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선 비범하다고 생각되었던 아이가 점점 평범한 사람으로 그레이드 다운 되어간다. 내 눈에는 치열하지도 않고 꿈도 없어 보이는 무사태평한 아이로만 여겨진다. 이제는 내가 진심으로 바라지 않았던 인간형으로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만큼 나의 기대도 포기 되어 간다는 말 일 터이다. 그래도 조금 욕심을 부린다면 즐겁게 맡은 일을 하면서 공동체와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질색하던 아이가 무슨 바람인지 트럼펫을 배우겠다고 했었다. 제 아빠가 부는 것을 보니 쉬워보였으리라. 배우고 나서 얼마 안 되어 교회의 오케스트라에서 연주 하던 날, 감격하여 눈물이 날 뻔하였다. 이 아이가 음악의 천재성을 타고난 것이 아닌가 싶어 마치 정경화나 정명훈의 엄마가 된 듯 으쓱 하였다. 사실 오케스트라의 세컨드 트럼펫은 박자 맞춰 잠깐씩 뿡뿡대면 그만이란 걸 후에 알았으니 과잉 흥분이 싱거운 꼴이 된 셈이다.
그 후에도 아이에 관한 한 착각의 연속이었다. 학기가 끝나 대통령 사인이 들어있는 상장을 받아오면 한국교육을 받은 나 같은 엄마들은 깜짝 놀라는 동시에 아주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매그닛(Magnet) 스쿨에 입학했을 땐 ‘영재학교’에 들어갔다고 유난을 떨었다. 이곳의 교육은 참여도나 의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 학업 성취의 결과는 두 번째 문제가 아닌가 말이다.
대학을 결정할 때 아이와 부모 사이에 약간의 의견 차는 있었지만 대학에 입학하였고, 기숙사에 들어가는 날 트럭에 잔뜩 짐을 싣고 함께 갔다. 그게 아들 아이 학교에 처음 방문한 날이었고 며칠 전에 아들은 졸업하였다.
졸업식 전날 오클랜드로 향하는 비행기에 앉아 생각해보니 버클리로 가는 두 번째 방문이었다. 4년 동안 틈틈이 아들이 집에 다녀갔기에 모르고 지냈는데, 시작과 끝날 두 번 방문이라니 참 무심한 부모가 아니었나 싶다. 오히려 한국에 사는 동창은 먼 한국에서도 딸을 보러 미국엘 오곤 했는데 말이다.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아들은 그저 보통의 성적으로 무사히 졸업하였다. 폴리 사이(Political Science) 전공한 114명의 졸업생중 대부분은 대학원 과정의 로스쿨(Law School)로 진학을 한다. 버클리 법대(Boalt)로 가는 아이들이 많은데, 아들의 하이스쿨부터의 친구인 지오(Giovanni)는 하버드 법대에 입학 허가를 받았다니 더 대견하다.
턱수염도 기르고 점잖아 보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빡빡머리 우리 아이는 어리기만 하다. 주위 친구들이 다 변호사 될 터인데 뭣 하러 자기까지 어려운 법 공부를 하느냐며 법대는 안 가겠노라고 한다. 졸업을 겨우 한 것이 마치 남들 안하는 큰일을 성취한 듯, 자신에겐 쉼이 필요하다고 하여 웃었다. 이제 시작인데 장래 걱정도 안하고 한 달 반 동안 스위스와 유럽 여행을 간다는 아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무도 없는 미국에 달랑 세 식구 살면서, 직장과 집을 종종 걸음으로 오가며 행여나 밖에서 책잡힐까 안에서 탈날까 전전 긍긍하며 키웠다. 어느새 내 마음 속에 아이를 키운 ‘희생’을 보상 받길 원했나보다. 나의 열등감, 억눌린 자기 욕망을 아이에게 투영하면서 “이게 다 너를 위한 일.”이라고 합리화 했었다. 성품 좋은 아이이기보단 데리고 다니기 좋은 아이로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젠 어딜 가도 따라 나서지 않는 나이가 된 아들아이이다. 졸업식에 가서 사귀는 걸프렌드와도 상견례 하였으니 아이라기 보단 어른에 가깝다고 하겠다.
어려선 비범하다고 생각되었던 아이가 점점 평범한 사람으로 그레이드 다운 되어간다. 내 눈에는 치열하지도 않고 꿈도 없어 보이는 무사태평한 아이로만 여겨진다. 이제는 내가 진심으로 바라지 않았던 인간형으로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만큼 나의 기대도 포기 되어 간다는 말 일 터이다. 그래도 조금 욕심을 부린다면 즐겁게 맡은 일을 하면서 공동체와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간은 인간을 만들 수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나는 변하지 않으면서 아이에게만 바란 것은 없는지, 내가 ‘사랑’이라고 이름 지은 오만에 자칫 아이가 주눅 들지 않았는지 아이의 졸업에 나를 뒤돌아보았다.
아이는 벌써 어른이 되어가는 데 나의 후회는 이리 더디다. 졸업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란 걸 아이도 늦게나마 알아채리라. 한 박자씩 늦는 가족이다.
<이정아>
약력: 한국수필 작가회 회원. 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재미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집 ‘낯선 숲을 지나며’ 제2회 해외 한국수필 문학상 수상.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