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
이성철(목사/수필가)
살림엔 눈이 보배라는 말은 인생살이에 있어서 눈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라 하겠다. 눈의 기능과 역할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보는 일이다. 보는 기능이란 단순히 어떤 사물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보고난 후에 그 본 사실을 통하여 그 이면에 감추어진
것까지 알게 되는 것을 말함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물체를 보았을 때 그 물체의 외면만이 아니라 그 물체의 깊은 속까지 꿰뚫어 봄으로써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속과 이면까지 관찰하는 통찰력을 뜻하는 것이다. 예컨대 붉은 저녁 하늘을 보았을 때 내일 날씨가 맑겠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침 하늘이 붉을 것 같으
면 오늘 날씨가 궂겠다는 붉은 하늘의 이면까지 통찰하는 기능이 있어야만 제대로 보는 눈인 것이다. 이쯤 되고 보면 눈에도 두가지 종류의 눈이 있음을 알게 된다. 외적으로 보는 육신의 눈과 내면까지 꿰뚫어 보는 마음의 눈이다. 그러므로 외적인 육신의 눈만 가지고는 인간이 보
아야 할 전부를 다 본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챙겨야 하는 눈이 다름아닌 마음의 눈인 것이다.
멀쩡한 두 눈을 가지고도 보아야 할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을 ‘청맹과니’또는 ‘눈 뜬 장님’이라고 말하며 그런가 하면 두 눈을 감고도 온전한 눈을 가진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자연의 오소(澳所)와 영계(靈界)까지 통찰하는 사람이 있음을 우리 주변에서 보아왔던 것이다.
그 실제 인물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 여사다. 그녀는 농,맹,아(聾,盲,啞)의 삼중고(말 못하고,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의 악조건 하에서도 손으로 어루만져 미술의 깊은 경지를 감상했으며 손으로 어루만져 각색 꽃의 이름을 알아맞추며 나뭇가지에
손을 얹어 그 가지의 진동을 통하여 새의 울음소리를 감지했다고 하니 누가 감히 그녀를 삼중고의 장애인이라 해서 경멸할 수 있었겠는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Westminster Abbey) 안에 묻혀있는 영국의 천재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의 묘비에 새겨진 시 한 구절을 되새겨 본다.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며/한 송이 들꽃에서 하늘을 보고/그대의 손바닥에서 무한을 장악하며/한 순간에서 영원을 본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의 눈은 고통 중에서도 남모르는 기쁨을 발견하며 폭풍우 중에서도 오색이 영롱한 무지개를 보고 죽음의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영원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의 눈을 크게 떠서 세계사의 이면까지를 꿰뚫어 볼 것 같으면 이 지구의 표
면에 온갖 위험이 난무한다 해도 그같은 파문의 깊은 밑바닥에 저류(底流)하는 “진동치 못할 나라”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성 어거스틴(St. Augustine, 354~430)은 권력으로 쌓아올린 대 로마제국이 무너져내리는 세계사의 격동기에서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원한 도성’(The City of God)을 소망 중에 바라보았던 것이다.6월 25일은 한국의 ‘국치일’이라 할 것인데, 어쩌다가 그같은 어이없는 참변을 당했을까?
다소곳이 우리 모두가 자가비판을 해보아야 하리라 생각한다. 이조 선조왕 때 일본의 정세가 심상치 않아 김성일, 황윤길 두 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하여 정세를 살펴오라 명하였는데 그들이 일본에 가서 본 것은 일본의 통치자 풍신수길의 눈이었다.두 사람이 가서 보았거늘 김성일은 풍신수길의 눈이 쥐새끼 눈처럼 생겼으니 침략해 올 염려가 없다고 보고했으며, 황윤길은 풍신수길의 눈이 호랑이 눈처럼 생겨 곧 침략해 오리라고 경고했
다. 결국 안일무사주의로 생각했던 국왕의 오판 때문에 임진왜란은 앉아서 당했던 것이다.
6.25는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자가반성의 날로서 두번 다시 그같은 치욕스런 역사를 남기지 않도록 온 국민이 각자 스스로 마음의 눈을 밝게 떠서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직시하면서 이민역사를 아름답게 엮어갈 때 6.25의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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