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사장님의 고별식에 간다. 딱 한번 만난 분이다.
그때 그분은 8순 노인이었다. 동료시인이 소개를 했다. 한인사회에서 훌륭한 일을 많이 하신 분이 회고록을 썼는데 윤문과 함께 출판을 알선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남의 글을 윤문하는 작가는 아니다. 그러나 한인 사회에 빛을 뿌리시는 분의 이야기라면 서사문학을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도와 드려야 할 것 같다. 그분은 두툼한 원고뭉치를 내 놓으셨다. 자신의 경험담을 후세들에게 남겨주면 삶에 도움이 될 듯해서 틈틈이 썼노라고 말 했다. 그분은 샤핑몰과 아파트단지도 몇 개를 소유하고 계시며 장학금을 비롯해 한인사회에 기부도 많이 하신다고 동료시인이 보충 소개를 했다. 그 분은 자신이 지금 암 투병 중이므로 그 일을 서둘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출판이 잘되면 이민문화 발전을 위해 후원을 하고 싶다고도 했다. 내가 윤문을 거절할까봐 하는 소리만은 아닌 듯싶었다.
미주한인사회가 경제적으로는 놀랄만한 도약을 했다지만 문화면에서는 이렇다 할 성장이 아직 없는 상태이다. 특히 미주 한인문학은 빈곤하고, 현지독자가 별로 없는 빈혈증에 걸린 상태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그 원인은 치열하지 못한 문인들의 자세에도 있지만, 우리주변의 애환을 문학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원고뭉치를 받아다가 단 숨에 읽어 보았다. 그분의 평생 삶 자체가 문학적 소재이며 모든 이의 귀감이 될 만하였다. 이민자들의 삶이란 상상이외로 다양하다. 눈물과 아쉬움, 신산한 감격에 설움 덩어리. 그 원고 속에는 그분 자신의 이야기도 있지만 이웃들의 성공담도 있었다. 내 눈에는 이민문학의 소재를 위한 노다지 광맥이기도 하다. 원고를 정리해 가며 가슴이 뛰었다. 그런 중 며칠 후 따님이란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그 일을 중단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버님이 하시겠다는 데 따님이 중단을 하시라니요. 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그 따님은 삼류작가가 돈벌이를 위해 아버님을 부추겨 회고록이니 뭐니 한 것이 아니냐고 따지고 든다. 그것은 또 아버님의 명예욕이며 이제 곧 돌아가실 분의 회고록은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자신에게 돌아올 아버지의 유산이 새 나가는 것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 며칠 후 허사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가족들이 원치 않아 하고 싶지 않다면서 지금까지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해 달라하신다. 그리고 원고를 돌려달라신다. 나는 애석한 마음으로 미완의 원고뭉치를 우송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분의 고별식 길목에 서있게 됐다. 그의 원고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두 형제가 있었다. 형이 먼저 미국엘 왔다. 허 사장은 착실해 보이는 그에게 소규모의 바느질 공장을 사게 도와주었다. 형은 자리가 잡히자 한국에서 가난하게 사는 동생을 불렀다. 그리고 변두리의 유령의 집 같은 고가를 사 주었다. 얼마 후 천정의 히터가 고장 나 올라갔던 동생은 큼직한 쓰레기자루를 발견했다. 열어보니 그 안에는 돈이 가득하니 들어 있었다. 형제는 돈의 주인을 찾아주자고 했다. 그러나 집을 판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되었단다. 그 돈은 자연히 형제의 소유가 되었다. 그들은 그 자금으로 규모가 큰 공장을 사서 열심히 운영한 결과 지금은 한인 은행에 최대 주주가 되었고 한인 경제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가 실화인지 허사장님의 픽션인지 알 수 가 없다. 다만 이런 이야기가 허황된 것 같으나 우리들의 서사임에는 틀림이 없다. 문화가 짧은 미국의 서부 이야기는 전설 같은 서사로 이어지다가 영화로 소설로 희곡으로 창작되어 미국의 문화를 살찌게 한다. 가장 짧은 문학사를 가진 미국이 가장 많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나라인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인 서사문학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권총강도까지 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늦깎이 이민자인 우리들은 로컬문화를 향상시키기 위해 우리들의 값진 애환을 서사문학으로 활성화 시키지를 못 하고 있다. 왜 그럴까. 세계의 문화계는 지금 이야기의 콘텐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헤리포터, 반지의 제왕 그리고 칼리비안의 해적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들이다. 우리들에겐 왜 현대의 전설이 없는가 생각해 본다.
이제 허사장의 고별식엔 수많은 조화들이 겹겹이 늘어서있다. 그 꽃다발은 고인의 행적 그 자체이지만 장례식이 끝남과 동시에 모두 쓰레기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회고록이 출판되었다면 2세, 3세들에게 감동적인 문학을 창조할 수 있는 뿌리가 되지 않을 까 생각해 본다. 나는 아름다운 금강석이 원석 그대로 나타났다가 다시 땅에 묻히는 듯해서 매우 안타깝기만 하다. 이제 내 기억에서 그분의 원고내용을 더듬어 재창조해 보고 싶다. 그리하여 원석 그대로를 땅에 묻지 말고 갈고 닦아서 보석 박물관에 진열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그 허락을 받으려고 그분이 떠나는 길목을 찾은 것이다. 기쁨으로 이를 허락 하실 것이다.
허사장님 편안히 가시옵소서.*
<이언호>
약력: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수상. 미주한국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 회장. 다수의 장편소설, 단편소설, 희곡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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