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 역사와 함께 한 남부상권
가게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100달러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로 장사가 잘돼서 시카고 한인경제의 젖줄과도 같은 역할을 했던 남부 한인상권이 흔들리고 있다. 김광정 전 웨스턴 일리노이대 교수가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1970년대부터 시작해 1990년까지 초고속 성장을 하며 최고조를 이뤘던 남부 한인 상가수는 15년 만에 절반 수준인 450여개로 감소했다. 본보는 김광정 전 교수와 김신 전 시카고 스테이트대학 교수 및 김창근 한인상우협의회 고문이 공동으로 연구한‘시카고 남부상권의 감소 현황과 원인, 그리고 그 대책’이라는 논문을 연재, 시카고 한인 경제의 현주소와 미래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 주>
■ 흑인 인구, 소득 감소
시카고 남부 한인 상권이 줄어들고 있는 이유는 소비자인 흑인 인구와 그들의 소득 감소, 한국에서 오는 이민자 수의 감소 그리고 판매 경쟁의 심화라는 것이 김광정 전 교수의 설명이다.
매디슨-플라스키의 흑인 인구수만 해도 1970년에 4만8천여명에서 2000년에는 2만3천여명으로 감소했고 다른 지역도 전반적으로 감소한 추세이다. 경기 불황으로 인해 흑인들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것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한인 상가가 제일 많아서 1000개 정도였는데 지금은 450개 정도이므로 15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 것.
시카고 남부 한인 상권은 1970년부터 1990년까지는 팽창기, 1990년부터 2005년까지는 쇠퇴기로 분류해 볼 수 있다. 팽창기 당시에는 한인 이민자 수 자체가 늘었다. 미국의 이민법이 1965년에 통과되고 이민자 수가 증가되기 시작해서 70년부터 이민자수가 1만명 돌파, 72년에 2만명 돌파, 74년에 3만명을 돌파했다. 85-87년 3만5천명대를 최고조로 91년에 2만6천여명으로 감소해서 92년에 1만명대로 떨어지기까지 90년 초까지는 이민자수가 많았었다.
이렇게 증가한 한인 이민자들은 대학 졸업 이상의 중상류 층 가족단위 이민. 그러나 이들은 막상 미국에 오니까 한국에서 배운 교육과 직장 경력을 전혀 인정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공장에서 단순 노동을 하기에는 체면도 상하고 자녀 교육시킬 소득도 못 올렸다. 1960-70년대 당시에 후기 산업사회로 넘어가면서 공장들이 문을 닫고 흑인 노동자들이 대거 실업에 빠졌다. 이탈리아계 백인 상인들은 흑인 지역에서 빠져나가고 흑인들은 그 상권을 대체하지 못했다. 그 상권에 진입한 것이 한인들.
당시 한국에서는 수출 주도 산업을 육성하며 흑인들에 잘 팔릴 수 있는 가발을 비롯해 옷, 신발, 핸드백 등 미국에 수출했으며, 한인들은 이런 상품들을 한인 도매상을 통해 독점 입수, 흑인 지역에서 팔며 터전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80년대에는 미국에서 판매할 아이템까지 생각하고 미국에 진출했는데 이러한 일치는 역사적인 우연이자 절호의 기회였다. 1990년에 미 센서스국 통계자료에 의하면 한인이 자영업자 비율 24.3%로 99개 민족 중 최고. 비즈니스 배경도 없는 한인들이 이런 기록을 남긴 것은 이례적인 경우다.
■ 영세 소매업종 점차 퇴장
지금은 한인 상인들이 한인 고객 상대하는 층, 백인이나 주류 사회 고객 상대하는 층, 흑인·남미계 상대하는 층으로 분화 됐다. 세탁업계가 특히 주류사회를 대상으로 한다. 흑인 인구는 줄었고, 흑인 소득도 줄어서 마켓 자체가 작아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싸게 한국 물건을 팔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인도 파키스탄, 아랍계 진출. 백인 상인들도 월그린 같은 대형 체인 스토어 통해 흑인 시장에 다시 진출해서 경쟁이 심해졌을 뿐더러 한인들 간의 경쟁도 심화됐다.
90년대 이후 이민 오는 한인 수도 1-2만명대로 줄어들고 이민자 중에도 한국에서 바로 오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거주하다가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들 비율이 높아졌다. 이런 사람들은 흑인 지역에서 스몰 비즈니스 하려는 생각을 잘 안한다. 새로 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왜냐면 한국 경제도 성장해서 갖고 오는 자본금도 있고 LA 흑인 폭동 등을 목격하며 흑인 상대 영업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전망은 결국 흑인들을 상대로 했던 1세들의 영세 소매업은 한인 사회의 주력 업종에서 점차 퇴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본력을 갖춘 한인들이 대형 소매업이나 도매업으로 재정비되고 1세들이 교육에 힘쓴 2세들은 변호사, 의사, 교수 같은 전문 직종에 종사하며 주류사회로 동화되는 과도기에 와 있는 것이다. <정리=이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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