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쳤냐 ? 나도 지쳤다” - 요즘 이라크전쟁을 보는 미국의 시각은 한국 드라마의 대사를 빌린다면 이렇게 패러디 될 수 있을 것이다.
햇수로 벌써 5년째 접어드는 이라크의 상황은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상당수의 한인들도 포함된 수천 명 젊은 생명이 희생되고 수천억 달러의 아까운 세금이 쏟아 부어졌는데도 이라크에선 매일 유혈폭력과 반미구호가 난무하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신뢰도는 계속 곤두박질 중이다. 아무리 백악관이 눈감고 귀막고 못 본척하고 싶어도 미군의 조속한 철수를 원하는 여론은 이미 70%를 넘어섰다.
독립기념일 연휴를 끝내고 이번 주 초 재개된 연방의회에서도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난 봄 부시에게 밀렸던 민주당이 전열을 재정비하고 전쟁종식을 다짐하는 이번 7월 논쟁에선 새롭게 지켜볼 만한 관전 포인트가 생겼다.
공화당의 내부 반란이다. 그동안 부시의 이라크정책을 충실하게 뒷받침해주던 공화당의 지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지난달 리처드 루가 상원의원의 공개비판은 백악관에겐 충격이었다. “철군을 포함해 이라크 정책의 방향을 바꿔야한다, 대통령이 안하면 의회가 하겠다”고 공언한 루가의 ‘변심’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피트 도메니치, 존 워너등 부시가 믿고 의지해오던 공화당 중진들의 이탈로 이어졌다.
이탈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산될 것인가. 그 첫 시험대가 어제 상원의 이라크전비법안 수정안 표결이었다. 참전 군인들의 국내체류기간을 해외주둔기간과 같게 늘여주자는 민주당 주도의 법안이었는데 통과에 필요한 60표에 못 미쳐 부결되었다. 찬성56 대 반대 41. 민주당 49표에 더해 공화당 의원 7명이나 가세한 것이다. 7명 중 6명이 내년에 재선을 치러야 한다.
이번 수정안을 민주당 짐 웹의원과 공동제안한 척 헤이글의원은 공화당 반란군의 기수라 할 수 있다. 보수적인 네브라스카 출신인 그는 “고향의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 참석하면서 사실 좀 걱정스러웠다”고 털어놓는다. 보수적 유권자들의 호된 야유와 비판을 각오했었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환호와 박수 속에 하루빨리 군인들을 철수시켜달라는 주민들의 당부를 들으며 미전역에 만연된 전쟁 피로증후군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 주엔 이라크 미군증강 효과에 대한 예비평가보고서도 의회에 제출된다. 상당수의 공화의원들이 이 보고서를 기다리고 있다. 그 평가내용을 보고 입장을 정리하려는 것이다. 부시가 자신했던 이라크 내의 입법, 선거, 치안등이 어느정도 실현되었는가를 평가한 보고서다. 그러나 성과는 기대이하로 알려졌다. 지난 봄 군비예산을 통과시키면서 의회가 명문화시켰던 18개의 목표중 절반도 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화당의 이탈이 가속화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앞으로 두주동안 상원에선 이라크 논쟁이 계속된다. 아직도 수많은 수정안들이 줄지어 표결을 기다리고 있다. 120일 내에 철군을 개시하라는 민주당 주도의 강력한 내용뿐 아니라 공화당 주도의 다소 완화된 내용의 수정안도 상당수다. 어떤 것이 통과되든 그 영향력은 비슷할 것이다. 백악관에게 정책변경 압력의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시는 아직도 9월까진 기다리라고 요구한다. 미군증강 효과에 대한 최종보고서가 나오는 시기다. 그러나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부시의 고집만으로 막기엔 철군 요구의 물길은 이미 너무 거세게 흐르고 있다.
엊그제 상원에선 민주공화 양당 중진들의 강력한 스피치가 이어졌다.
“테러리스트들은 지금 이 전쟁에서 이기려고 안간힘을 쓰고있다. 문제는 , 과연 우리는 어떠냐는 것이다 이라크가 안정되기 전에 철군한다는 것은 이라크를 실패한 국가로 포기하고 중동의 심장부에 테러리스트의 성역을 허용하는 미국의 패배를 의미한다”고 존 매케인 공화당 의원은 정책 고수를 강변했다.
“문제는 , 우리는 언제까지 잘못된 정책으로 빚어진 살육의 장으로 우리의 젊은이들을 내몰 것인가이다. 그들을 몇 달 안에 철수시키지 못하면 우리는 기회를 놓치고 말 것이다. 다음 대통령 대에서도 해결하지 못할 혼란 속으로 빠질 것이다”라고 조셉 바이든 민주당 의원은 공화당의원들에게 동조를 촉구했다.
양론을 대변하는 이 두 의견엔 다 일리가 있다. 철군을 하든, 전쟁을 계속 하든 미국은 값비싼 댓가를 치르지 않을 수 없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주말 이례적인 장문의 사설을 게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The Road Home)’이라는 다소 감상적인 제목의 이 사설은 이렇게 결론짓고 있다 : “이제 미국은 선택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부시대통령에게 기약도 명분도 없는 전쟁을 계속하도록 허용할 수도 있다. 아니면 혼란의 확산을 최대한 막으면서 미군을 빠르고 안전하게 철수시킬 수도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그 선택권은 공화당 의원들뿐 아니라 내년에 그 의원들의 당락을 결정할 유권자인 우리들도 갖고 있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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