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리양
박정영씨
■ 화제의 한인 2인
지난 수십 년 동안 대학 문이 넓어져 인종에 상관없이 전례 없는 대학 진학률을 보이고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제때 졸업하지 못하는 학생 수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이를 무시하듯 단기간에 대학을 마친 한인 대학생들이 있어 화제다. 지난 5월 인디애나 대학(블루밍턴) 음악대학을 졸업한 박정영(엘리엇·26)씨와 이달 UCLA 사회학과와 국제개발학과를 졸업하는 양귀리(19)양. 2년 만에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두 사람의 비결을 정리한다.
남들은 4년도 모자라다는데
2년만에 마쳐 학비도 절반
박정영씨 (인디애나 음대)
한국서 대학·군복무후 유학
1세의 언어장벽 당당히 극복
일분도 아까워 철저히 계획생활
장학금 받고 대학원 진학
지난 5월5일 인디애나 대학 음악대학을 졸업한 박정영(26)씨는 늦깎이 이민 1세란 핸디캡을 보란 듯이 극복했다. 한인 2세나 미국인들도 힘든 대학 조기졸업을 당당히 해낸 것이다.
박씨는 2003년 12월29일 한국 해군 군악대 복무를 마치고 미국에 왔다. 군복무는 현충원에서 했다고 한다. 성인이 돼 미국에 온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돈벌이가 우선이지만 박씨에게는 한국에서 하다만 음악공부를 마치는 것이 급선무였다. 실생활에서 접하는 위대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박씨는 “나도 저 사람들처럼 될 수 없을까”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고, 미국 최고 음악대학들 중의 하나인 인디애나 대학 음대 진학을 계획했다.
우선 LACC에서 영어와 수학을 수강한 뒤 음악대학에 입학원서를 집어넣었다. 부산 경성대학에서 115학점, LACC에서 6학점을 이수했지만 인디애나 대학 측은 이를 무시했다. 특히 학교 측은 박씨가 부산 경성대학에서 한 작곡 관련 공부는 하나도 인정해주지 않으려 했다. 입학한 뒤 “4년을 다시 다녀야 한다”는 것이 학교 측의 입장이었다.
군복무를 두 번하는 것 같이 대학 생활을 2번 하게 된 박씨는 실력으로 승패를 결정짓기로 결정했다. 작곡 공부에만 ‘올인’했다. 한 학기에 20학점씩 들으며 2년만에 88학점을 땄다.
뒤늦게 달리기에 나선 선수가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 잡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이 박씨는 먼저 작곡 공부를 시작한 학생들을 추격하기 위해 처절한 자기 관리를 실천했다.
박정영씨가 피아노를 연주하며 작곡에 열중하고 있다.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5분 정도 시간을 할애해 다음날의 수업 시간표와 일과표를 작성했다. 수업과 수업 사이의 빈 시간에도 할 일을 계획했다. 단 일초도, 일분도 낭비하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영어는 처음부터 장벽이었다. 박씨는 “솔직히 처음에는 강의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스물세 살이나 돼 한국에서 온 만큼 ‘미국 애들’같이 영어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강의를 못 알아들으면 공부를 못하게 되는 결과가 나온다. 이를 극복하려고 박씨는 ‘아이 파드’에 마이크를 부착해 강의란 강의는 모두 녹음하기 시작했다. 강의가 끝난 후에는 이를 다시 들었다. 특히 주말에는 하루 5시간 이상 녹음된 강의 내용을 다시 들었다. 듣고 또 들어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대목에 부닥쳤을 때는 교수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강의 모두 녹음 듣고 또 들어”
박씨는 “지금 생각하면 참 무식한 공부법”이라며 “두 번째 학기가 지나고 나니 공부하기 한층 쉬워졌다”고 말했다.
학교 재학 중 박씨는 마음속에 그림을 하나씩 그렸다.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 곳에 목표를 그리고, 그 앞에는 하루하루 밟아 올라갈 수 있는 365개의 계단을 그린 것이다. 오늘 오르기로 작정했던 계단을 오르지 못하면 그 다음날은 두 계단을 올라가야 어려움이 있는 법. 그래서 박씨는 쉬운 방법인 ‘하루 한 계단 오르기’를 택했다.
박씨는 날마다 성경을 읽었다고 한다. 마태복음 6장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크리스찬 공식’을 깨달았다고 한다. 곡을 쓰기 전 피아노 연습을 하기 전 자신의 의를 구하기보다 신의 나라와 의를 구할 수 있게 최선을 다했다.
이런 노력들이 처음부터 잘 된 것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준수하도록 노력하고 자신을 채직찔 하며 1년을 발버둥치다 보니 불가능하던 계획 실천이 생활화되기 시작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승리의 열매는 달콤했다. 박씨는 2007 미드웨스트 작곡가 심포지엄에서 ‘색서폰 사중주를 위한 선한 싸움과 경주’란 곡을 발표했다. 심포지엄은 미 중부 몇 개 음악대학들이 각각 대표적인 학생 작품을 내놓으며 학교 실력을 과시하는 대회다.
같은 해 박씨는 국제대회에서 입상하는 영예도 얻었다. 2007 베토벤 클럽 작곡 경연대회에서 박씨의 ‘플룻과 첼로를 위한 이중주’가 8개국에서 출품된 45개 작품들 중 2위를 차지했다. 박씨는 또 졸업할 때 4.0 GPA를 받으며 최고 우등상을 받았다.
