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스쿨 1년 다녀보니…노스웨스턴 법대 이미혜씨 체험기
법대 생활 3년 중 가장 힘든 시기는 첫해라고 한다. UC버클리를 졸업한 뒤 본보 자매방송국인 KTAN(채널 18)에서 맨발로 뛰는 기자로 활동하다 법학도가 된 이미혜(26·사진)씨의 생생하고 솔직한 경험담을 소개한다. 노스웨스턴 법대에서 1년을 마친 이씨는 현재 런던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 상업 세금법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 중이다.
기자생활 중 사회 불합리 느껴 대학 졸업후 도전
하루 24시간 공부해도 부족… 스트레스는 쌓이고
올 여름 법원 서기로 내가 쓴 판결문 채택 ‘뿌듯’
중학교 3학년 때 이민 온 나는 영어가 언제나 콤플렉스다. 그래서 로스쿨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아주 우연한 기회에 로스쿨이란 옵션을 생각하게 됐다. 대학 3학년 때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잠시 교환학생으로 갔다. 서울대 도서관에도 LSAT 참고서와 씨름하는 학생들을 보며 로스쿨 진학이라는 게 결국 ‘ESL 한국인’들도 도전할 수 있는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김&장’ 로펌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반 친구를 따라 나간 자리에서 흔히 드라마에서 보는 소송, 즉 재판 변호사만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게 됐다. 전 세계 법률시장이 개방되는 추세이며 국제적 감각과 전문성을 갖춘 대기업, 세법 변호사 등이 중요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귀국한 후 LSAT을 한번 치러나 보자고 생각하고 캐플란에 등록했다. 그때가 대학 4학년 2학기 때다. 남들이 로스쿨 입학허가서를 받고 있을 때 난 LSAT을 준비했다. 졸업 다음 달인 6월에 시험을 치렀다.
대학 4학년때 준비 그리고 고배
이번에는 동부의 아이비리그 대학에 원서조차 내보지 않았던 한을 꼭 풀고 싶어 예일, 하버드, 콜럼비아, 코넬, NYU, 조지타운, 유펜에 원서를 넣었다. 혹시 몰라 모교인 버클리에도 지원했다. 결과는 예상 밖. 모교에선 나를 외면했고, 오히려 가능성이 희박했던 동부 법대들에서 날 대기자 명단에 넣어줬다. 그러나 결국 모두 다 보기 좋게 낙방.
이 후 난 로스쿨은 팔자에 없는 걸로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원래 예정대로 정치학 공부나 하자고 결심했다. 대학원 진학 전까지 남아있는 소중한 1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지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직업을 찾았다. 2005년 7월부터 그 다음해 7월까지 나는 KTAN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취재를 하면서 노동법, 고용법, 계약법 위반, 특히 여성비하 발언 같은 것을 많이 경험하고 목격했다. 법대진학에 실패한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뻔한 불법행위였다. 그저 “아는 게 힘이다”라는 말을 실감했을 뿐이다. 그래서 대학원 진학은 일 년만 더 미루고, 법대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이미 LSAT 점수(172점)도 있고, 법대지원 경험이 있어서 추천서나 대학 성적표도 다 준비되어 있어 에세이만 다시 쓰면 됐다.
에세이에는 소수계 방송국에서 일하는 1.5세 여성이 경험한 문화적 차이를 적었다. 특히 취재 나갈 때마다 주류언론의 화려한 카메라와 유명 기자에게 밀려서 뒤편에 기죽어 서있는 한인방송국의 말단 기자 이미혜의 모습에 대해 썼다.
이번에는 꼭 진학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번보다 더 많은 학교에 원서를 냈다. 예일, 하버드, 스탠포드, 시카고, 미시건, 유펜 등 가능성이 없는 곳은 빼고 탑15 로스쿨에 원서를 냈다. 또 다시 불합격, 대기자명단, 합격 등 모든 종류의 결과를 두루 겪었다. 듀크와 노스웨스턴을 두고 고민하다가 도시생활을 계속하고 싶어서 시카고에 소재한 노스웨스턴 법대를 선택했다.
학습방법 몰라 ‘맨 땅에 헤딩식’
첫해는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보냈다. 입학 전 법대에서 언제 무엇을 배우는지 같은 사전조사를 하나도 안했다. 그래서 많이 힘들었다. 1학년이 가장 고달프면서도 중요한 시기라는 걸, 난 1학년 끝날 때 쯤 알았다.
