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스, 워싱턴에 가다’(Mr. Smith Goes to Washington)는 정치를 다룬 미국 영화 중 고전으로 손꼽힌다. ‘멋진 세상’(It’s a Wonderful World)을 만든 프랭크 카프라가 1939년 감독한 이 영화는 11개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로 올랐으며 제임스 스튜어트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줄거리는 연방 상원의원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자리에 주지사가 주인공인 제퍼슨 스미스를 지명하면서 시작된다. 부패한 정치 보스는 허수아비를 그 자리에 앉히려 하고 시민 단체는 개혁 성향 후보를 앉히려 하자 그 타협안으로 ‘소년 레인저’ 단장인 스미스가 뽑힌 것이다.
정치를 잘 모르는 스미스를 앉히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달리 그가 말을 듣지 않자 보스는 그를 모함해 쫓아내려 한다. 스미스가 상원에서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쓰러지자 보스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자살하려다 본회의장으로 들어와 모든 것을 실토하고 스미스의 무죄를 입증한다. 결국에는 악이 패배하고 선이 승리한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일은 현실 세계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보다 흔한 유형의 정치인을 그린 영화로 역시 고전으로 평가받는 작품이 ‘모든 왕의 사람들’(All the King’s Men)이다. 1949년 오스카 작품상을 받은 이 작품은 이상주의적인 젊은 변호사 윌리 스타크가 세상을 개혁해 보겠다고 시골 카운티 대의원으로 출발, 정계에 뛰어들었다가 나중에 권력은 쥐지만 결국 타락한 정치인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연방 의회 도서관으로부터 ‘스미스, 워싱턴에 가다’와 함께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로 뽑히기도 했다.
윌리 스타크 스토리가 요즘 LA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락키 델가디요(47) LA시 검사장이 그의 역을 충실히 수행해내고 있는 중이다. 델가디요는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LA 시장과 같이 라티노 저소득층 거주지역인 이스트 LA출신이다. 운동에도 뛰어난 자질을 보인 그는 하버드에 진학, 컬럼비아 법대를 졸업한 후 대형 로펌에 근무했다. 그대로 있었으면 많을 돈을 벌 수 있었음에도 사회를 개혁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1993년 리오단 시장 팀에 합류, 경제 담당 부시장을 맡으면서 4/29 폭동으로 침체된 LA를 살리는데 공을 세웠다.
이를 바탕으로 2001년 시 검사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만 해도 대다수 전문가들의 그의 낙선을 점쳤다. 그의 경쟁자인 마이크 퓨어 후보는 오랜 LA 시의원 생활을 통해 지명도가 월등히 앞섰고 노조 등 이익 단체들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을 내세운 그의 참신한 이미지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예상을 뒤엎고 그는 40세 약관에 당당히 검사장에 당선된다. 취임 후 그는 ‘작은 범죄가 큰 범죄를 부른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유리창이 깨지는 것을 방치하면 나중에 문이 깨진다’는 이론)에 따라 사소한 범죄도 엄중 처벌함으로써 LA 범죄율을 크게 줄이는데 일조했다. 그 결과 2005년 선거에서는 압도적 표 차로 재선됐고 작년에는 지기는 했으나 주 검찰총장 자리에도 도전했다.
그러던 그가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부인이 차 사고를 낸 것을 공금으로 수리하는가 하면 차 보험은 들지도 않았고 부하직원을 동원해 아이들을 돌보게 하고 잔심부름을 시키는 등 머슴처럼 부려먹었다. 뿐만 아니라 부인이 운영하던 컨설팅 회사는 설립 이후 한 번도 주 정부 세금보고를 하지 않아 운영 금지 명령을 받았다. 이 회사는 라이선스가 없는데도 시 검찰로부터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을 뿐더러 탈세 의혹마저 받고 있다. 잘못이 한 두 가지면 어쩌다 저지른 실수로 봐줄 수도 있겠으나 이번 경우는 그 수준을 넘어 부패한 정치인의 내면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역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은 “인간은 무엇보다 권력을 좋아한다”는 말로 시작해 인간이 권력 앞에 얼마나 쉽게 타락하는가를 다루고 있다. 인간은 정녕 그렇게 약한 존재인가.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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