긴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파문의 첫 태동지였던 보스턴교육구뿐만 아니라 북가주 쿠퍼티노교육구 등 여러지역 교육당국이 권장도서 목록제외 등 응분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만일 이 캠페인 주도자들이 작가와의 논쟁에 에너지를 분산 내지 허비했다면 이같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것이고, 제3자들로부터 큰 공명을 얻지 못햇을 것이다.
#3)AAM 족자파동 ?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아트 뮤지엄(AAM)의 ‘설화전’과 관련해서는 입장정리가 보다 까다로웠다. 일각에서는 요코파동과 마찬가지로 뭔가 가시적인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다른 일각에서는 요코파동 초기 교육당국이 미온적인 것에 비하면 AAM측은 우리의 서면요구에 ‘비교적 신속하고 신중하게’ 대응했다는 차이점 등을 들어 무리한 요구는 삼가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보 등 한인언론이 문제의 족자 전시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AAM측이 SF총영사관측의 주의환기 서면지적을 받고 오해방지용 설명문을 붙여놓은 뒤였다. AAM측은 이후에도 한국적 시각의 반영폭을 더욱 넓혔다.
그래도 역사왜곡 소지 때문에 철거가 마땅하고 따라서 유형무형 압박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들이 많다. 우리의 상대는 1,700여년의 설화를 근거로 600여년 전에 그 그림을 그린 화가도 아니요, 또 역사적 객관성을 결여한 그 그림을 보존해온 일본도 아니며, AAM측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AAM측에 대한 우리의 요구 내지 압박의 수위조절이다. 유념해야 할 것은 AAM은 한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닌데다, 문제의 족자를 역사자료의 텍스트로서가 아니라 동방 어느 나라의 설화에 근거한 ‘아주 오래된 예술품’의 하나로만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우리가 주장하는 역사적 허구성에 우리만큼 관심을 보일 이유가 별로 없다. AAM측도 600여년 전 그 화가의 역사관이나 1,700여년 전 일이 허구인지 사실인지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요구를 상당부분 신속하게 반영할 이유 또한 없었을 것이다(히말라야특별전 때 중국측 항의를 무시하는 등 다른 예로 보아 이는 매우 이례적이다.)
전후사정이 이러한데도, 일부언론에 인용된 것처럼 족자그림의 허구성-그것도 AAM측 입장에서는 ‘한국측 주장’일 뿐이다-을 빗대어 일본x들이 어떻고, 전미주 한인사회가 총궐기라도 해야 할 듯이 비분강개하는 것은 #1에서 언급한 것처럼 제3자들 눈에 우스꽝스럽게 비쳐져 우리의 설득력을 스스로 갉아먹을 우려가 없지 않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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