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고배를 들었다. 부통령까지 지낸, 명색이 한 때의 대선주자가…. 정치생명은 끝났다. 언론들의 하나같은 분석이었다.
만사휴의-.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다. 마음을 정리하고 해외여행에 나섰다. 프랑스를 방문했다. 공항에 도착한 순간 깜짝 놀랐다. 성대한 환영의전이 펼쳐져서다. 게다가 별도로 연락도 왔다. 대통령, 그러니까 드골이 만나자는 것이었다.
왜 야인에 불과한 나를 이렇게 대접하는가. 드골에게 물었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자유 프랑스시절 상당히 푸대접을 받았다. 그래서 약소국의, 또 낙백한 처지에 있는 외국 지도자들을 극진히 대접하는 게 자신의 신조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충고를 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외교를 모르는 사람은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없다. 귀하처럼 해외문제에 밝은 미국의 정치인은 몇 안 된다. 참고 기다리면 반드시 때가 온다.” 드골의 예언대로 닉슨은 대통령이 되고 ‘핑퐁외교’란 신화를 남긴다.
외교를 모르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상식이었다. 미국의 국가적 이해는 물론이다. 때로는 서방세계 전체의 이익을 돌보아야 한다. 미국의 대통령에게 부과된 업무이었기 때문이다.
그 상식이 한 때는 더 이상 상식이 아니었다. 냉전이 끝나면서 해외정책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게 됐던 것. 그 상식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러면서 나오는 전망은 2008년 대통령선거는 해외정책이 주도하는 선거전이 된다는 것이다.
예측이 참으로 어렵다. 15개월을 앞둔 미국의 대선을 두고 하는 말이다.
경제는 지속적 성장세다. 주식시장도 호황의 연속이다. 유권자 정서는 그런데 그게 아니다. 70%의 유권자가 미국이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왜. 속내를 알기가 어렵다. 그러나 뭔가 잡히는 게 있다. 불안감이다. 경제전선에는 분명 이상이 없다. 그러나 그 저류에는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 그 불안감은 테러리즘 대처에 어딘가 미흡하지 않은가 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테러전쟁의 중심부는 이라크다. 이라크 사태는 그러나 상당히 유동적이다. 때문에 15개월 후의 정치풍향계를 점친다는 건 무리다. 그래서 불확실성의 불안감만 감도는 것이다.
한 가지는 그러나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2008년 대선구호는 “문제는 경제가 아니야, 알아!”가 된다는 것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유권자들은 ‘외교를 아는, 그리고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난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테러와의 전쟁 중에 있기에.
미국만이 아니다. 대선을 불과 네 달 앞둔 대한민국에서도 절실히 요구되는 게 바로 그런 지도자가 아닐까.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를 보면서 특히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위기란 무엇인가. 그 정의는 국가 간 악화된 관계의 축적을 말한다. 정보가 없다. 오판의 연속이다. 그 가운데 상대를 자극하는 발언으로 일관한다. 관계는 날로 악화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진짜 위기가 발생한다. 전쟁이나, 전쟁에 준하는.
위기관리란 때문에 대통령의 소신을 말하는 게 아니다. 평소 국가 간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는 모든 외교적 노력을 뜻한다. 정확한 정보와 그에 따른 전략적 판단을 바탕으로 한.
정보도 없었다. 전문가도 없었고. 한국군이 파견된 국가임에도 말이다. 미국인이, 이탈리아인이, 독일인이 납치된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슬람이스트 테러와의 전쟁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로 치부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테러전쟁이 나의 일이 된 것이다.
상황 발생 이후도 여전히 허둥지둥 이다. 정보부재에, 외교력 부족으로. 그 가운데 인질들은 희생되고. 가슴 아픈 일이다. 냉정히 보면 그렇지만 아프간사태는 작다면 작은 일일 수도 있다. 한국과 이해가 먼 곳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태란 점에서다.
그러나 큰 사태일 수도 있다. 뭔가 예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전 국민이 북한의 핵 인질이 돼 있다. 그러나 무관심이다. 그리고 23명의 안위에만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아프간 피랍사태와 관련해 한 외국인 관측통이 지적한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진짜 위기는 어디서 올까.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는데서다.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이다. 때문에 대통령이 신통치 않아도 관리가 가능하다. 한국은 과제가 많은 나라다. 통합적인 지도자가 나오지 않으면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국제위기감시기구(ICG)의 피터 벡의 말이다.
동북아의 안보지형이 바뀌면서 곳곳에 위험이 잠복해 있다. 자칫 4,900만 한국민 전체가 인질이 될지도 모를 정도다. 그래도 태평천국이다. 그 한국의 정치권에 대한 질타다.
아프간 피랍사태에서 애써 교훈을 찾는다면 바로 이점이 아닐까. ‘위기무감각 증세’에서 깨어나라는.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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