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 방문으로 부족한 점 보강 가능해
대학 입학 에세이 좋은 주제가 될수도
40년 전만해도 해외 여행하면 선진국으로의 여행이었고, 식구 중 외국 다녀온 사람이 있으면 그 학생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좋은 학용품을 가지고 와서 자랑을 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도 많이 발전하여 세계 10위 안에 드는 교역 선진국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이제는 외국에서 눈에 띄게 좋은 물건이 있어서 보면 국산이라 놀라는 경우도 제법 많게 된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 온 우리 이민 1세들은 고생도 많이 했지만 ‘아메리칸 드림’을 많이 이루었고 또 그렇지 못하더라도 미국은 미국이기 때문에 우리 2세들 중에 우리가 옛날에 당했던 것 같은 물질적 고생은 전혀 생소한 일이 된 것이다. 따라서 1세들과 2세들과의 사이에는 큰 사고의 차이가 생기게 되는데, 그래도 20년 전만 해도 모국방문이 뿌리 교육도 되고 부모를 이해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었지만, 이제는 한국이 오히려 앞선 부분도 많아져서 모국방문만 가지고는 부모를 이해시키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한창 유행하고 있는 ‘선교여행’으로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가 있는 것이다.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지만 멕시코에서 선교사로 사역을 시작한 큰 동서로부터 어렵지 않은 부탁을 받았다.
부탁이란 오리건의 작은 도시에 있는 한인 교회가 30여명의 중고등학생들을 모아서 멕시코로 ‘선교여행’을 오는데 아직 이들의 식사를 해결해 줄 조리사를 구하지 못했으니 좀 수고를 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교회 분들에게 선교여행에 대해 열을 올려 보았지만 시큰둥한 반응에 안타까워하고 있던 차라 어떻게 해서라도 선교를 갈 수 있다는 기쁨에 쾌히 승낙을 했었다. 조리사의 자격이라도 선교는 분명히 선교였으니까.
그런데 현지에 도착해서 열심히 조리를 하며 정성을 다했는데 날이 갈수록 준비한 음식을 괴로운 눈길로 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완전히 위기감을 느끼고 아이들에게 개별적으로 물어보았더니 원인은 아주 의외에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화장실에 가기가 무서웠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으면 또 화장실에 가야 되는데 오리건의 중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라 현지의 화장실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래도 수세식으로는 되어 있었지만 상수도와 하수도가 아직 없는 동네이었기 때문에 큰 통에 받아 놓은 물을 바가지로 퍼서 내려 보내야 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 원초적이었고 어깨 높이의 칸막이와 위와 밑이 뚫려 있는 문짝만 가지고는 도무지 ‘화장’을 할 기분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또 내용물이 바깥에 있는 저장통에 일단 저장되게 만들어져 있었는데 거기서 나는 냄새가 전에는 전혀 맡아보지 못했던 아주 역겨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아무리 배가 고프고 먹고 싶어도 음식만 보면 결국은 화장실에 가야 하는 것이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 당황했던 것은 현지의 선교사였다. 그 전에는 사명감에 불타는 어른들이나 대학생들이 왔었다고 하는데 화장실이나 샤워 때 뜨거운 물이 없다고 해서 당황해 하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여름 성경학교(VBS)를 수행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신 것이다.
오죽 다급했으면 사흘째 되는 날 조리사인 나를 붙잡고도 혼잣말 비슷하게 오늘 바닷가의 조그만 도시를 관광시키고 거기서 바닷가로 나가는데 거기서도 정신들을 차리지 않으면 내일 그냥 미국으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하면서 좀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 달라고 수심에 잠긴 목소리로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날 밤 모래사장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학생들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분명히 얼굴은 자기 아버지뻘인데 말하는 것은 그렇지가 않으니까 조금 놀라는 것 같았다. 이것을 보고 선교사님이 말씀을 전해 달라고 부탁을 했고 섬기던 교회 사람들을 위해 미리 준비한 말씀이 있었으니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쨌든 그날 밤을 계기로 학생들이 음식도 잘 먹고 또 말씀도 잘 듣게 되어서 계획했던 VBS도 성황리에 잘 치렀고 마지막 날 저녁에는 현지인들과의 예배도 아주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밤에는 각자 지난 일주일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지고 소감문을 작성하라고 했는데 거의 밤을 지새워가면서 장문의 글들을 적어 놓았다.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VBS도 VBS였지만 무엇보다도 큰 수확은 부모들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까지 잔소리로만 들리던 부모님의 말들이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가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중고등부 선교여행은 사실상 선교보다는 참가자의 ‘각성’에 초점을 두는 것을 본다. 선교여행, 혹은 단기선교에 같이 다녀온 학생들은 모두 큰 변화를 받는 것을 보고 학생들만 주로 모아 가는 여행이 생겼고 현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도 영어가 자유롭고 지칠 줄 모르는 일꾼들을 진심으로 환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선교여행은 대학 입학원서에 써야 하는 에세이에 풍성한 쓸거리를 제공해 주는데 우리 딸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난 어린 학생이 자기가 가르치는 영어시간에 오기 위해 2시간이나 걸어 왔던 것을 알고 느낀 감격에 대해 적었었고, 우리 막내아들은 남아연방공화국의 빈민촌에서 만난 어린 아이들의 청아한 찬양소리를 들으면 느낀 감동을, 우리 조카는 아버지가 사역하는 현지 교회에서 본 환자들을 보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얘기를 써서 모두 원하는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참고로 말씀드리는 바이다.
선교의 가장 큰 동기는 ‘사랑’인데 이 사랑을 실천에 옮길 때 말로써 가르칠 수없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선교인 만큼 의외로 저렴한 비용으로 해결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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