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연씨의‘두손 홈 & 갤러리’에 가보니…
앤틱 아트샵을 운영하며 30년간 다져온 창작열정
폐기되고 방치된 것들이 그의 손을 만나면
예술이 되고 혼이 숨쉰다“이젠 내 작품만 몰두하고파”
김영연씨의 ‘두손(DUSON) 홈 & 갤러리’에 들어서면 한동안 시선이 헤맨다.
결코 작지 않은 공간에 너무 많은 작품들이 빼곡히 진열돼 있기 때문에 무엇부터 보아야 할지 조준이 잘 되지 않는 탓이다. 마치 앤틱 박물관에라도 들어선 기분. 크고 작은 각양각색의 작품과 컬렉션들이 방마다 복도마다, 바닥과 벽과 천장과 탁자 위와 아래, 그 틈새의 모든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두손 홈 갤러리는 김영연·이광수씨 부부의 생활공간이자 작업 스튜디오이고 아트 갤러리이다. 베벌리 블러버드와 알바라도, 예술 공간으로서는 그럴싸하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이곳을 김씨가 그의 ‘두손’으로 모든 것을 만들고 채웠다. 원래 봉제공장과 오토샵이었던 후진 건물을 입구에서부터 아래 위층 모두 뜯어고쳐 아주 독특한 분위기의 갤러리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김영연씨가 2년 넘게 공들여 지은 ‘두손 홈 & 갤러리’에는 세계 각국의 진귀한 골동품들이 가득하다.>
김영연씨는 설명이 어려운 사람이다. 그와 비슷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 패션 디자이너였던 그는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골동품 수집가이자 딜러가 되었고 동시에 인테리어 디자이너이면서 자신이 작품을 창조하는 조각가이자 생활 속의 가구예술을 디자인하는 라이프스타일 아티스트로 독창적인 삶을 꾸려가고 있다.
이 모든 직함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 아트와 라이프, 삶 속의 디자인이다.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물건에서 실용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찾는다. 폐기 처리된 스쿨버스 패널이 시크한 테이블로 변신하고, 쇠창살과 철문 조각이 탁자다리가 된다. 오래된 손잡이(door knob)는 페이퍼 웨이트로, 자동차 스프링과 엔진오일 깔때기는 대단히 모던한 램프의 몸체로 부활한다.
<문 손잡이를 잘라내 만든 페이퍼 웨이트들.>
100년도 넘은 철제 상점 간판, 프리웨이 사인판, 거리 사인들, 코카콜라 병, 1885년에 돌아가던 칼갈이 돌과 우리나라 맷돌, 포탄 조각, 비행기 프로펠러, 하다못해 수도관 파이프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갤러리에 걸리면 그 자체로 작품이 된다. 그는 산업용 중고 철제품을 많이 사용하는데 거기에 돌, 유리, 나무를 더하여 기발한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작품과 컬렉션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시간이 창조한 예술’이다. ‘세월과 손때’가 빚어낸,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들이다. 갤러리 한구석에 걸려 있는 ‘골든 스테이트 프리웨이’(Golden State Freeway) 사인판을 가리키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수십년은 족히 벌판에 서 있었을 테죠. 그 벌판의 느낌을 갖고 있는 겁니다. 그 드라이한 느낌, 그 머나먼 느낌이 그대로 있어요. 새 것에서는 느낄 수 없는 러스티함이죠.” 그가 사랑하는 ‘러스티함’이란 그러니까 ‘세월의 흔적’이다.
<미국의 팝아트라 할 수 있는 60년대 코카콜라 병들과 1900년대 초 아티스트들이 그린 콜라 광고판.>
김영연씨는 홍대 미대 실내장식과 1회 졸업생으로, 처음엔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했다. “한국서 블루진을 유행시킨 사람이 바로 나”라고 주장하는 그는 1970년대 ‘라이프’(LIFE)란 브랜드의 청바지를 만들어 떼돈을 벌었다. 그때 대학 다녔던 여학생들은 지금도 영국 국기가 그려진 라이프 브랜드를 기억할 정도로 이대 입구에 있던 그의 스토어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밑동이 떨어져 나간 고려시대 청동 주발에 인디언 돌을 접합해 만든 작품.>
작품성 인정받아 초대전도 연 ‘아티스트’
할리웃 명사·탑 디자이너도 그의 고객
“내추럴한 내 작품 즐겨줄 사람 찾아요”
1976년 그렇게 번 돈으로 한국의 골동품을 두 컨테이너 가득 실어 뉴욕 맨해턴에 풀었다. 창고 하나 빌려서 팔기 시작했는데 미국의 딜러와 컬렉터들이 반색을 하고 달려들었다. 일본과 중국의 앤틱은 미국에 꽤 많이 소개됐지만 한국 것은 아마 그 때가 거의 처음이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1978년 LA로 이주하여 멜로즈와 라시에네가에 ‘아자방’(Aja Oriental Antique)이란 앤틱 샵을 오픈했다. 한국 골동품뿐 아니라 타일랜드,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앤틱을 취급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특별한 안목에 반한 굵직굵직한 단골들이 계속 늘어났다. 한인타운의 올드타이머 재력가들, 할리웃 유명 인사들, 앤틱 전문가, 작가, 탑 디자이너들이 다 그를 찾았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사용하던 도자기들.>
샵을 멜로즈와 페어팩스로 옮기고 이름도 ‘손’(Son)으로 바꾸면서 사업은 날로 커졌다. 그러나 90년대 초 피코와 라브레아에 갤러리를 하나 더 열고 크게 확장한 것이 무리가 되었다. 새 스토어는 1년여만에 손을 들었고, 멜로즈 & 페어팩스 갤러리의 상호를 ‘두손’으로 바꾸어 다시 시작했다. 그러기를 3년 전까지, 지금의 두손 홈 갤러리 만들기에 올인할 때까지 근 30년간 ‘라이프스타일 홈 데코레이션 앤틱 아트 샵’을 운영해 왔다.
