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날에 대한 마음의 자세 세우고
만사에 매듭짓는 습관 갖게 해
백인 여인과 국제결혼을 하고 살던 한 청년이 있었는데 전주 주말 이른 새벽 그 부인으로부터 급작이 전화가 왔다. 무엇이라고 분명히 말을 했는데 워낙 황당한 얘기라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방금 뭐라고 했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다시 똑같이 얘기해 주는데 역시 그 멀쩡하던 남편이 전날 밤 죽었다는 것이었다.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앞으로 쓰러지면서 먹던 음식도 바닥에 떨어뜨리고 무엇이 목에 걸린 사람같이 숨을 못 쉬더니 얼굴이 파래지고 눈동자가 돌아가 숨을 아주 거두었다는 얘기였다. 당황한 나머지 겨우 구급차를 불렀지만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고 한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서 부모가 준비해 놓은 재산도 상당한 재산이 있지만 그래도 부모만 의지하고 살 수 없다고 열심히 노력을 해서 부모의 도움 없이 안정된 직장도 구하고 이제야말로 좀 다리를 펴고 살만치 되었다고 기쁜 목소리로 전화를 해주었던 것이 불과 한 달도 안 되는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지혜의 승함으로는 전무후무했던 솔로몬왕은 전도서 7장2절에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고 한탄을 했다. 모든 일의 결국을 알고 항상 준비하는 것이 앞으로 올 것을 모르고 공연히 쓸데없는 일을 가지고 기뻐하는 것보다 낫다는 얘기다. 이와 같이, 끝을 알아야 쓸데없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는 일없이 올바른 일에만 열심을 다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맥락에서, 나는 아이들 졸업식에는 빠짐없이 갔고 또 아이들에게도 졸업식의 중요성을 말과 행동으로 강조해 왔다. 끝날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염두에 두고 한 해 동안 이 날을 준비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활동하라고 당부하면서 말이다.
올해 우리 가족 마지막으로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으니까 특별히 감회가 깊었는데 막 태어났을 때 엄마가 급성 골수염으로 오진을 받은 덕분에 1주일간 격리를 받아가지고 젖이 끊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 탓인지 우리 막내는 어릴 때 연중행사를 하다시피 병원에 잘 입원을 했었는데도, 어느덧 건강을 회복하고 이번 졸업식에서 공부를 잘한 학생들만 차는 별도의 색의 띠를 두르고 다른 학생들과 구별되어 맨 앞줄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너무나 흐뭇하기만 했다.
약한 몸으로도 열심히 공부를 한 배경에는 분명히 그 전에 보아온 언니 오빠들의 졸업식을 마음속으로 깊이 새기며 이를 악물고 열심히 공부해서 얻은 결과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성이 낙천적이고 장난기가 잔뜩 낀 아이라 “제일 친한 친구”(=my best friend)가 얼마나 많은지 매년 생일파티에 가지고 갈 선물만 사주는 데도 허리가 휠 정도였었지만 그래도 공부를 해야 할 때는 열심히 했고 학생회와 클럽활동을 하고 늦게 돌아온 날 밤에도 눈을 비벼가며 할 공부를 하고야 잠을 잔 수고에 대한 상급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졸업식에서는 지난 4년 동안의 노력과 수고를 보상받음으로 나도 이 자리에 서게 될 때에는 많은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게 하는데 깊은 의미가 있지만 또 하나 더 중요한 의미는 졸업식을 통해 새로운 앞날에 대한 올바른 마음의 자세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여태껏 그렇게 많은 졸업식에 참여하면서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은 왜 모든 것을 ‘졸업’하는 학교의 마지막 날을 미국 사람들은 “Commencement Exercise” 즉 “시작하는 예식”이라고 부르는 것인가였다. 그러나 워낙 졸업식을 많이 다니다 보니 축사를 해주러 온 지역 은사들도 그렇고 몇몇 졸업생 대표들이 궁금증을 풀어주었는데 그것은 졸업식이 단지 여태껏 한 일에 대한 마무리일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닥칠 새로운 도전으로의 첫 발자국으로의 의미가 더 크다는 것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식은 특히 의미가 있는데 부모의 슬하에서 부모의 보호아래 해오던 일들을 졸업식을 기점으로 이제는 성인이라는 망망대해를 항해해 나가는 출발인 것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을 전후로 국가 해당기관에서 날아오는 자료가 있는데 앞으로 성인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일종의 통지서이자 경고문이다. 처음 받았을 때는 아빠이면서도 섬뜩하고 경건해졌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졸업식은 이런 삶으로의 첫 출발을 끊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졸업식의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모든 일에 매듭을 짓는 습관을 갖게 하는 것이다. 한창 반전데모가 승하던 시절에 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과별로 졸업식을 하게 했었고 졸업장은 나중에 우편으로 보내주었기 때문에 그때 생각으로는 졸업만 했으면 됐지 졸업식은 귀찮게 무슨 졸업식인가 하고 그냥 일찍 여행을 떠나 버렸었다.
이것이 나중에 얼마나 후회가 되었는지 모른다. 시간과 장소를 마련해서 손님들을 부르고 각각 식순에 정한 대로 노래도 부르고 권고하는 말, 축하하는 말 또 감사의 말도 주고받으며 또 상 받을 사람에게는 상도 준다.
또 심지어는 흥이 나면 맨 나중에 모자라도 집어던져 보는 그 과정에서 일생의 중요한 한 시절을 정식으로 매듭을 지어주는 것이 그 자체로써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졸업장 수여식도 한국에서는 아무개 외 몇 명하고 끝냈는데 미국은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졸업생 전원을 한 명씩 다 호명하며 졸업장을 주는 것을 중요한 순서로 삼고 있는 것을 본다. 처음에는 얼마나 지루했는지 모르는데 이제는 그 순서도 재미있게 본다. 각자의 제스처를 하나도 재미나지만 개개인의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우리 딸이 대학을 졸업하게 되는데 그 학교는 졸업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 년 전부터 숙소를 예약해야 한다고 한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물론 온 가족이 가기로 되어 있다. 당사자를 위해서도 또 동생들을 위해서도 그 날은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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