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덕의 월드워치
민족주의(nationalism), 허구인가? 숙명인가?
민족주의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이며 또한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를 표상하기도 한다. 문화적 관점에서 민족주의는 같은 민족에 의해서 공유되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의 표현이다. 자기 나라의 전통, 역사, 상징, 언어, 문화, 종교, 사상 등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본능이다. 사람들은 타인들과의 차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인식하게 된다. 민족주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기원은 유럽에서 왕조의 몰락, 서유럽의 봉건주의(feudalism)의 붕괴, 종교적 공동체의 영향력 감소 등을 경험하며 새로운 공동체적 대안으로 국가(nation)를 사람들 사이의 ‘자연스런 결속 (natural bond)’으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부르주아지라는 시민계급의 출현과 함께 민족주의는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유럽으로부터 시작되어 전세계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근대에 형성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정보 통신과 테크놀러지의 발전, 세계화에 의한 다이애스퍼라(diaspora), 국제적인 기구들의 확대에 의한 잠재적인 위협으로 그 기세가 줄어들 것으로 학자들은 예측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21세기에 접어든 지금도 민족주의는 아직까지도 놀라운 정도의 열광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민족주의는 그 자체만으로는 모든 정치적 스펙트럼으로부터 자유롭고 악과 선의 이분법적 구분으로 파악될 수 없다. 자신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자부심에 뭐라 탓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개인과 집단들 간의 ‘하나의 태도이며 정서 (an attitude and sentiment)’이기 때문에 감성의 수사학(rhetoric)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으며 타 문화에 대한 강력한 집단적인 감정을 표출하기도 한다. 굳이 분류하자면 애국심(patriotism)은 긍정적 민족주의이지만 여기서 정도를 벗어난 맹목적 애국주의인 쇼비니즘(chauvinism)은 부정적 민족주의로 인식될 수 있다.
문제는 민족주의는 타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더욱 부추겨지고 강화된다는 것이다. 이는 언론매체나 여타 다른 채널 등을 통해 개인적, 집단적 차원에서 발생하는데 이러한 민족주의적인 정서는 여론을 통해 정치적 목적으로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간의 스포츠 대항전에서 사람들이 쉽게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족과 민족주의의 문제를 논할 때 빠지고 않고 언급되는 저서가 바로 인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의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이다. 앤더슨은 부르주아지 계급은 본질적으로 상상을 기초로 하여 연대를 달성한 역사상 최초의 계급이며 국가는 바로 상상의 공동체라고 단언한다. 그가 의미하는 상상의 공동체라는 말은 보편화되어 있을지 모르는 실질적인 불평등과 착취에도 불구하고 민족은 항상 심각한 수평적 동료애와 형제애로 상상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형제애의 상상이 사람들로 하여금 국가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불사하게 만들며 서로를 미워하고 죽이는 민족주의의 야누스적인 또 다른 어두운 측면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상 우리의 공동체가 허구의 상상을 기반으로 성립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이 어딘가 소속되려는 기본적인 욕구를 피할 수 없다. 또 다른 인류학자인 레비 스토로스는 인문과학의 또 다른 목표는 인간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해체시키며 탈 중심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상사가 어찌 그렇게 이성과 합리성을 따라 움직이는가? 문제는 늘 감성이 차갑고 냉정한 이성보다 편하게 와닿는데 있다.
앤더슨이 인용한 다음말은 민족주의의 본질을 냉정하게 규정한다. ‘민족주의는 민족들이 자의식에 눈뜬 것이 아니라 민족들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민족을 창안해 낸다 (Nationalism is not the awakening of nations to self-consciousness: it invents nations where they do not exist).’ 감성의 수사학(rhetoric)에 의해서 작동되는 우연과 상상의 산물인 민족주의와 민족의 개념은 앞으로도 상당한 호소력을 가질 것으로 예측된다. 사람들에게 낯설고 강요된 세계화의 보편주의가 차가운 도시의 네온이 비치는 황량한 거리의 모습이라면 민족주의는 뜨거운 형제애를 통한 안락함과 정겨운 대화가 흘러 넘치는 사랑방의 풍경이 아닐까? 세계화의 파고가 높아지면서 이 항해가 순조롭게 진행이 안된다면 민족주의라는 이 오래된 감성의 이데올로기는 전면으로 거칠게 부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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