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은 의도는 좋은지 모르지만 엉성하기 짝이 없는 소비자보호법이 아무런 대응 능력이 없는 소규모 사업자들을 괴롭히고 배상금을 얻어내는데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DC 한인세탁업주를 상대로 제기된 손해배상 소송이 전국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부당 법률 행위 방지법 개혁을 요구하는 단체들이 전면에 나섰다.
‘frivolous(어이없는)’, ‘outrageous(참을 수 없는)’, ‘silly(멍청한)’, ‘ridiculous(우스운)‘, specious(허울만 좋은)’, ‘absurd(괴상한)‘ predatory(약탈적인)’....
바지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구실로 5,400만달러라는 엄청난 배상금을 세탁업주에게 요구한 로이 피어슨 DC 행정판사를 다양한 수사를 이용해 맹비난 하고 있는 이들은 “피해자는 소규모 사업자인 정진남씨”라고 주장하면서 이번 기회가 악질적인 소비자 보호법이 개혁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소송 남용은 소규모 사업자 뿐 아니라 미국경제에도 큰 해를 끼치고 있으며 정씨 소송의 승자가 누구인가에 상관없이 막대한 비용은 고스란히 납세자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경고다.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소송 천국’인 미국에서 영세사업자들은 무방비 상태로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가? 세탁업은 물론 식품업, 식당업 등 소규모 사업자들이 다수를 이루는 한인사회에 이번 사건은 고객 서비스 개선 차원을 넘어 시스템적으로 철저한 준비를 하지 못하면 제2, 제3의 정씨가 나올 수 있다는 경보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씨 케이스에서 드러난 소비자 보호법의 문제점>
DC에서 열린 바지 소송 첫날 심리가 마감된 후 ATRA(American Tort Reform Association), NFIB(National Federation Independent Business) 등 소규모 사업자 옹호단체 관계자들은 법원 밖에서 즉각 기자회견을 열어 재판 자체의 비합리성을 비판했다.
ATRA의 셔먼 조이스 회장의 설명에 의하면 소비자 보호법이 소송 변호사에게 매력적인 것은 이 법이 기본적인 배상 외에 변호사 비용 지불도 규정하고 있기 때문. 또 많은 판사들이 상해나 손실, 혹은 부당하거나 사기적은 상술에 의한 피해 사실을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느슨한(loosly)’ 법 적용을 하고 있어 더욱 문제다. 조이스 회장은 “DC 법은 피어슨에게 ‘만족 보장’ ‘당일 서비스’ 광고가 그의 잃어버린 바지와 상관이 없음에도 하루 1,500달러씩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근거와 정씨를 고소하느라 드는 시간과 비용에 대해 50만달러까지 받아낼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정신적 피해와 피어슨이 다른 세탁소로 가기 위해 필요한 렌터카를 사용하는 비용까지 포함하면 배상액은 더욱 터무니 없는 액수가 될 수 있다.
이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소비자 보호법 악용을 막고 정직한 소규모 사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고소인이 사업자의 사기성 있는 광고나 홍보에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고의적인 사기 행위였을 경우를 제외하고 배상 액수를 사업자가 지불할 능력이 있는 한도로 제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피어슨의 케이스에서 정씨 부부가 지불해야할 배상액은 새 양복값과 수선비, 그리고 적당한 변호사 비용이 된다.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
통계에 따르면 2003년 한해 미국은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 총 2,460억달러의 배상금 지불을 판결했다. 이것은 주민 한 명당 845달러, 네 명의 가족을 기준으로 하면 3,380달러가 된다. 이 비용은 2000년부터 2003년까지 35.4%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으며 지난 50년간 GDP 성장보다 2-3% 포인트 많았다.
미국의 손해배상법은 시스템 자체적으로도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조사가 나왔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 보호 시스템은 1달러 비용에 겨우 50센트를 돌려줬고 고소인이 입은 실제 경제적 손실 1달러와 비교하면 22센트가 채 안되는 배상금을 지불했다.
미 의회가 1914년에 제정한 연방무역위원회법에 근거해 1960년대 말부터 제정되기 시작한 소비자 보호법은 처음에는 정부만 고소인 자격이 있었다. 그리고 연방무역위원회법이 제정될 당시 일부 의원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소송 사태가 일어날 것”을 미리 경고, 주목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악용되는 소비자 보호법이 전면적인 수술을 받을 가능성은 현재 적다고 보지만 악질적인 고소인이 법을 악용해 소규모 사업자들을 괴롭히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 하고 있다.
소규모 사업자들을 위한 비영리단체 NFIB의 조사에 따르면 이 단체에 가입한 회원 사업자 중 반은 소송을 당할 위험을 매우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들 10명 중 한 명은 2만5,000달러 이상의 법정 비용을 물어야 했다. NFIB 회원 사업자의 연 매출은 평균 35만달러였다.
<예상되는 정씨 소송의 파장>
워싱턴 지역 한인 세탁인들은 정씨 부부의 소송을 처음부터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관심있게 지켜봤다. 이틀간의 재판을 꼬박 지켜봤고 모금활동도 했다. 하지만 이번 케이스는 세탁업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업자들이 교훈을 얻어야할 사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고소인의 횡포에 휘둘린 억울한 케이스이기는 하지만 문제가 초기에 해결되지 못하고 눈덩이처럼 커져 버린 안타깝다는 말이다.
미국, 아니 전세계 언론의 조명 속에 심리가 진행되면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고 고소인의 주장이 ‘조롱’과 ‘웃음’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분위기는 정씨 부부에게 꼭 불리하지는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피해는 이미 엄청나다. 변호사 비용과 사업상 손실을 둘째 치고 이민자 신분으로 성공의 꿈을 키우던 이들에게 이번 사건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근간을 흔드는 충격이 될 공산이 크다.
한인들은 “미국생활에 성공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사업 환경과 법률 시스템을 숙지해야 한다”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피해 당한 사람들을 제도적으로 도울 수 있는 전문 체제를 한인사회가 갖출 필요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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