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 최경주가 지난 8일 PGA ‘AT&T 내셔널’에서 멋지게 우승, 한인들의 가슴을 한껏 뛰게 했다. 타이거 우즈가 주최한 이 토너먼트는 상금과 갤러리들의 관심도에서 메이저대회 못지 않아 ‘미니 메이저’로 평가 받은 대회. 최경주는 CBS가 중계한 마지막 라운드에서 골프팬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정말 유감없이 보여줬다.
6월초 잭 니클러스가 주최한 대회 우승에 이어 5주만에 다시 우승트로피를 안음으로써 세계 최정상급 선수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시즌 상금이 300만달러를 넘어 우즈와 필 미켈슨, 비제이 싱에 이어 4위에 올랐으며 랭킹도 세계 13위로 껑충 뛰었다.
최경주의 PGA 우승은 한국선수들이 ‘물반 고기반’인 LPGA에서의 한국낭자들 우승과는 좀 다른 비중으로 다가온다. 지금은 최경주를 비롯, 케빈 나, 앤소니 김, 찰리 위 등 4명의 한국계가 PGA 무대를 누비고 있지만 최경주가 PGA 시드를 따낸 지난 2001년만 해도 한국 선수는 단 한명도 없었다.
당시 스포츠 전문가들에게 한국인에게 불가능한 목표를 꼽으라면 ‘PGA 우승’과 ‘영국 프리미어 리그 주전 출전’을 꼽을 정도로 한국인의 PGA 활약은 상상도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기에 ‘토종 한국산’인 최경주가 미국에 건너왔을 때 그의 성공을 점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최경주의 성공을 가능케 한 것일까. 8일 우승 후 최경주는 미국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뒤를 돌아다 보지 않는다. 탱크처럼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내가 처음 미국에 건너와서 다짐한 것은 이것이다. 문화도 다르고 말도 다르고 모든 것이 새로웠다. 나에게는 넘어서야 할 장애물들이었다. 하나님께 의지하고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갔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최경주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부인 전도로 뒤늦게 믿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대회 참가 때마다 목요일 시작되는 1라운드에 앞서 수요일 저녁 인근 한인교회를 찾을 정도로 열심이다. 몇 년전 그린스보로대회 우승 후에는 상금 80만달러 중 8만달러를 인근 한인교회에 십일조로 내 미국언론에 화제가 됐던 적도 있다.
성경을 보면 악의 도시 소돔을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기둥이 된 룻의 아내 등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교훈과 예화가 많이 나오는데 최경주의 이런 인생철학이 종교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짐작해 본다,
또 최경주는 누구보다 성실하다. 그는 “골프장은 나의 일터”라고 말한다. 경기가 없을 때에도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연습장으로 향한다. 샐러리맨들이 하루 8시간 일하듯 그도 하루 8시간 골프장에 나가 볼을 친다. 그것만이 아니다. 집에 돌아오면 팔굽혀 펴기나 아령으로 근육운동을 한다. 낮에 땀으로 빠져나간 기운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라는데 이 정도면 그의 성실함에 대해서는 두손 두발 다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경주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는 처음 미국에 건너와 한국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반짝하다 그치는 선수가 아니라 고목처럼 깊은 뿌리를 내리는 선수가 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지난 5년간 자신의 다짐을 하나 하나씩 실현해 왔다. 그러면서 ‘K.J. Choi’라는 이름 석자를 골프팬들에게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이같은 최경주의 성실함과 실력은 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토너먼트가 열릴 때 ‘K.J. Choi’만 따라 다니는 골수 미국 갤러리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이 반증이다. 물 흐르듯 하면서도 파워풀한 그의 스윙 폼과 겸손함에 반한 갤러리들이다. 이번주 우승 후에도 각종 웹사이트에는 최경주를 칭찬하는 미국 팬들의 글이 많이 올라왔다. “승리를 진정으로 감사할 줄 아는 훌륭한 선수” “정도를 걸어가는 K.J. Choi가 좋다”…. 성적뿐 아니라 이미지에서도 그는 최정상급 선수이다.
누군가 “과거는 사용돼 돌아 온 ‘캔슬드 첵’이고 현재는 현금”이라고 말했다. 전남 완도 출신 촌 사나이의 미국 성공기는 한인이민자들에게 많은 교훈과 자극을 안겨 준다. 특히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그의 소신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민자들이 금송아지 키우던 한국시절에 발목 잡혀 있는 것은 은행에서 돌아온 ‘캔슬드 첵’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서두르지 않으면서 분명한 목표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는 뚜벅이 정신. 성공적 이민생활을 위한 해답은 바로 여기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최경주는 메이저대회서 우승하는 최초의 아시안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로 볼 때 꿈이 실현될 날도 머지 않은 느낌이다. 골프장에서 구름처럼 최경주를 쫓아 다니는 ‘초이스 아미’(Choi’s army)가 눈에 잡히는 듯 하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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