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때만 맡을 수 있는 사람 사는 냄새
기차 역무원이 가르쳐준 대로 기차 12칸에 가서 내 자리를 찾아보니 나는 가운데 칸이다. 아래 칸은 티베트 승려와 중국 아저씨가 있고 내 옆은 중국 아줌마이며 내 위 칸은 중국 총각들이다. 2층은 앉으려면 고개를 숙여 겨우 목을 꺾어야 해서 잠을 잘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저녁을 먹고 약을 먹어야 하는데 침대에 널브러져 있다 보니 잠이 스르르 온다. 아래 칸 티베트 승려와 그 친구들은 한번 얘기를 시작하더니 끝이 없다. 진짜 바가지 깨지는 소리가 난다.
한참 자다 보니 새벽 5시에 거얼무라는 곳에 도착했다. 스트레칭이라도 하려고 나가 보니 제법 공기가 차갑다. 허허 벌판이다. 여기서 부터가 칭창열차의 진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라 하니 정신을 차리고 세수를 하고 기차에서 조용한 아침을 맞는다. 기차 칸 사이마다 있는 뜨거운 물을 가져다 아침으로 컵라면을 먹으며 하늘 기차를 타고 가는 기분을 만끽한다.
예전엔 중국 거얼무에서 티베트 라싸까지 버스로 운행을 했는데 지난해에 이 구간을 개통함으로 중국에서 티베트로 공급되는 경제 물량의 85%를 책임지는 경제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면엔 중국의 정책 중 하나로 중국 사람들을 하나씩 이주시키면서 티베트 고유 민족과 문화를 와해시키며 티베트의 정치적 독립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
이 열차는 처음 개통했을 당시만 해도 기차 칸에 산소통이 곳곳에 비치되어 있었으나 이제는 시설 보수로 열차 내 산소조절 장치가 있어 필요하면 산소를 공급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평균 4,500m가 넘는 고원지대를 달리는 열차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곳을 통과하는지 어김없이 나는 그 대가를 골 빠지게 치르고 있다. 미국에서 처방해 간 약을 이틀째 먹고 있는데 전혀 차도가 없다. 귀가 멍하고 소화가 안 되며 머리가 아파서 자꾸 눕고 싶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허상뿐인 하늘 기차, 생각했던 것만큼 환상적이지는 않다. 파랗고 하얀 뭉게구름, 거침없이 넘나드는 실낱같이 가늘고 날카로운 바람, 겁 없이 뛰노는 야크들과 야생 짐승들, 나처럼 보따리 들고 헥헥 거리며 설치는 사람들, 그리고 신을 찾아 떠도는 순례자들의 무리들이 하늘을 향해 무작정 실려 가고 있다. 나도 그들 틈에 끼어 병든 병아리처럼 꼬꾸라져서 비실거렸던 26시간이었다.
저녁 8시 라싸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여행사에서 예약해 준 호텔에 도착해 보니 호텔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깨끗하고 시설도 좋다. 방을 확인한 후 라싸에서의 스케줄을 확인하러 호텔 프론트에 있는 여행사에 갔다. 티베트의 관광지는 칭창열차의 개통으로 오염과 갑자기 밀려든 관광객으로 인해 하루에 한정된 인원만 받고 고도와 안전을 이유로 개인 여행보다는 단체 여행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거라는 조언에 따라 티베트에서의 일정은 그룹으로 다니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따로 영어 그룹이나 한국어 그룹이 없어 중국 사람들 틈에 끼어 내가 가져간 여행 책자를 보면서 다니기로 한다.
저녁에 침대에 누워보니 머리 뒷골은 점점 짓눌리듯 통증이 오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며 혈압이 올라가는지 숨이 차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으로 잠을 이룰 수 없다. 정말 높은 곳에 바람같이 실려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들 가진 것들을 늘려가고 가짓수를 넓혀 가며 인생의 재테크를 하는 시기에 나는 지금 별스럽게 별난 데를 다니며 유난을 떤 것 아닌지 조심스럽다. 그래도 인생의 가속도가 붙은 중년의 나이에 이렇게 목숨 내놓고 길거리에서 얼렁뚱땅 내 방식의 재테크를 하게 되면서 얻은 것은 길 떠나서 얻은 사소한 것들에 대한 진정한 감사이다.
살아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더없이 값지게 느껴지고 길 떠나서 만난 사람들과 다니며 그들에게 받았던 따뜻한 위로는 내가 감히 값으로 셀 수 없는 티베트가 내게 준 선물이다. 그들 사는 이야기들을 내 보따리에 주어 담으며 그 속에서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건 길을 떠났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고생 쌔빠지게 하다 돌아온 지금, 그 냄새가 아주 많이 그립다.
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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