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LA 공연을 갖는 장사익은 “사람이 그리워서 왔다”며 “이민생활을 하시는 동안 켜켜히 쌓인 회한을 풀고 희망 한 단을 얻어가시라”고 말했다.
‘진정한 소리꾼’장사익, 그가 온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소리꾼’ ‘노(老)했으나 쇠(衰)하지 않는 가수’ ‘자연에 가장 가까운 소리’…. 많은 이들의 극찬을 받는 장사익(57)이 24일 LA에 온다. ‘사람이 그리워서’.
이날 오후 7시30분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135 N. Grand Ave., LA)에서 한인들과 만날 한국 최고의 가객. 지난 9일 뉴욕서 열린 그의 미국순회 첫 공연은 대성황이었다. 청중들은 마음 속의 마음에서 길어올린 그의 노래에 홀렸다. 다정하고 고요하고 다사롭고 서늘한 음악이 주는 전율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구비구비 은핫물 목이 젖어,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피울음 우는 귀촉도 같은 소리로 노래하는 그. 녹슬어 없어지기보다는 닳아서 사라지는 못이 되겠다는 듯, 생명의 진액을 짜내 절규하는 그. 보름 후면 다운타운에서 한과 그리움과 희망의 소리판을 벌인다. ‘찔레꽃’ ‘동백 아가씨’ 등을 부드러우면서도 폭발적인 목소리에 실어서. 수익금 일부는 위안부 문제 해결과 이민법 개정을 위해 사회단체에 기부된다. 된장 내음 풀풀 나는 구수한 목소리의 장사익을 7일 전화 인터뷰했다.
피울음 쏟아내 듯
된장냄새, 고춧가루 같은 노래들
그래서 듣고나면 속 후련해지는…
24일 저녁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
-46세에 데뷔 음반을 냈는데, 어떻게 인생 역전에 성공했나.
“고향 충남 광천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웅변을 시작했다. 고향 뒷산에 올라가 질러댔다. 그때 목청이 트인 듯 싶다. 그후 상고 졸업 후 취업해 일하면서 가요학원을 3년 다녔고 군복무 3년 문선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가수의 꿈은 72년 제대와 함께 접었다. 영업사원, 점원, 노점상 등 닥치는대로 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1980년 국악에 입문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치시던 장구의 가락, 동네 아저씨가 부시던 태평소의 선율이 가슴에 남아 있었다. 아마추어로서 피리, 대금, 태평소를 10여년 공부했다. 매제가 하는 카센터에서 잡일을 하던 92년 세밑, 지나온 삶을 반성하던 중, 이게 아닌데 싶더라. 100%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결론이었다. 앞으로 3년간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자, 태평소를 밥벌이로 해 보자, 결심했다. 그후 죽을 힘을 다해 불었다. 당시 국악공연이 끝나면 뒤풀이를 하곤 했는데 종종 내가 노래를 불렀다. 94년부터는 시만 보아도 노래가 툭툭 튀어나왔다. 후배 피아니스트 임동창이 판을 내자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그해 소리판 ‘하늘 가는 길’ 초연을 했는데 대히트였다. 이듬해 첫 음반을 냈다. 봄에 피는 꽃이 있는가 하면, 서리 내리는 가을에 피는 꽃도 있나 보다.”
-데뷔하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나.
“절로 ‘행복’이란 말이 떠오르더라. 옛날부터 꿈꾸어 왔던 길인데 멀리도 에둘러 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굴곡 많은 과거가 자양분이 된 것 같다. 오늘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열댓 개 직업을 전전하며 얻어맞고 깨졌던 힘든 삶을 노래하니까 남들이 공감하는 것 같다. 음울하고 쏟아버리는 스타일의 내 노래에서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이번 뉴욕 공연의 소감은.
“하나 정도 기대하고 갔는데 열을 얻은 기분이다. 기립박수까지 치는 등 폭발적 호응이었다. 어떤 이는 ‘40년만에 이런 공연 보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꼈다’고 한다. 재일동포 출신의 한 한인은 자신이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미국인인지 몰랐었는데 비로소 정체성을 찾았다고 하더라. 우리 스태프이 공연준비를 할 때 세계적 공연장인 뉴욕시티센터 직원이 너무 하대해 폭발 직전까지 갔다. 달래서 공연을 끝냈는데 그곳 매니저가 ‘많은 감동을 접했지만 이런 감동은 처음’이라며 내 포스터에 사인해 줄 것을 부탁했다. 초과시간 사용료도 받지 않았다.”
-왜 미국 공연인가.
“등산하는 사람들에게 다치고 죽는데 왜 산에 가느냐고 물어보라. 무대가 있기 때문에 거기 가 노래하고 싶은 것이다. LA, 샌디에고, 시애틀 등에서 몇 번 공연했으나 모두 협연이었고 2004년 워싱턴 DC에서 첫 미국내 단독공연을 했다. 규모는 지금의 절반 수준이었다.
