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진작 영어에 눈떴다면…’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됐을 때였나. 노무현 대통령이 영어를 못해 답답하다며 영어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한 국내 논객이 던진 한탄성의 질문이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는 세계와 소통하는 수단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다. 때문에 영어를 안다는 것은 효용성도 효용성이지만 의식에도 변화를 가져다준다. 일찍이 영어를 잘했으면 노대통령의 의식도, 세계관도 달라져 국정운영의 모습이 달랐을 것이라는 한탄이다.
영어가 중요하다. 한국사회의 화두다. 오죽했으면 ‘영어 광풍’이 분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하기까지 했을까.
오늘날 세계를 휩쓰는 건 ‘아메리칸 잉글리시’다. 그 본산지 미국 사회에서는 정작 다른 한탄이 흘러나온다. ‘진작 말씀(Word)을 알았다면…’이다. 그 한탄이 한 가지 공명현상을 일으켰다. ‘더 늦기 전에’ 성서를 학교 과목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이기에 나오는 한탄인가. 4복음서 중 한 복음서의 이름이라도 정확히 댈 수 있는 성인은 반도 안 된다. 3명 중 2명이 신자라고 밝히면서 성서에 대한 지식은 이런 수준이다.
10대의 성서 지식은 무지에 가깝다. 가령 이런 식이다. 선생님이 문학작품을 읽어준다. ‘노아(Noah) 때처럼…’이란 구절이 나온다. 그러면 학생들이 손을 든다. ‘노아가 누구예요’란 질문을 하는 것이다. 모세가 누구인가. 그 답도 20% 정도는 모른다.
왜 성서가 중요한가. 성서는 미국 문화, 영어권 문화, 더 나아가 서방 문명을 이해하는 코드다. 문학은 말할 것도 없다. 음악, 철학의 원천이다. 미국의 역사도, 정치도 성서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다.
영어문화권이 자랑하는 문호는 셰익스피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이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성서를 직간접으로 빗대 언급한 회수는 1,300에 이른다. 미국을 ‘언덕 위의 도성’으로 부른 존 윈드롭의 말도 성서에 근거한 것이다.
그뿐인가. 미합중국 건국의 시조들, 청교도 전통, 링컨의 저 유명한 연설…. 이런 미국 사회의 ‘아이콘’들은 성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성서를 모른다는 것은 문화맹(文化盲)에, 문화적 단절을 의미한다. 대다수 영어 교사들이 성서를 필독서로 권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진작 성서를 알았다면…’ 문화적 이유뿐이 아니다. 사회도덕이란 측면과 관련해서도 나오고 있는 한탄이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이름으로 공교육에서 바이블이 완전 배제됐다. 그 30년의 세월 동안 도덕적 퇴행을 보여 온 미국사회의 흐름과 관련해서.
‘진작 말씀을 알았다면…’ 그 한탄은 미국과 문화 전통이 전혀 다른 지구촌 반대편에서도 나오고 있다. 중국이다.
수십, 아니 수백 개인지 모른다. 지구상의 그 숱한 문명 중 왜 유독 서방문명만이 정치, 과학, 경제 등 모든 부문에서 그토록 찬란한 진보를 보였을까. 일단의 중국 사회학자들은 그 문제를 파고들었다. 그러고 나서 나온 한탄이 ‘진작 말씀을 알았다면…’이다.
“서방문명이 다른 문명에 비해 왜 그토록 탁월한 위치를 점하게 됐을까. 그 답을 내도록 우리는 요청을 받았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연구했다. 역사,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부문에 걸쳐. 처음에는 강한 군사력 때문인지 알았다. 정치 시스템이 잘 돼 있어서 인줄 알았다. 경제력 때문으로도 생각했었다. 20년 동안의 집중적 연구결과 답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서방문화의 심장은 기독교이고, 그것이 서방문명이 그토록 강한 이유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방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끝에 내린 결론이다. 성서, 다시 말해 말씀에 기초한 도덕률과 가치관, 민주주의, 자본주의 등이 그 답이라는 결론이다.
한탄은 ‘더 늦기 전에…’란 슬로건으로 이어지면서 미국 사회 일각에서 리바이벌이 이루어지고 있다. 종교적 도그마를 배제하는 조건으로 바이블을 선택과목으로 가르치는 공립학교가 늘고 있는 것. 그 선두주자는 조지아주다. 주정부가 예산을 배정하고 있어서다.
90년대 이후의 현상으로 현재는 미 전국 37개 주 460여 교육구에서 선택과목으로 성서를 가르치고 있다. 그 움직임은 계속 확산될 것 같다. 미국인의 60%가 공립학교에서의 바이블 교육을 찬성하고 있어서다.
‘진작 대통령이 영어에 눈떴다면…’ 다시 서두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거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 본다. ‘진작 성서를 깊이 이해했다면…’이다. 그랬으면 어땠을까.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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