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을 탈출한 탈옥범이 경찰에 쫓기다가 무고한 사람을 인질로 잡고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여 활로를 찾는다. 인질범은 돈과 헬리콥터를 요구하여 인질을 데리고 탈출한다. 영화에서나 현실에서 이런 인질극을 가끔 보게 된다. 한국에서는 한때 탈영병이 쫓기다가 이런 인질극을 벌인 사건이 많았고 비행기를 납치할 때도 이런 인질극을 벌였다.
이럴 때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이 인질의 안전이다. 미국의 TV 시리즈에 나오는 스왓팀은 인질범을 과감하게 제압하고 통쾌하게 인질을 구출해 내지만 현실적으로 인질을 잡고 있는 인질범을 제압하기는 쉽지 않다. 인질범의 요구를 들어주고 인질범이 무사히 도망칠 수 있도록 방임하는 것이 인질범죄를 조장하는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인질을 죽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인질사건이 벌어지면 일단 범인의 요구를 들어주더라도 인질을 풀어주게 한 후 나중에 수사를 하여 범인을 잡는 것이 순서이다.
한국인 23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무장세력에 납치된 사건으로 한국은 물론 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그사이 인질들이 살해되었고, 납치무장세력은 한국이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아서 살해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추가로 더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인질사태가 발생하자마자 한국정부는 아프간 정부와 협의하면서 인질석방 노력을 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비극적 결과가 나타났고 남은 인질의 생사에 대해서는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니 인질사태에 대한 대처가 잘 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납치세력이 처음 내세운 요구는 한국군의 아프간 철수라고 알려졌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면서 그 요구조건 보다는 아프간 정부가 수감하고 있는 탈레반 죄수의 석방에 무게를 두는 듯 했고 그 후 인질에 대한 몸값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현재 납치세력의 요구조건이 죄수 석방과 몸값 지불인지, 몸값만 지불하라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다수의 인명이 걸려있는 이 납치사건에서 납치세력의 실체와 요구조건이 애매모호하니 협상 채널이 제대로 가동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이번 사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인질사건의 해결 순서를 따라야 할 것이다. 인질의 구출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그러자면 납치세력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협상 채널을 바로 찾아내 납치세력의 요구조건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들의 요구가 탈레반 죄수의 석방이라면 아프간 정부와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인질에 대한 몸값을 요구한다면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테러범에 대한 어떠한 협상도 반대하고 있는 미국과 이 문제에 대해 사전에 조율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어쨌든 인질사태에서는 인질부터 구출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이다.
두번째는 아무리 선교가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아프간과 같은 위험지역은 피해야 마땅할 것이다. 9.11 테러 후 지금 이 세계는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가 극도의 대립상태에 있다. 이슬람지역에 기독교를 선교하겠다는 것은 십자군과 같은 용기와 사명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한 일이다. 입장을 바꿔서 볼 때 아프간의 과격 이람 세력인 탈레반이 기독교 세력인 미국에 의해 몰락당한 후 기독교를 전파하러 온 외부세력을 그냥 두고 보겠는가. 이 선교활동이 단순히 종교활동에 그치지 않고 국가에 부담을 주고 테러와의 전쟁을 하고 있는 전세계의 모든 국가에 장애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 깨달아야 할 것은 이제부터는 한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방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제 정치적, 경제적으로 국제무대의 중심에서 그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 안보의 당면과제는 테러이다. 한국의 역할이 커진 만큼 테러 위협도 그만큼 커졌다. 이번 사건은 한국이 세계의 테러권 안에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우쳐 주었다. 테 러를 방지하여 국민의 안전을 도모해야 하고 나아가서 테러 근절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기영 /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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