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를 아직도 1년 반이나 남겨두고 있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한다는 게 시기상조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이 실패로 끝날 게 분명해보이고 이민법 개정의 약속조차 임기 중 해내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부시 대통령이 최악의 대통령 중 하나로 손꼽힐 가능성은 크다. 하지만 부시의 보수 지지층에게는 그가 영웅으로 남아있을 개연성이 있는바 바로 연방 대법원의 우향우를 가능케 한 그의 판사 선택 둘 때문이다.
부시가 렌퀴스트 후임으로 뽑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불과 52세이기 때문에 현 제도가 계속되고 그가 건강을 유지하는 한 적어도 몇 십 년은 보수적인 판결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샌드라 데이 오코너의 사직으로 생긴 공석에 임명된 새무엘 앨리토 판사도 57세라서 현재의 최고령자인 존 폴 스티븐스(포드의 피임명자) 나이만큼만 머물러도 30년은 거뜬히 할 수 있는데다가 6월말로 끝난 2006년 대법원의 사건 심리 및 판결로 나타난 그의 보수성이 계속된다면 그도 로버츠와 함께 계속 부시의 보수 성향에 가까운 판결을 할 것으로 보인다.
작년 10월부터 금년 6월까지의 대법원 결정들을 보면 약 3분의 1이 5대 4로 보수 쪽이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 위의 두 사람과 거의 항상 보조를 맞추는 판사 둘은 앤토닌 스칼리아(레이건 임명)와 클라렌스 토마스(아버지 부시 임명)이다. 그런데 종신직인 대법원 판사가 반드시 임명자인 대통령의 정치성향을 따르지 않는다는 좋은 예가 데이비드 수터(아버지 부시 임명)이다. 왜냐하면 그는 대법원의 진보파와 동조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거의 항상 리버럴 또는 진보 쪽이라고 할 수 있는 판사로는 존 폴 스티븐스와 홍일점인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클린턴 임명)와 스티븐 브라이어(클린턴 임명)이다. 스티븐스 역시 임명권자와 공화당 핵심을 실망시킨 케이스일 것이다. 위의 분석처럼 4대 4로 팽팽히 맞서면 교착상태를 깰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이 레이건이 그가 불과 41세의 약관이었을 때 임명한 앤소니 케네디다. 그가 때로는 로버츠, 스칼리아, 토마스와 앨리토의 보수 편에 서기도 하고 때로는 스티븐스, 수터, 긴스버그와 브라이어의 리버럴 편에 서기도 하는데 따라 5대 4의 결정의 방향이 좌지우지된다.
로버츠의 이름이 붙은 현 대법원은 무슨 결정들을 내렸는가. 임신 중기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는 연방법을 5대 4로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하여 소위 여성권익단체들을 실망시켰다. 반면에 기독교 등 생명 중시론자 들의 기대를 부풀려 올렸다. 34년 전 연방 대법원이 당시의 낙태 금지법들은 연방 헌법에 위배된 것이라고 판결한 다음 임신 초기의 낙태는 여성의 권리로 받아들여져 온 것이 잠식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하기 때문이다. 만약 리버럴한 대법원 판사가 두엇 죽거나 사직하고 보수 성향을 가진 후임자들이 선택된다면 ‘로우 대 웨이드’ 라는 판례 자체가 위태해질 것으로 생각해서 낙태 옹호자들은 걱정이고 반대자들은 다음 대통령도 공화당에서 낼 수 있도록 진력할 것이다.
또 대법원은 맥케인 파인골드의 선거운동법의 주요조항의 하나로서 이익단체들이 선거에 임박해서 정치 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한 조항이 위헌이라고 역시 5대 4로 판결했다. 그리고 금년도 마지막 회기(6월28일)에 발표한 판결문 중에는 학생들을 어느 학교로 배정하는 결정을 함에 있어서 인종을 고려할 수 있는 여지를 축소시켰다. 그에 대한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흑백이 완전히 분리되어 흑인들이 교육, 취업, 주택 선택 등에 있어서 철저히 차별 당했던 시절이 1950년대와 60년대까지 계속되었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1954년 대법원이 ‘브라운 대 캔사스 교육구청’ 사건에서 9대 0으로 인종분리 자체가 불평등이기 때문에 순 백인 학교들이 흑인학생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결정한다. 그 후 오랜 세월을 거쳐 연방법원의 감독 아래 여러 도시의 학교들이 통합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이번에 대법원은 5대 4로 시애틀과 루이빌 시의 (인종을 학교편성에 있어 고려하는) 프로그램이 헌법상의 평등조항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따라서 그렇지 않아도 주거지가 우선시되어 백인지역에는 다수 백인학교들이 늘고 있는 현상 앞에서 타 지역의 소수계 학생들이 백인 다수학교에 들어올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표명되고 있다. 대법원의 우향우가 더 두드러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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