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 못 살리고 단명한 젊은이
넓은 세상 체험 못해 안타깝기만
지난주는 아무 예고 없이 급작이 간 한 젊은 청년의 장례식에 갔었다. 그야말로 한창 꽃다운 나이에 피어 보지도 못하고, 젊은 아내와 철부지 아이 둘만 남기고 말없이 가버린 것이다.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아무 부족함 없이 자랐고 공부도 남이 부러워할 만치 많이 했지만 한 가지 안타깝다면 요즘 한창 방영하고 있는 연속극 ‘하늘만큼 땅만큼’의 교수 집 막내딸처럼 엄마의 과잉보호로 어렸을 때 나가서 코피 한번 터져보지 않고 무르팍 한번 깨져보지 않았을 것 같은 순정의 청년이었는데 얼마나 과잉보호였냐고 하면 대학원을 마친 아들을 하루 세끼 따뜻한 밥 지어 먹이시겠다고 어머니가 직접 미국까지 쫓아와서 오랫동안 한 아파트에서 생활하면서 뒷바라지를 해준 적도 있었다.
그 때 그 청년이 다니던 교회의 부목사였던 필자를 서울에서 내 누이와 같은 교회를 다니시는 것을 인연으로 항상 만나면 “우리 ○○이 장가 좀 보내게 좋은 색시 있으면 소개시켜 줘요!”라고 조르셨는데 그럴 때마다 “권사님이 그렇게 자꾸 아드님 곁에 계시면 좋은 색시들이 있다가도 도망가요! 요새 아가씨들이 제일 싫어하는 신랑감이 어떤 사람인지 아세요? 엄마가 항상 쫓아다니는 마마보이에요!”라고 농담반 진담반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그 청년이 어느 하루 갑자기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밑도 끝도 없이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었지만 신부는 열 살도 더 차이가 나는 젊다 못해 어린 19세의 백인 아가씨였고 그 아가씨도 이혼해서 혼자 살고 있는 한 엄마의 딸로 그 청년 못지않게 완전히 과잉보호를 받고 자라서 세상 물정은 물론 한국식으로 얘기하면 ‘밥 하나 할 줄 모르는’ 철부지 아가씨였던 것이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지는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지만 아마 비슷한 환경이 서로를 가까이 하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그 청년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어느 하루 우리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고 하며 좋은 아파트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해서였다. 그 때는 벌써 식구가 하나 더 늘어 있었고 곧 이어서 또 하나가 더 늘었는데 벌써 누가 봐도 두 사람이 아기까지 딸려서 하는 생활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더 얘기를 들어보니까 두 사람이 결혼을 하고 보니 이미 박사학위 공부는 무리라는 것을 깨달았고 도저히 힘드니까 짐을 싸가지고 한국의 부모 곁으로 일단 나갔다고 한다. 준비해 놓은 비즈니스도 있고 해서 경제적으로는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었지만 한국 사람이라고는, 아니 동양 사람이라고는 신랑이 처음인 것 같은 순수 백인이, 그것도 아주 철부지의 몸으로 이제는 애기를 둘씩이나 데리고 전혀 낯선 한국에서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낯선 음식을 먹어가며 생활하는 것을 감당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 큰 무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또 한 번 크게 U-Turn을 해서 자리가 잡힐 때까지는 생활비를 대어주시는 것으로 하고 다시 미국에 돌아온 것인데, 옆에서 보아도 한 마디로 말해서 두 사람이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직장은 졸업하기 전 학교에 다니면서 알아보는 것이 정석인데 일단 학교를 졸업하고 그것도 한국에 나가서 몇 년간 엉뚱한 일을 하다가 뒤늦게 찾으려고 하니까 전혀 용이한 것이 아니었다.
이때쯤 돼서는 이제는 자주 필자에게 전화를 해서 상담을 받기 시작했는데 한때는 어찌 절망적 이었든지 이혼까지도 심각하게 생각했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성경적으로 쭉 설명해 주고 정 이혼을 해야 된다고 하면 지금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그냥 차버리면 안되고 이왕 여태껏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살아왔던 것,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충분한 위자료를 마련해 주어야 하고 두 사람이 받은 애기에 대한 책임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해 주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구하면 하나님이 헤어나갈 길을 마련해 주실 것이요 끝까지 견디고 인내하면 하나님의 상급이 클 것이라는 말도 전해 주었었다. 그런 말을 나눈 지 며칠 후 다시 전화가 왔는데 이혼은 안 하고 무슨 일이라도 찾아서 하고 부모님의 도움 없이 자립해서 살기로 했으니까 기도를 많이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리고 두 부부가 한국 교회에 나가기가 그렇고, 그렇다고 미국 교회도 힘드니까 목사님이 시간을 내서 자기 부부를 데리고 성경공부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약속대로 그 청년은 놀라운 저력으로 노력하기 시작했는데 우선 동네 도서관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자리를 구하더니 전혀 애 둘을 감당해 내지 못하는 부인을 도와 애기 키우는 일과 살림을 맡아서 했는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곧 하나님이 도우셔서 우체국에 풀타임으로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1년이 조금 지난 한 달 전쯤 전화가 왔었다. 아주 밝은 목소리로 하는 말이 이제는 일도 익숙해졌고 근무시간도 곧 낮 시간으로 조정이 가능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은 자기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열릴 것 같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곧 성경공부도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좋아했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되리라고는 누가 상상이나 했단 말인가!
그 청년을 먼저 보내고 생각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은 옛날 영화 ‘Ben Hur’에서 주인공과 백마 4마리와의 만나는 장면이다. 단 한번 뛰는 것을 보았는데 주인공은 각 말의 장점과 단점을 잘 파악해서 느리지만 지구력이 있는 안타레를 안쪽에 배치하고 빠르지만 불안한 리겔은 바깥쪽을 돌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충고를 해주는 부분이다. 영화에 지나니 않지만 말의 특성을 잘 파악하면 보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지혜를 지적해 준다. 일찍 떠난 그 청년은 한편 어색하고 행동이 느리고 수줍은 청년이었지만 지내보면 착한 심성 밑에 무서운 인내와 끈기가 있는 청년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호하기에만 급급해 공부만 시키지 않고 보다 넓은 세계를 몸소 체험할 기회를 주었으면 정말 많은 큰 기쁨을 안겨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인의 명복과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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