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순간
시간은 18번 홀에서 정지된 듯했다. 마지막 홀을 에워싼 호수의 물빛은 푸르렀지만 그 고요함은 갤러리들의 가느다란 숨소리마저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호수 건너 클럽하우스 언덕에 펼쳐놓은 대형 성조기마저도 펄럭거림을 멈췄다.
할아버지 경기 진행요원들이 손을 들어 올리자 기립한 1만여 명의 갤러리들은 일제히 그린 위의 한 골퍼를 응시했다. 남녀 해군의 안내를 받으며 그린 위에 오른 `한국산 탱크’ 최경주(37)였다. 홀컵과의 거리는 불과 한 걸음. 10야드 거리에서의 첫 퍼팅이 빗나가 다시 시도하는 세컨 퍼팅이었다. 그는 그린의 전후좌우를 조심스레 살피며 마지막 퍼팅을 가다듬었다. 동반 라운딩한 애플비는 앞서 짧은 세컨 퍼팅이 빗나가자 신경질적으로 공을 호수로 집어던져 버렸다. 이날 선수들을 지치게 만든 7월의 태양은 18번 홀에 비스듬히 내려 꽂혔다. 1만여 명의 눈동자가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수건으로 땀을 훔쳐낸 그는 그 부담감을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히 홀컵에 공을 밀어 넣었다. “댕그렁!”
그 순간 골프장은 박수와 환호의 소리로 뒤덮였다. 한인 갤러리들은 팔짝팔짝 뛰며 ‘경주’ 와 ‘초이!’를 연호하며 승리감을 만끽했다.
시상식 순간
모자를 벗어 흔들며 답례하던 최경주는 그린 밖에서 기다리던 3명의 자녀들에 달려가 기쁨을 나눴다. 시상식은 곧바로 진행됐다. 가장 먼저 우승컵이 18번 홀에 도착하고 마틴 오말리 메릴랜드 주지사, 대회장인 콩그레셔널 클럽 임원, PGA, 후원사인 AT&T 고위층등 정장 차림의 인사 20여명이 그린 위에 올랐다. 이번 대회 호스트인 타이거 우즈도 정장 차림으로 나타나 이날의 우승자를 영접할 준비를 마쳤다. CBS-TV는 대회 실황중계는 물론 시상식 장면도 빠짐없이 담았다.
드디어 최경주가 그린 위에 오르자 갤러리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뻐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로부터 의회 모형의 은빛 우승컵을 건네받은 최경주는 입을 맞추며 감격스러워했다. 최경주의 뒤로는 대형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내 생애 최고의 우승컵이다. 뭐라고 표현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마이크를 건네받고 우승 소감을 밝힌 최경주는 타이거 우즈를 비롯한 오말리 주지사등과 일일이 기념촬영을 하며 승자의 시간을 보냈다.
AT&T 내셔널
최경주가 동계올림픽 유치 실패로 실의에 젖은 고국에 승전보를 전한 ‘AT&T 내셔널’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통신회사인 AT&T를 스폰서로 끌어들여 신설한 PGA 대회. 그동안 스폰서가 없어 퇴출당한 PGA 투어 ‘디 인터내셔널’을 대신해 ‘타이거 우즈 재단’과 PGA 투어 사무국이 열게 됐다. 총상금 600만달러 규모로 AT&T는 2007년부터 5년 동안 대회를 협찬한다. 2008년까지 대회 장소는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콩그레셔널 골프장(파70·7204야드)으로 정해졌다. 이번 대회는 세계 골프랭킹 100위 안팎의 톱 랭커들을 초청, 타이거 우즈 재단을 후원하는 자선 대회 형식으로 치러졌다.
한인들 응원전
최경주가 우승컵을 안는 데는 워싱턴 한인들의 열렬한 응원도 한몫했다. 대회가 마침 베데스다로 워싱턴 근교인 만큼 9일 마지막 날에만 약 500-800명의 한인들이 콩그레셔널 골프장을 찾았다. 물론 이날만 3만7211명이 입장하는 등 숫적으로는 비교가 안됐지만 열성 면에서는 그 누구도 한인 갤러리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한인 갤러리들은 94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에서도 최경주를 따라 18홀을 돌며 성원을 보냈다.
최경주도 우승을 차지한 후 “동포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며 응원을 나온 동포들의 성원에 감사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최경주는 누구
키 172cm, 체중 82kg. AT&T 내셔널 대회를 석권한 탱크 최경주는 1970년 전남 완도읍 출신. 화흥초등학교 시절에 축구·씨름·창던지기로 운동을 시작했으며 완도중학교 때는 역도선수로 활동하다가 완도수산고등학교를 거쳐 1988년 서울 한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해에 골프에 입문해 1993년 프로 테스트를 통과했다.
2000년 미 PGA 투어 퀄리파잉 스쿨을 35위로 통과하여 미국 무대에 데뷔했으며 2002년 컴팩 클래식에서 우승, 한국인 최초의 PGA 대회 정상에 오른 선수가 됐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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