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주제는 자유이고, 인간의 주제는 사랑이라고 했다. 장애우를 사랑하고 도와주고 그들의 어려움을, 아픔을 함께 나눌 때 세상을 살만한 가치가 있고 사회는 더욱 인정이 넘칠 것이다. 오늘도 온종일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레이몬이 “하이 미스터 부시”라고 나를 불러준다.
마주치면 어김없이 레이몬은 “하이 미스터 부시” 하고 반가워하면서 제법 절도 있게 거수경례를 한다. 물론 그는 군대도 다녀오지 않았고 제식훈련도 받지 않았다. 그냥 어디선가 보고 배운 것이다. 장난기 어린 인사지만 서로 인사를 교환하며 그의 절도 있는 동작과 구령에 기분이 좋다. 언제나 한결같이 반기는 그를 보며 참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품성의 소유자라는 느낌이 든다.
레이몬은 나의 아내가 경영하는 가게 옆 마켓에서 일하는 20대의 키가 늘씬하고 근면한 청년이다. 하루종일 부모님을 도와주고 꾀도 부리지 않고 불평도 하지 않는다. 부지런하여 종일 부모를 도와드리는 것으로 행복해하고 맡은 일을 철저히 한다. 하루에도 수백명 오는 손님에게도 친절하게 물건 보따리도 들어주고 문밖까지 마중을 나가며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는지 늘 즐겁기만 하다. 영어도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아 어려서 이민 왔거나 이곳에서 태어난 것 같다. 안타깝게도 선천적으로 약간의 신체적 결함을 가지고 태어났을 뿐이다.
마켓 내의 모든 일을 철두철미하고 원리원칙대로 처리 한다. 거짓말도 하지 않고 남이 하는 거짓말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한번 가르쳐 주면 그대로 하며 유머감각도 풍부하다. 그 언젠가 처음 만났을 때 나의 이름이 무어냐고 묻길래 “미스터 부시”라고 했더니 그때부터 나를 부시 대통령을 연상하면서 “하이 미스터 부시”하면서 거수경례를 한다.
교회 목장모임에서 목원들은 일주일 동안의 서로의 삶을 나누는데 나는 레이몬을 그곳에 초대하고 싶었다. 내가 목장모임을 시작한 이후 언제부터인지 레이몬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레이몬이 지금은 부모님 밑에서 선하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살지만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게 되는 그 때는 어느 정도 사회로 부터 소외당하지나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레이몬에게 신앙을 갖게 해주고 싶었다.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레이몬에게 신앙을 갖게 한다면 그의 삶이 힘을 얻고 더욱 큰 보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맡고 있는 밀알목장이 장애인 선교를 담당하는 밀알선교단과 관계를 맺은 지도 거의3년이 지났다. 세상에 태어날 때 장애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어느 부모가 장애아를 낳고 싶어 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가 하면 세상을 살아가다가 불행하게도 장애인이 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나도 초등학교시절 인천 월미도로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갔다가 순간의 부주위로 왼쪽 눈을 다쳤다. 사력을 다해 시력을 회복하려 노력했으나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하나님, 두 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살아가며 수없이 감사를 되풀이했다. 남몰래 울기도 했다. 어느 때는 “왜 하필 내가” 하며 공연히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어쩜 눈병이 나도 신기하게 시력이 약한 눈만 나게 되고, 성한 오른쪽 눈은 멀쩡했다.
시력이 약한 눈은 가까운 거리는 뿌옇게 형체만 보이지만 두 눈으로 보면 멀리도 볼 수 있어 별 불편이 없었다. 젊었을 때는 육군전방 소대장도 했고 미국에 와서는 운전면허 시험도 합격하여 26년간 무사고로 해외생활도 잘하고 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내가 눈으로 인해 아픔을 가졌기에 장애자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닐까. 예수님이 모든 “장애가 장애인의 죄도 아니요 부모의 죄도 아니다. 오직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말씀한 것처럼 나는 레이몬에게도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다고 확신한다.
역사의 주제는 자유이고, 인간의 주제는 사랑이라고 했다. 장애우를 사랑하고 도와주고 그들의 어려움을, 아픔을 함께 나눌 때 세상을 살만한 가치가 있고 사회는 더욱 인정이 넘칠 것이다.
오늘도 온종일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레이몬이 “하이 미스터 부시”라고 나를 불러준다.
<백인호>
약력: 고려대 영문학과 졸업. 미주 수필문학가협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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