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3년 만에 한국을 방문 중이다. 아들과 함께 큰 서점에 갔는데 작은 책 하나가 아이의 눈에 띄었다.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을, 그리고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을 성가시게 하는 일들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만화책이었다.
아이는 책을 잠깐 들여다보더니 도로 진열대 위에 놓으며 한마디 했다. “당연한 것들이네” 한국인들은 붐비는 길에서 사람을 떠밀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외국인들은 면전에서 큰 소리로 코를 푼다는 것 등이었다.
이 책은 한국인 항목과 외국인 항목을 똑같은 페이지 수로 나눠 50%와 50%의 비율로 실었다. 아주 균형을 잘 이루는 비율이었다.
하지만 지난 3일 동안 서울 거리를 다니며 과연 한국인이 미국인에 대해 갖는 경험들이 미국인이 한국인에 대해 갖는 경험들과 그렇게 똑같은 비율로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젠 안식년 때 살던 동네의 작은 수제비 집에 들렀다. 두 주인 아줌마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마지막 들른 때가 3년 전이었고 그 전에 들른 것이 그 보다 3년 전이었으며, 그 전에도 나를 잘 알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그날 오후엔 한 친구 집을 방문했다. 아파트의 번호를 찾지 못해 난감해하자 한 젊은 여성이 선뜻 핸드폰을 빌려주었다. 아, 외국인에게 얼마나 친절한 한국인인가!
미국인들도 한국인들에게 그럴까? 몇 년 후 미국 식당을 다시 방문한 한국인이 미국인 주인으로부터 그렇게 따뜻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설령 그렇다 해도, 이 경우엔 “아, 한국인에게 얼마나 친절한 미국인인가!”라고 말할 수는 없다. 미국처럼 거대한 나라를 그렇게 일반화 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스캐롤라이나의 훨스톤이란 작은 도시에서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아, 한국인에게 얼마나 친절한 훨스톤 사람인가!”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것은 단지 미국이 크다는 사실 때문이기보다는, 한 나라에 너무 많은 곳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라 봐야 하겠다.
다음은 한국의 쌍꺼풀 수술이라는‘전염병’을 보자. 그저께는 한 한국 친구의 가족을 만났는데 대학생인 딸이 전날 쌍꺼풀 수술을 해서 못 나왔다는 것이다. 예뻤던 아이의 눈을 거의 전염병 수준으로 전국을 휩쓰는 수술로 훼손해 놓고 낫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미국에도 이에 대조할 만한 현상이 있을까? 그처럼 널리 퍼지진 않았지만 미국인들이 약점으로 여겨 받는 수술에 초점을 맞춘다면, 아마도 살찐 사람들이 덜 먹게 하는 위 절제 수술을 들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 두 수술은 대조라기보다 오히려 같은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공통점이 있다. “아, 문화가 병들고 말았다는 징후야”
서울 거리를 걷다보면 미국과 똑같은 문제점들을 발견하면서 놀라기도 한다. 가업으로 이어지는 전통 식당들이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이미지만 전통을 내세운 채 전문 사업가들에 의해 마켓 경영식으로 운영되는 전통 식당의 클론으로 대체되고 있다. 어제 만난 친구는 저녁식사를 하자더니 진짜 전통 식당을 생각해 내느라 한참 애를 썼다. 결국 밤·대추 등을 넣은 연잎밥 요리를 하는 기막힌 식당을 찾아내기는 했다.
그는 인사동 주변의 스타벅스를 반대하는 주민들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미국의 우리 집 앞에도 스타벅스가 생겨 동네 분위기를 망치게 되었다는 얘기를 했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한미 양 나라에서 놀라우리만치 많은 손님들을 끌고 있다. 그런 커피집이 성공한다고 해서 마치 그 클론처럼 실내장식을 똑같이 꾸민 이곳 커피 집은 우스꽝스럽기조차 하다.
한국과 미국 - 과연 두 나라 사람들을 자로 재듯 비교할 수 있는 걸까? 두 나라들도 그렇게 비교할 수 있는 걸까?
어젯밤 한 전통 찻집에서 다른 어떤 차와도 비교할 수 없는 한국의 ‘화차’의 깊은 맛을 음미하면서 어떤 확실한 사실을 깨달았다. 두 문화를 접하는 장점은 상대 문화에는 없는 각각의 문화의 깊은 맛을 음미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천히 한 모금씩 마시면서 눈을 감아 보자.
케빈 커비 /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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