이런 이력 때문에 그는 한국 앤틱을 미국에 가장 먼저 소개한 사람, 이 분야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해 온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가 다른 앤틱 딜러들과 달랐던 점은 자신이 작품을 디자인하여 팔았다는 점이다. 한국 문살 문양을 이용한 목재 가구들과 산업용 무쇠 소재의 메탈 캐비닛, 램프들은 만들기가 무섭게 일년에 수백점씩 팔려나갔다. 요즘 유행하는 빈티지와 포크아트, 인더스트리얼 무쇠가구 같은 것들은 김씨가 20년 전에 이미 다 만들었던 것들이다.
<복도도 갤러리다. 방 2개와 화장실, 식당에도 다양한 앤틱과 예술작품들이 빼곡히 진열돼 있다.>
그가 ‘작가’가 된 것은 고객들에 의해서다. 그가 만든 램프와 가구를 보고 고객들은 그를 ‘아티스트’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실제로 주류 작가들과 한인 작가들이 그의 작품성을 인정하면서 그는 앤드류 샤이어 갤러리와 잔 앤 조 갤러리에서 기획 초대전을 갖기도 했다.
자신은 언제나 컬렉터였지 비즈니스맨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김씨는 한국과 미국의 유명 작가들 작품도 수천점 소장하고 있다. 사진작가였던 부친(김제권)의 사진작품들은 가보 1호, 이우환, 윤병로, 윤형근, 김구림, 송혜수 등 거장들의 작품을 비롯하여 로컬 작가들인 강태호, 현혜명, 김소문, 박혜숙, 박영국의 작품들이 집안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미국의 팝 아트라 할 수 있는 골동품도 너무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그는 이제는 정리해야 할 시점에 왔음을 인정한다.
“이제는 모으고 팔고 그런 거 그만두고 내 작품, 내 디자인에 몰두하고 싶습니다. 나이 65세가 되니까 이제 뭔가 알겠어요. 이제야 눈에 들어오고 아트와 더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가 ‘관 속에 들어가서도 하고 싶은 일’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품을 하고, 그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내 컨셉과 통하는 고객의 인테리어를 디자인하는 일”이다. 또한 한국의 인테리어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며 강남 진출도 모색 중인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한 마디로 이렇게 요약했다.
<갤러리에 들어서면 김영연씨의 부친인 사진작가 김제권씨가 홍콩 공항에서 찍은 조미령 사진이 가장 먼저 손을 들고 환영해 준다. 사진 밑은 고려 백자들이다.>
“명품 좋아하고 럭서리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 하고는 절대 맞지 않습니다. 솔직하고 내추럴하고 러스티한 것들… 저는 작품을 사줄 사람보다는 그걸 곁에 두고 진정 즐겨줄 사람을 찾습니다.”
불행히도 두손 갤러리는 일반에 오픈된 공간이 아니다. 전화예약을 해야만 둘러볼 수 있는데 문제는 그가 고객에 대해 낯가림이 여간 심하지 않다는 것. 주객이 전도된 일이지만 그는 고객이 자기 작품과 컬렉션의 가치를 알아보느냐, 못 알아보느냐에 대해 굉장히 까탈스러워서 방문하고 싶은 사람의 전화를 받으면 나름의 방법으로 ‘심사’한 후 문을 열어준다고 한다. 그런 심사를 통과해서라도 두손 홈 & 갤러리를 방문하고 싶은 사람은 (323)252-5550으로 문의할 것.
<글 정숙희 기자·사진 진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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