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개관한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 내 한국관(Korea Gallery)의 일부 전시물이 한국 전통양식을 따르지 않거나 설명문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전시물의 내용이 빈약해 한국문화의 특성을 충분히 알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6월7일 이 박물관 2층에 문을 연 한국관은 총 1천 스퀘어피트(약 28평) 규모로 꾸며졌다. ‘한국의 역사와 생활’을 주제로 한 7개의 테마에 따라 혼례복, 도자기 등 200여점의 물품이 전시돼 있다.
■고려청자와 서안
본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설명문이 왜곡된 대표적인 전시물은 12세기 때 제작된 고려청자 매병(Maebyeong bottle). 이 도자기는 “It was used for serving wine.”으로 소개돼 있다. 그러나 이 도자기는 주둥이가 짧은 게 술병으로 사용하기에는 적당치 않은 형태를 띠고 있다. 고려시대 귀족층에서 주로 사용된 청자 매병의 정확한 용도는 알려진 게 없으나 꽃병이나 장식용 등으로 사용됐다는 게 일반적인 정설이다.
또 다른 설명의 오류는 서안(書案)에서도 나타난다. 박물관측은 연적과 붓, 머루와 함께 전시된 서안에 대해 ‘Calligraphy Table’로 표기해놓았다. 이는 서예용 책상을 의미하나 실제 서안은 글씨를 쓰기보다 글을 읽는 용도로 주로 사용돼 왔다. 또 사랑방에 비치돼 주인과 손님의 자리를 구분하는 사물로도 기능해왔다. 따라서 ‘Reading Desk’란 표기가 적절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혼례복과 십장생도
한국 전통양식을 따르지 않은 전시품들도 눈에 띈다. 한복 디자이너인 이영희씨가 기증한 신랑, 신부의 혼례복은 전통 복식의 형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지적된다.
한 한복 전문가는 “이 혼례복에는 무슨 이유인지 활옷이나 속옷이 갖춰져 있지 않다”며 “우리 전통 혼례복이라 하기에는 형식적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실 입구 벽에 걸린 대형 십장생도(十長生圖)에는 일본 특유의 금분을 사용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 미술 전문가는 “이 그림에 사용된 금분은 일본에서만 사용한 것으로 한국 민화의 전통에 어긋난다”고 통박했다. 그는 “한국 민화에 일본의 금분을 사용한 것은 아티스트 개인의 자유이나 이를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그림으로 전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 십장생도는 조남용의 작품이다.
■미하일 김과 박세리 ...
‘국경을 넘은 저편의 한국’ 코너에 소개된 4명의 인물 선정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는 중앙아시아 한인을 대표하는 인물로 카자흐스탄의 화가인 미하일 김, 분단 한국을 상징하는 문익환 목사, 스포츠계의 박세리, 미주 한인 중에서는 화가인 데이빗 정 교수가 사진과 함께 소개돼 있다.
한국관을 방문한 L씨는 “이들 중 두 사람은 한국인들도 누구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라며 “적어도 한국과 한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면 보다 역사적 의미를 지닌 인물이나 세계적 명성을 지닌 예술가가 소개돼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고개를 흔들었다.
일부 방문객들은 한국관이 설치 예산에 비해 5천년 역사의 한국문화의 깊이를 함축적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불만도 쏟아내고 있다.
S씨는 “150만달러를 들여 만든 한국관이 너무 빈약한데 놀랐다”며 “한국문화가 원래 보여줄 게 없는 건지 아니면 전시 기획에 문제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K씨는 “한국관을 나오면서 전시물이 겉?기에 그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며 “이왕이면 제대로 꾸몄으면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다”고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이번 한국관 개관의 기획과 전시물 선정은 자연사 박물관측에서 맡았으며 국립민속박물관측에서 자문과 보완 등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치비용은 한국의 국제교류재단이 지원한 1백25만달러가 쓰여졌다.
■박물관 측의 해명
이같은 지적에 대해 국립민속박물관의 김희수 큐레이터는 일부 표기의 문제점을 시인했다. 그는 한국관 개관 지원차 올 1월부터 자연사 박물관으로 파견나왔다 귀국한 상태다. 그는 17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개관 전에 매병 설명의 잘못된 점 등 몇몇 미흡한 부분의 수정을 자연사박물관측에 요구했었다”며 “시스템이 우리와 달라 수정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십장생도와 인물 선정 건에 대해서는 “안료가 전통과 다르게 쓰여진 부분이 있으나 상설 전시가 아니기에 다른 전시품으로 대체될 예정”이라며 “인물 선정에서 미흡한 점을 인정하며 자연사측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만큼 리노베이션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관 개관을 총지휘했던 폴 테일러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 아시아문화사 프로그램 담당관은 당장 개선할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전시물의 이름이나 레이블은 한국 민속박물관에서 검토했기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전시물 기획과 구성도 한국과 미국의 관련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결정한 것으로 다른 의견이 있어도 변경은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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