작곡을 “단어 대신 음악 노트를 사용해서 자기를 표현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박씨는 올 가을부터 같은 대학 음악대학원에서 더 깊이 있는 작곡 공부와 더불어 지휘까지 공부할 예정이다. 학교측은 박씨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일찍 졸업하는 덕에 연 2만달러 정도의 학비, 생활비 부담을 부모님으로부터 덜어주게 됐다”는 박씨는 자신이 그려놓은 계단을 더 충실히 올라갈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양귀리양 (UCLA)
9학년부터 커뮤니티 칼리지
고교졸업 때 무려 120유닛 취득
입학 후 곧바로 전공공부 ‘여유’
과외활동·아르바이트까지
귀리양이 남보다 일찍 졸업하는 UCLA는 졸업하기가 입학만큼 힘든 곳이다. 연방교육부, ACT 등 기관의 자료를 토대로 산출된 ‘에듀케이션 트러스트’의 통계에 따르면 UCLA를 4년만 다니고 졸업하는 학생 비율은 56% 선이다. 대부분의 학생이 졸업장을 따는데 걸기는 기간은 5년 또는 6년 정도가 걸린다.
술을 구입하려면 2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열아홉 살의 귀리양이 대학 졸업 소요기간을 절반으로 단축시키고 대학 학비도 4만달러나 절약한 비결은 9학년 때부터 시작한 커뮤니티 칼리지 강의 수강이다.
고등학생들도 대학 익스텐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수업을 듣고 학점을 딸 수 있는 사실을 우연하게 알게 된 귀리양은 ‘UCLA 익스텐션’의 철학반에 등록했다.
귀리양은 곧 자신보다 나이 많은 언니, 오빠들의 귀여움과 고등학교 수업으로만 풀리지 않던 지적 갈등을 해소해주는 수준 높은 강의내용이 주는 재미에 흠뻑 빠졌고, 자녀를 세명을 둔 한인 아줌마와도 친구가 됐다.
UCLA 익스텐션의 카운슬러는 13세의 9학년생이 고등학교 수업 후 대학 강의를 듣기 위해 열심히 찾아오는 모습에 감동을 느꼈고 커뮤니티 칼리지에서도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또 다른 방법을 알게 된 귀리양은 고등학교 카운슬러의 추천을 받아 다음 학기부터 샌타모니카 칼리지, LACC에도 연달아 등록했다.
귀리양이 고교 4년 동안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취득한 학점은 120유닛. UCLA 졸업에 요구되는 학점 중의 절반 이상을 이미 마친 상태에서 입학한 것이다. UCLA측에 따르면 학사학위 취득에 필요한 최소학점은 180유닛이다.
커뮤니티 칼리지 수강은 귀리양이 동급생들보다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게 했다. 이들 학교에서 마친 것들은 심리학, 철학 등 대학 1~2학년이 전공과목 공부 전 수강해야 하는 교양과목들. 덕분에 동급생들이 교양과목에 발목이 잡혀있는 동안 귀리양은 곧바로 전공과목 공부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많은 학점을 이미 따논 귀리양은 느긋하게 대학 생활을 할 수도 있었지만 쿼터마다 21~23학점을 수강했다. 1년 학기가 4개로 나눠진 UCLA 학생들이 통상 한 쿼터마다 수강하는 학점은 15학점 정도. 귀리양은 매 쿼터마다 수업을 2개 정도 더 들은 것이다.
양귀리양은 아버지 양성용(오른쪽 뒤)씨, 어머니 유광연씨, 오빠 민규씨의 정신적 도움 없이는 조기졸업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남들 다 아는 것 실천했을 뿐”
조기 졸업을 위해 귀리양이 하루 종일 책만 들여다본 것은 아니다. 김동석 교수가 이끄는 UCLA 사물놀이패의 열성 단원으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참여했다. 자녀 뒷바라지를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부모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덜어드리기 위해 아르바이트에도 열심이었다. 한국의 날 축제기간에 열리는 장터에서 화장품 세일즈, 학원 선생, 골프연습장 점원 등 안 해 본 ‘알바’가 없다. 수입은 어머니의 손에 쥐어 드렸다.
졸업과 동시에 영화회사 21세기 폭스사에 취직된 귀리양의 가정사는 조금 특이하다. 그녀의 부모는 한국 교육제도에 염증을 느껴 귀리양이 10세 때 남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와투(Vanuatu)로 이민 갔다. 영국, 프랑스에 번갈아 가며 지배당하다가 1980년 독립한 이 나라의 총인구는 20만9,000명. 인구밀도는 전 세계 188위다. 44스퀘어마일 당 17.3명 수준의 낮은 인구밀도(한국은 480명), 수려한 경관 등으로 유명하다.
세계적인 조직을 갖추고 평등한 부의 분배와 환경보호 운동을 하는 ‘신경제재단’(New Economic Foundation)과 ‘지구의 친구들’(Friends of the Earth)은 2006년 세계 178개국 중 바누와투를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으로 선정했다. 미국은 세계에서 150번째로 행복한 곳으로 나타났다. 귀리양을 자연과 함께 키우던 부모는 고등교육의 개념이 성립되어 있지 않은 바누와투의 교육제도의 한계를 느낀 나머지 딸이 9학년 될 때 쯤 LA로 건너 왔다.
바누와투의 대자연 속에 파묻혀 살다가 미국 제2의 대도시 LA에 정착했을 초기에 느꼈던 ‘문화적 충격’을 회상하던 귀리양은 조기졸업의 비결에 대해 “일찍 대학공부를 시작해 학점을 많이 받은 것이고 다들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한 것 뿐”이라며 “대학 생활을 더 즐기지 못하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김경원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