-아예 돈 못 벌 각오를 하고 왔다는데.
“이번에는 협찬이 일절 없다. 우리가 직접 기획하고 경비를 부담했다. 25명의 멤버가 한달간 미국서 숙식하고 이동하는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제대로 된 공연 한 번 하자는 마음에 좀 무모하게 일을 벌였지만 값어치는 충분하다. 사업할 때 100만원을 써도 1,000만원의 값어치를 얻으면 행복하지 않은가. 40~120달러 티켓을 사서 오는 청중들도 어려운 결정일 것이다. 때문에 그 이상의 기쁨과 감동을 주고 싶다. 공연에 온 한인들이 행복하면 나는 더 행복하다.”
-함께 온 팀은.
“나를 비롯, 전문인력 25명이다. 무대 스태프와 재즈밴드, 사물놀이, 해금 피아노 기타 트럼펫 연주자, 아카펠라 전문그룹 ‘솔리스츠’ 등 음악하는 사람 16명을 포함한 숫자다. 공연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작년 세종문화 회관에서 함께 했던 스태프 그대로 왔다.”
-콘서트 타이틀을 ‘사람이 그리워서’라고 정했는데.
“내 노래 중에 뉴욕의 김형수 시인이 쓴 시골장이 있다. ‘사람이 그리워서 시골장은 서더라, 연필로 편지 쓰듯 푸성귀를 담아 놓고, 노을과 어깨동무하며 함께 저물더라…’. 그렇다. 사람이 그리워서 5일장이 서듯, 사람이 그리워서 왔다. 우리네 삶은 그리움으로 이뤄져 있는데 한국에도 그리움이 많지만 미국에는 몇 배나 더 할 것이다. 현대인들 사이에 벽과 갈등이 많은데, 화해와 상생의 길을 이야기하는, ‘good판’을 벌이고 싶었다.”
-이번에 몇 곡을 부르나. 가장 애정을 느끼는 곡은.
“약 2시간20분 동안 혼자서 스물 두어 곡을 한다. 전반부에선 국악 스타일 곡을, 후반부에선 70~80년대 히트한 대중 가요의 리메이크 곡을 부른다. 리메이크는 예외지만, 다른 노래들은 내가 작사한 2곡 빼곤 다 시인들이 지은 것이다. 작곡은 100% 직접 한다. 모든 노래에 애정이 간다. 다 내 얘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를 때마다 새롭고 어떤 무대에서든 빼놓고 싶지 않은 곡 하나는 있다. ‘찔레꽃’이다.”
-레퍼터리를 이같이 구성한 이유는.
“찔레꽃, 허허바다, 희망 한단 등 내가 엮은 전반부의 노래들은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심각하고 어렵다. 마음이 닫힐 수 있다. 해서 후반부에 재미있는 노래들을 부른다. 맺고 풀고, -+=제로를 만드는 것이다. 후반부 곡들을 흥겹게 즐기다 보며 전반부 곡들이 소급 이해되기도 한다.”
-이번 공연을 한류와 연관지어 보는 시각도 있는데.
“거창하게 한류다 뭐다를 떠나서 그냥 2007년 한국이라는 나라의 대중이 이런 음악을 즐긴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구수한 된장 냄새 같고, 톡 쏘는 고춧가루나 마늘 같은 음악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미국사람들도 신기해하고 감동받을 것이다.”
-독특한 ‘장사익표’ 음악을 스스로 어떻게 규정하나.
“가요, 국악, 재즈, 클래식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많은 분들이 내 음악의 장르를 말해 보라고 하시는데 장르가 없다. 음악이라는 것이 꼭 ‘규정’될 필요도 없다. 내가 하는 것도 그저 한국 대중음악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곳에 인간미를 담고 박자, 형식에 제한받지 않는 자유의 음악을 하려 애쓸 뿐이다.”
장사익은
▲1949년 충남 광천 출생 ▲1968년 선린상고, 1978년 명지대 졸업 ▲1994년 장사익 소리판 ‘하늘 가는 길’ 초연 ▲1995년 1집 음반 ‘하늘 가는 길’ ▲1997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로열심포니오케스트라 협연 ▲1999년 2집 음반 ‘기침’ ▲2000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헝가리 국립오케스트라 협연, 3집 음반 ‘허허바다’ ▲2001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 협연 ▲2002년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 세계무용축제 개막식 공연 ▲2003년 4집 음반 ‘꿈꾸는 세상’ ▲2006년 5집 음반 ‘사람이 그리워서’
▲수상: 전주대사습놀이 공주농악 장원(1993년), 전주대사습놀이 금산농악 장원(1994년), KBS 국악대상 대통령상(1995년), KBS 국악대상 금상(1996년), 국회 대중문화, 미디어 대상 국악상(2006년)
<김장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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