1학년은 모든 법대 신입생이 듣는 가장 기본적인 필수과목, 흔히 말하는 육법을 함께 공부한다. 1학기 때는 계약법, 소송법, 형법, 재산법, 법률사례 리서치 및 작문을 들었다. 2학기 때는 2가지 선택과목을 수강할 수 있다. 헌법, 상해법, 법률사례 리서치 및 작문 같은 필수과목 외에 미국법률사, 기업법을 선택과목으로 수강했다.
우리 법대의 경우 1학년이 230명인데, 50~60명씩 4개 섹션으로 나눠져서 배정된 섹션에서 1년 동안 한 반처럼 함께 수업을 듣는다. 수업은 필수과목이어서, 학교 측에 의해 교수도 정해지고 수업시간도 정해진다.
법대 생활에 있어서 가장 특이한 점은 ‘소크라테스 방법’을 사용하는 것. 학생 많고 규모가 큰 공립대학에서 학부를 나온 나는 한반에 50~60명이 수업을 받는 것도 불편했는데, 교수가 갑자기 이름 부르고 질문하는 수업 방법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답을 가르쳐 주지 않고 유도하는 교수 방법이지만, 정말 난해한 질문을 받으면 도망갈 구멍도 없이 완전히 바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창피를 당하지 않으려 생각해낸 방법이 아는 내용 나올 때 일찍 손들고 자원해서 발표하는 것. 어차피 전쟁을 치러야 한다면, 내가 아는 지역에서 무기를 쥐고 있을 때 치러야 승산이 있기 때문이다.
공부 방법을 익히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학부 4년 내내 신문기자처럼 완벽한 노트를 만들기 위해 녹음기도 사용했고 가끔 디지털 카메라로 강의 중에 사용하는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찍기도 했다. 그런데 법대에서 이 방법은 먹히질 않았다. 교수가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고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학생들의 대답을 정답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적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학기는 그렇게 노트정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처참하게 끝났다. 2학기는 선배들의 강의노트를 활용했다. 선배들의 강의노트에 내가 조금씩 더하는 식으로 노트를 적었다. 정글 속에서 길 잃고 헤매다가 타잔을 만난 느낌이었다. 훨씬 수월해졌다.
공부하다보니 스트레스가 적지 않게 쌓였다. 지금가지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스트레스였다. 내가 바보가 된 느낌. 체력이 받쳐주질 않는데서 오는 스트레스, 아무리 몸으로 때우고 공부해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라서 오는 스트레스, 교과서를 읽어도 이해가 안가고, 수업을 들어도 무슨 말 하는지 모르는데서 오는 스트레스, 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게 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았다.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그래서 일기를 썼다. 느낀 처절함을 꼭 기록보관 하고 싶었다. 글로 한바탕 쏟아내면 훨씬 기분이 낳아졌다. 힘들 때는 잠이 최고였다. 자고 일어나도 피곤했지만, 그래도 잠자는 동안은 몸도 마음도 쉴 수 있었으니까. 많이 먹었다. 학교 도서관이 금요일에는 8시면 폐관했다. 그걸 핑계 삼아 금요일 밤 8시부터 12시까지는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스스로를 특별대우 했다. 집에 오는 길에 마켓에 들러서 먹고 싶은 것을 왕창 사고, 집에 와서 음악 틀고 인터넷 서핑하면서 졸릴 때까지 먹다가 잤다. 보통 아이스크림, 과일, 과자, 주스 등 설탕이 들어간 걸 먹었다. 먹는 순간엔 행복했다.
정신없이 1년을 보낸 후 맞는 올 여름, 처음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LA다운타운의 연방법원에서 법원 서기로 일했는데, 재판을 보고 판사와 토론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내가 ‘중요한 인간’이 된 느낌과 판사가 전문인, 다시 말해 법조인으로 대해주는 게 좋았다. 또 변호사들이 제출한 브리프를 읽고 난 후 판사에게 변호사 A의 변론은 이런 점이 말이 안 되고, 변호사 B는 이런 오류 때문에 결론을 잘못 냈다고 보고서를 쓸 때는 정말 “내가 뭘 배우긴 했구나, 그 배운 걸 써 먹는다”는 보람을 느꼈다.
가장 진한 감동은 내가 쓴 판결문을 판사가 허락해 정식 법원 판결로 발표됐을 때였다. 그 순간, 이제 하루 밥 세끼 먹고 다리 쭉 뻗고 잠자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리-김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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